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썬다운’은 관객의 사유를 믿는 영화다”, 미첼 프랑코 감독 인터뷰
2022-09-01
글 : 김소미
정리 : 이다혜
- 멕시코의 휴양 도시 아카풀코 해변이 주 무대다. 사적인 기억이 있는 곳인가.

= 아카풀코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멕시코 최고의 장소였다.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으로, 안전한 낙원의 느낌을 주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폭력적인 장면들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이제 아카풀코는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1위에 꼽힌다.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개인적인 경험도 있는데, 10대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며 여자 친구와 아카풀코 해변을 찾았다가 해변을 지키는 군인들에 둘러싸인 적이 있다. 무섭고 혼란스러웠다. 이제 더이상 그곳에 가지 않는다. (마약 조직과 경찰의 잦은 결탁으로 주 정부가 자치 경찰력을 박탈하고 군대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편집자)

- <썬다운>은 인물의 정보와 심리에 대한 정보를 최소화하고 주변 환경에 집중하도록 요구한다. 관객은 침묵과 관찰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러티브 스타일은 주제와 인물을 떠올린 뒤 사후적으로 적용한 것인가 혹은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나.

= <썬다운>의 리듬은 처음의 직관을 밀어붙인 결과다. 말없이 스크린에 무언가 표현될 때가 더 영화적이라고 믿는다. 이미지, 사운드,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이 말해지지 않을 때가 좋다. 달리 말하면 각 장면에서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고 느낄지 사유하는 관객을 믿는다. 이건 미니멀한 플롯을 추구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굳이 따지면 나는 여러 사건이 일어나는 쪽이 좋다. <썬다운>에서도 80분 동안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평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제시되지 않을 뿐이다. 팀 로스 역시 고전적인 내러티브 스타일에서 벗어나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았다. 우리의 이런 선호는 관객을 시험하거나 장난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 장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가능한 한 여러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 시나리오 단계부터 대사는 최소화되어 있었나.

= 그렇다. 처음부터 스콧 또는 닐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페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영국인 남자를 떠올렸다. 고급 리조트가 아닌 멕시코 해변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거의 없는 풍경을 떠올렸고, 그러다 남자에게 예상치 못한 사랑 이야기가 생겨날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썬다운>은 대본에 쓰여 있던 것과 매우 가깝게 구현된 영화다. 다만 팀 로스와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전혀 예측이 불가한 배우들이기 때문에 촬영하는 동안 거의 매 장면이 새롭다고 느꼈다. 배우들이 대본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것은 아니고, 그들은 오히려 대본에 충실하지만 애초에 존재 자체가 전통과는 거리가 먼 배우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 태양의 이미지, 익다 못해 벗겨지고 있는 피부를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으로 반복한 이유는.

= 강한 양면성을 가진 상징으로 썼다. 삶과 죽음, 긍정적이고 파괴적인 힘, 주인공 닐을 굴복시키는 어떤 위력으로 태양이 머리 위에 자리 잡고 있길 바랐다. 여러 기호들을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사용했다. 오프닝숏에서 닐이 내려다보고 있는 죽은 물고기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흐뜨려놓은 의미망들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배우들의 몫이었다. 이 이미지들 모두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매우 중요했다.

- <크로닉>에 이어 배우 팀 로스와 협업했다. 미첼 프랑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팀 로스의 초월적인 얼굴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둘의 파트너십은 어땠나.

= 2012년 <애프터 루시아>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 받을 때 캐나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만난 즉시 친구가 되어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크로닉>을 만들었다. <크로닉>은 내 할머니의 마지막 몇달을 지켜보며 쓴 사적인 뉘앙스가 깊은 이야기였고, 극중 간병인을 연기한 팀 로스를 지켜보는 시간은 감동스럽고 압도적이었다. 이후 10년간 우리는 좋은 친구로 지냈다. 그사이 정말 친해져서 <썬다운>을 작업할 때는 분위기가 전과 또 달랐다. 내가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무언가가 팀을 자극하도록 유도하고 도전하고 싶어졌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기 어렵듯이 우리 역시 이번 <썬다운>에서 좀더 힘들게 일했던 것 같다. 서로가 더 야심을 부리고 깊이 몰두하고 방종하길 원하지 않으면서 논쟁하는 시간이었다.

- 최소화된 시나리오, 내적인 인물, 한정된 무대 등을 조합해보면 촬영 기간 동안 즉흥성이 꽤 허락되는 분위기를 상상하게 된다. 이전 작업들에 비해 <썬다운>의 촬영 과정에 다른 면이 있었다면.

= <크로닉> <뉴 오더> 등에 비해 확실히 더 많은 자유를 누렸다. 해변 바로 옆의 호텔에 머무르면서 연대기순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촬영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 순으로 찍는 것은 지난 모든 영화들에서 지켜온 방식이다. <썬다운>에선 3주가량 원할 때마다 계속 재촬영하고, 즉흥적인 시도를 하고, 낮과 밤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런 방식이 때로 배우나 제작진을 화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스케줄을 따르는 데 대해 그닥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웃음)

- 연대기순으로 영화를 찍을 때 장점은 무엇인가.

= 이야기와 인물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감독이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순서대로 앞으로 걸어나가는 중이라면 전환점을 새로 발견하기도 쉬워진다. 다행히 나와 스탭은 다 영화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외부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보다 합리적인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여전히 시간 순대로 찍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한다. 때로는 시간과 에너지, 경제적 측면에서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선택이 더 나은 영화를 만든다.

사진제공 엠엔엠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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