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문지원 작가 인터뷰 ③
2022-09-01
글 : 임수연
-18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당대비평> 2000 봄호에 기고한 글을 봤다.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다.” 정말 강렬한 글이던데.

=지금은 대한민국 공교육이 많이 바뀌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나 같은 종류의 인간이 즐겁고 행복하게 다닐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학생회장이 되고 1등을 하고 대회에서 상을 받을수록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서민일 뿐인 부모님이 계속 한턱을 내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이런 대가가 돌아오는구나.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이 트라우마처럼 강하게 새겨졌다. 그런 와중에 도피처가 돼준 게 영화였다. 그때 아버지가 비디오방을 하셨다.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 비디오방에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영화 월간지의 시대였기에 매달 <스크린> <로드쇼> <프리미어> <키노> 중 무엇을 살까 고민하고 음악 듣는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가 나를 집에 안 보내줬다. 점점 그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됐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고2 때 1년만 더 버티자며 대학 입시를 위해 나갔던 토론회에서 조한혜정 교수님을 심사위원으로 만났다. 당시 조한혜정 교수님을 비롯해 ‘또 하나의 문화’ 운동을 했던 분들이 하자센터를 만들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학교를 그만뒀다. 최근 조한혜정 교수님이 드라마를 보고 짧은 문자를 주셨다. “대단한 담론의 장을 열었구나. 수고했다. 그리고 ‘늙은 아버지’에게도 기회를 줬더군.” 아마 본관을 따지는 풍산 류씨 판사님을 두고 한 말 같다. 젊은 혈기로 ‘늙은 아버지!’라고 했던 내가 좀더 입체적으로 기성세대를 묘사했다고 느끼신 게 아닐까. 현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사장이신 김은실 선생님도 문자를 주셨다. “드라마를 보면 원(하자센터에서 호칭 문화를 없애기 위해 문지원 작가가 만들었던 이름)이 작가인 게 표가 나. 너무 자랑스러워.” 당시 하자센터를 세운 선생님들이 꾸준히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대체로 한국에서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중앙대, 서울예대, 동국대 등 일반 대학 영화과라든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한국영화아카데미 등에 입학한다. 이같은 정석 코스를 걷지 않았는데.

=사실 한예종과 한국영화아카데미 시험을 각각 세번씩 봤다. 내 실력도 부족했겠지만, 세 번째쯤 되니 나 같은 학생을 받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느꼈다. 다행히 하자센터의 자원으로 영화는 계속 찍고 있었다. 여기에 현장 경험을 함께 쌓으면서 영화를 배우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는 작품은 자꾸 프리프로덕션만 하고 엎어졌다. 그런 일이 이상하게 반복되니 “내가 현장에서 스크립터를 하는 것보다 데뷔를 하는 게 빠를 수 있겠다”는 슬픈 농담도 했다.

-대신 독립영화워크숍이나 미국 뉴 스쿨 필름제작코스 2년 과정 등을 통해 영화를 배웠더라.

=당시 대안학교 출신들은 문화자원이 풍부한 곳에서 공부한 ‘온실 속의 화초’ 이미지가 있었다. 일부러 터프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한겨레문화센터가 아닌 독립영화워크숍으로 향했다. 당시 선생님들이 류승완 감독님과 강혜정 PD님이 이곳 출신이라고, 역대 수료생 중에 이렇게 유명한 분들도 있다고 자랑했다. (웃음) 독립영화워크숍은 일단 사람이 모이면 헝그리 정신을 갖고 산부터 올라간다. 그리고 ‘장산곶매’ 스타일로 넉달 동안 짧은 단편을 공동 연출한다.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큰 도움을 받았다. 맨해튼에 있는 뉴 스쿨 자체는 1년 학비가 1억원이 넘는 4년제 사립대학교다. 그런데 컬럼비아대 교수들이 대안 마인드로 나와 따로 만든 학교라 퍼블릭 인게이지먼트(대학의 사회연계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지역 칼리지 정도의 학비만 받고 졸업장은 주지 않지만 실제 영화전공 학생들과 같은 수업을 제공하고 장비도 같이 쓰게 해주는 정말 아름다운 프로그램이 있었다. (웃음) 수업을 같이 듣는 분들 중 재미있는 사람도 많았다. 나랑 제일 친했던 50대 아저씨가 당연히 다른 일을 하다가 온,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같이 단편 찍을 때 조감독을 제안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 프로젝트 때문에 장비를 갖다놓으려 그분 집에 갔더니 에미상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거다. “혹시… 이 에미가 그 에미?” (웃음) 알고 보니 미국 케이블 채널 브라보TV에서 오래 일하다 은퇴 후 자기만의 유튜브 프로덕션을 만들기 위해 온 전직 PD였다. 그것도 모르고 내가 영화를 가르쳐주려고 했다니!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공부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 쓰기 1, 2, 3, 4 그리고 영화 관련 기초 수업을 듣고 단편영화 한편을 연출한 후 한국에 돌아왔다.

-오랫동안 꿈꿨던 영화감독 입봉이 꽤 늦어진 편이다. 계속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남들처럼 일반 영화과 코스를 밟았으면 좀더 일찍 일이 풀리지 않았을까 후회한 적은 없었나.

=그런 후회를 하기에는 대안학교 시절이 너무 좋았다. 자신이 가진 자원을 써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있는 곳이었다. 믿을 만한 어른도 많다는 것을 하자센터에서 배웠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굉장히 비뚤어진 사람이 됐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내가 영화계의 서클에 들어갈 수 있을지, 방법을 알지 못해 계속 밖에서 서성였다. 사실 지금도 잘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웃음) 어쩌다 보니 롯데 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커리어가 풀린 거니까. 드라마 신에서도 정식 루트를 밟지 않아서 아는 게 없다. 나는 방송작가교육원도 나오지 않았고 보조작가 출신도 아니다. 이쪽에서도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몰라서 밖에서 기웃거리며 살피고 있다. 심지어 방송작가협회에 가입해야 재방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누가 말해줘서 알았다.

-영화감독보다 작가로 먼저 잘 풀리게 되면서, 사실 자신의 재능이 작가쪽에 가깝지 않았나 고민한 적은 없나.

=그보다는 영화 준비가 너무 힘들어서, 원래 꿈이 작가였다고 말을 해야 하나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러다 결국 최근에 마음을 정리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어떤 주제나 스토리라기보다는 어떤 장면이다. 이 장면을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크다. 비록 너무 힘들지만, 영화감독이 되려는 노력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

-과거 하자센터의 경험이 지금 창작자 문지원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인가.

=당시 하자작업장학교는 각자 탈학교생으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차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가령 9·11 테러가 터졌을 땐 몇달 동안 수업 주제가 9·11 테러였다. 사회 활동가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미얀마 난민촌으로 현장 학습을 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어떤 사안을 놓고 여러 가지 결을 생각하며 토론하는 수업을 계속 받았던 사람이 쓰기 좋은 대본이었다. 당시 내가 만났던 분들을 떠올리며 삶의 경험을 끌어올 수 있는 법정 사례도 많다 보니 내적인 친밀감도 있었다.

-예전에 만든 단편영화는 실험적 성격이 강하거나 호러영화 <코코코 눈!>처럼 장르색이 강한 작품이 많더라. <증인>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전작보다 대중적인 화법을 쓰겠다고 결심한 결과물인가.

=원래 다크한 사이코패스 범죄 스릴러를 준비하다가, 만약 사건의 목격자가 자폐인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태도가 사이코패스와 정확히 반대라고 느꼈다. 연구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 전문가들이 대상에 갖는 혐오가 언뜻언뜻 느껴졌다. 반면 자폐인은 학자들이 굉장한 애정을 갖고 서술한다. 그 태도에 나 역시 감화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 그게 <증인>이다. <증인>을 사랑해주신 분들의 제안으로 만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역시 내가 느꼈던 따뜻한 에너지를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었다.

-영화감독으로서 궁극적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것들인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연락주시는 분들에게 이 얘기를 빨리 드린다. “저는 <양들의 침묵> 같은 거 만들고 싶어요.”

-헉.

=정확하게, 다들 이렇게 반응한다. (웃음) <양들의 침묵>은 정말 멋있는 영화,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공포영화도 좋아한다. <그것>을 보면서 정말 신났다. 공포와 스릴러 같은 어두운 장르영화를 좋아하고, 그런 작품들을 준비해왔다.

-장편영화 연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동시에 진행했던 작품이다. 일본 추리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프로젝트고, 내가 원작을 각색하고 연출한다. 제작사가 영화 정보를 공개하기 전에는 이 정도 선까지만 알려드리고 싶다. 최근 수정고가 나왔고, 여러 투자사 및 소수의 배우들과 천천히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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