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꾸며낸 이야기.” 다이애나 스펜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스펜서>는 위의 자막과 함께 막을 올린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 <블론드>를 한줄로 정의한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매릴린이면서 매릴린이 아니었던, 노마 진의 비극을 기반으로 꾸며낸 이야기. 넷플릭스 <블론드>의 원작이기도 한 오츠의 소설이 출간된 것은 2000년이고, 20주년을 기념하는 개정판 출간과 동시에 영화의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10월 넷플릭스 공개 예정인 이 영화의 예고편은 책 2권 중 ‘전직 운동선수와 블론드 배우-데이트’ 챕터에 실린 마릴린의 전남편 조 디마지오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시작했어요?” 노마 진이었던 여성에게 이것은 어떻게 매릴린이 되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매릴린은 상대의 질문에 내재된 의미를 알면서도 되묻는다. 무엇을 말이에요? 여기에 디마지오는 덧붙인다. “영화 말이에요.” 하지만 매릴린이 영화배우 커리어를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블론드>에서 중요하지 않다. 매릴린 자체가 영화였다는 사실, 노마 진이 어떻게 매릴린이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주변 사람은 그녀를 어떻게 이용했으며, 대중과 언론이 매릴린 먼로를 갈망하고 비난하고 해체한 낱낱의 과정이 소설적으로 묘사된다. <블론드>는 전기다. 명백히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3인칭으로 묘사되는 소녀, 블론드 배우, 노마, 매릴린, 여자, 어린 아내가 모두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매릴린 먼로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오츠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쓴다. “<블론드>는 픽션 형식을 빌려 과격하게 증류한 ‘삶’이며 이 짧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제유는 전유의 원칙이다.” 노마의 수많은 연인, 임신 중단과 자살 시도, 영화 속 연기 역시 실제 있었던 일이라도 작가에 의해 일부만 선택되었으며 그외는 지어낸 것이고 허구라고 못 박는다. 소설에 먼로의 일기 속 시가 일부 발췌된 것 외에 매릴린 먼로의 1인칭 시점 서술은 등장하지 않는다. 먼로의 초상은 온전히 타인에 의한 시선으로만 전개되고 묘사된다. 그의 목소리가 여기 없기에, 이 미스터리하고 비극적인 예술가의 비명 속으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빨려든다.
2권 ‘매릴린’, 1953-1958, 163쪽“젊은 블론드 여자 ’노마 진‘은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깨우느라 애를 좀 먹었어요. 물론 우리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 여자의 영화사/할리우드 이름을. 그러나 여자의 가장 내밀한 자아가 빛을 발했거든요. 순수한 영혼. 그것은 아름다웠고, 거기엔 이름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