완벽한 운전에 필요한 것. 훌륭한 운전 실력과 내비게이터, 그리고 기계에 대한 이해다. <서울대작전>에서는 천재 드라이버 동욱(유아인)과 인간 내비게이터 복남(이규형) 그리고 빵꾸팸의 맥가이버 준기(옹성우)가 실무자로서 근사한 카 액션을 완성한다. 전두환의 비자금을 옮기는 운반책으로 가장해 수사를 도우면 과거 범죄 기록을 지워주겠다는 안 검사(오정세)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은 매일 밤 위험천만한 드라이브에 동승한다.
유아인 비교적 어린 나이에 진지한 작품을 많이 찍었다. 애정, 어쩌면 집착도 있었다. 배우의 본질에 좀더 집중하면서 또래가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여주고 연기나 작품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한데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유연하고 가벼워졌다. 너무 심각하게 가기보다는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할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특히 이번 작품은 장르영화, 오락영화이면서 빵꾸팸의 팀워크 자체가 영화의 에너지이자 색깔이다. 어릴 때부터 선배님들과 작품을 많이 했기 때문에 또래와 친구처럼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의지도 강했다.
극중 구체적인 나이가 나오진 않지만 이규형 배우는 빵꾸팸의 암묵적인 맏형 아닌가.이규형 (옹성우를 쳐다보며) 실제로는 준기랑 동갑이다. 띠동갑. (웃음) 하지만 친구처럼, 진짜 패밀리처럼 재미있게 찍었다. 나는 단지 배우들을 믿고 출연을 결심했다. 빵꾸팸뿐만 아니라 내가 언제 문소리 선배님, (김)성균이 형, (오)정세 형님과 다시 뭉칠 수 있을까? 조합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유아인 캐릭터 나이도 다르고 나와 윤희(박주현)는 극중 남매 관계지만 좀더 친구 같은 면이 강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에서는 복남을 계속 형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는 한두번만 그렇게 불렀다. 나이와 상관없이 편하게 ‘야!’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있으니까.
공교롭게도 옹성우 배우는 (먼저 촬영한) <인생은 아름다워>에 이어 <서울대작전>에서도 레트로한 매력을 뽐낸다. 추억을 소환하는 작품에 연이어 선택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옹성우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내가 투박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투박하다는 말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규형 (유아인과 함께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다가) 왜 그렇게 생각해?
유아인 투박함이 아니라 고전 미남의 입체감이 있지. 동시에 요즘 느낌도 있고. 아니, 요즘 세상에 무슨 겸손을 떨어! (일동 웃음)
옹성우 <서울대작전>은 시대적인 느낌보다 잡지의 커버로 봤던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복고풍 옷, 심지어 올드 힙합처럼 입는다는 느낌도 많이 들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의 뉴트로를 넘어선 색다른 느낌이랄까. 그래서 빵꾸팸 5인이 모였을 때 있을 법하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비주얼과 케미스트리가 나왔던 것 같다.
유아인 1988년 하면 ‘쌍팔년’ 느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복고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급변하는 격동의 시기였다는 정도로 이해하며 당시 젊은이와 기성세대의 ‘꼴’을 상상했다. 영화는 그들의 갈등을 극적이고 장르적인 형태로 묘사한다. 사실 빵꾸팸은 이상적인 꿈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며 돈 자체를 향해 질주하고 겉멋에 취해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간직한 우정과 열정은 시대를 막론한다.
옹성우 80년대 춤 영상을 보면서 처음 그 시대를 접했다. 억압에 맞서고 투쟁하는 힙합이 누군가에게는 춤, 누군가에게는 그라피티, 누군가에게는 디제잉이 되면서 힙합 문화가 번성했다. 그래서 내겐 80년대 하면 저항이 떠오른다. 극중 빵꾸팸 역시 어른 세대에 저항하고 맞서 싸우며 할 말은 한다.
이규형 88 서울올림픽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6살 때, 그러니까 만 4살 때 아빠가 개막식을 녹화해두라고 했다. 그래서 비디오테이프 재녹화가 가능하도록 네모난 구멍을 휴지로 막던 기억이 내겐 아주 특별했다. 이후엔 삼촌이 고2 때 통기타를 쳤던 기억이 있고, 아빠 차를 함께 타고 지나가다 가끔 학생들이 데모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내게 80년대는 아빠 차 뒷좌석에 앉아서 차창 밖으로 봤던 세상이다.
유아인 올림픽이란 게 참 상징적이다. 나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이 떠오른다. TV가 가장 큰 매체이던 시절, 전세계인의 축제가 미디어에 소개되는 난리통 자체가 뇌리에 탁 박혀 있다. 80년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90년대에 쏘나타, 그랜저 등 자동차로 사람의 계급을 나눴던 기억은 난다. 그러니 80년대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 유튜브에서 복원된 영상으로 80년대를 볼 수 있지만 당시 성인은 아니었으니까, 배우로서 추측할 수 있을 만큼 추측하고 기억할 수 있을 만큼 기억하며 장르의 특성 안에서 표현했다. 진지한 정극이 아니라면 역사는 새롭게 재해석될 여지를 열어두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서울대작전>은 당시 개발도상국 한국이 88올림픽을 통해 변화를 꾀하던 사회상을 영화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며 시대를 재조명한다. 장르 특성에 맞게끔 1988년을 재해석해 접근한 것이다. <서울대작전>만의 시각, 우리의 ‘겉멋’을 오락영화로 즐겨주셨으면 한다. (웃음)
카 체이싱을 위해 각자 갖고 있는 강점이 있다. 동욱은 운전 실력이 뛰어나고, 복남은 길을 잘 아는 ‘인간 내비게이터’이고, 준기는 기계를 잘 다룬다. 대사로 설명되는 부분 외에 캐릭터별 특징을 연기로 보여주기 위해 어떤 분석을 했나.유아인 동욱이 운전에 능숙한 모습을 연기로 보여주려 하다 보면 너무 힘이 들어간다. 외려 촬영이 진행되면서 문제가 조금씩 풀렸다. 고수일수록 오히려 핸들을 툭툭 잡고 쉽게 가지 않을까? 운전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기는 뭐…. 괜히 미간에 주름 잡는 거다. (웃음)
옹성우 준기는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자동차 부품 하나하나까지 사랑하는, 펑키한 열정이 있는 캐릭터로 생각했다. 자동차는 준기에게 어릴 때부터 놀이터였다. 같이 놀던 형들 때문에 자동차도 좋아하게 됐으니 순수하고 거침없는 막내 느낌을 주는 데 좀더 집중했다.
이규형 첫 카 체이싱 촬영 장소가 충무로였다. 내가 동국대학교 출신이라 골목 사이사이 길을 거의 알고 있었다. 지도를 펼쳤는데 신라호텔까지 가는 최단 루트가 머릿속에 그려지더라. 본의 아니게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유아인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개념을 모르는 세대는 ‘도대체 인간 내비게이터가 뭐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규형 (유아인과 옹성우에게) 지도 보고 길 찾아본 적 있어?
유아인 아주 어릴 때 엄마 차 옆좌석에 앉아서 지도를 봤지.
이규형 나는 갓 제대하고 자전거로 전국 일주할 때 지도 하나 딱 들고 갔어.
옹성우 그런데 지도만 보고 길을 찾는 게 가능한가? 몇백 미터 이후 우회전을 해야 한다는 걸 알려줄 수 없는데.
유아인 이게, 이게 요새 애들이야~! (일동 폭소)
이규형 (친절하게) 지도에 배율이 있어. 지도의 1cm가 실제 몇 미터에 해당하는지 나와. 그리고 지도에 써 있는 도로 번호랑 표지판을 대조하면 어디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옹성우 우리 세대는 내비게이션을 쓰는 게 기본이 되다 보니, 잘 아는 길이라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는데도 켜고 갈 때가 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그 정도로 당연하다.
유아인 복남 캐릭터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는 재미도 상당했다. 20~30년 뒤엔 이런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형의 애드리브거나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많이 더한 부분이지.
이규형 현대 차가 최고인지 기아 차가 최고인지 싸우고 있으면 “야, 모르는겨. 둘이 합병을 할 수도 있는겨~” 한다든지, “준기야, 나중에 전기로 가는 차는 못 만드냐?”라고 묻는다든지. (웃음)
이규형 원심력 연기가 정말 헷갈렸다. 자동차 방향이 바뀔 때 몸이 오른쪽, 왼쪽 중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고.
유아인 우리, 현장에서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촬영했는데. (웃음)
옹성우 뒷좌석은 공간이 아주 넓어서 몸이 왔다 갔다 하는 폭이 굉장히 크다. 그러다 가끔 화면 밖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유아인 엄청 피곤했을 거다. 앞좌석을 찍을 땐 항상 뒤에 준기가 걸려 있으니까. 촬영 때 많이 힘들었잖아. 우리가 성토할 기회를 주는 거니까 좀 해봐. (웃음)
옹성우 앞좌석에 손을 올리면, 손이 화면에 걸리니까 찍을 때마다 계속 잡아야 한다. 뭐…. 행복했습니다~! (웃음)
그린 스크린에서 찍은 크로마키 촬영으로 안 보였는데, 자동차 액션은 어떻게 찍은 건가.유아인 한국영화 최초로 버추얼 프로덕션을 시도했다. (<서울대작전>은 LED 벽에 펼쳐지는 가상 배경 영상을 보며 자동차에 탄 배우가 연기하는 방식으로 찍었다.) 아무래도 그린 스크린을 세워놓고 찍는 것보다는 좀더 용이한 부분이 있었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자동차 움직임을 잡아주는 모션 베이스 장치의 도움도 컸다. 새로운 기술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값진 경험이었다.
유아인 <서울대작전>에서 서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강력한 요소로 작용하며 영화의 가장 앞면에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자체가 주인공인 것이다. 사실 촬영 중반까진 유튜브 등에서 봤던 이미지를 상상하며 임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많았는데, 촬영 후반 버추얼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나서 이게 어떤 영화가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 완성본에 배경이 모두 채워진 것을 보고 안도감이 생겼다.
이규형 엊그제 시사회를 했다. 촬영 당시 우리가 탔던 차, 입었던 옷, 우리의 연기에 배경이 붙으면서 당시 감성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확인하며 감탄했다. 실제 1988년을 기억하는 분들이 보면 굉장히 반가울 것 같다. 시대를 돌이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옹성우 완성본을 보고 느낀 건 내가 옛날 배경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직접 그 시대를 살진 않았지만 포근함을 느낀다. 내게 옛날이라 하면 2000년대인데…. (“2000년대는 최근 아니냐”며 주변에서 웅성대자) 누군가에겐 최근이지만, 내겐 무척 그리운 옛날이다. (웃음) 2000년대 중반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동네를 가끔 가서 보면, 신기할 만큼 그대로다. 근데 어릴 땐 크게 보였던 동사무소가 지금은 굉장히 작게 느껴진다. 어쩜 그렇게 변한 게 없는지, 향수에 젖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서울대작전> 완성본을 봤을 때도 그런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흥미진진한 액션과 유머, 그리고 1988년 배경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며 몽글몽글한 따뜻함과 쾌감을 함께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