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영화 ‘애프터 미투’ 대담 ③ 2022년 현재 미투를 평가해보면
2022-10-06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정리 : 윤현영 (자유기고가)
<애프터 미투>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감독과의 대담

미투 운동을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면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사회적 관성에 거슬러 저항하고 내면의 불편함을 고하는 게 여성들의 시대정신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강유가람 플랫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OOO_내_성폭력 해시태그도 트위터에서 시작됐는데, 어떤 사안을 익명으로 공론화할 때 SNS라는 장치가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느낌이다. 고발이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보니 그만큼 파급력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뉴스에 나와야만 용기낸 만큼의 효용성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SNS만으로 널리 확산될 수 있게 됐다.

소람 2030세대 여성들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분명 있다. 지금 우리 또래의 어머니들은 90년대에 20대를 보내면서 ‘나’의 개성을 중시했고 수평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자식들에겐 생애 최초의 페미니스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중년에 접어들수록 전통적 사상이 그려낸 여성의 모습을 띠면서 괴리가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모순에 혼란스러워하면서 주변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관점으로 확장해나간 것 같다.

강유가람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 10대 청소년 딸을 둔 어머니들이 그렇게 딸과 많이 싸운다고 하더라. 지금 Z세대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페미니즘에 더 급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여자고등학생에 대한 위문 편지 강요, 대선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남자고등학교 축제에서의 아이돌 성희롱 사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등 2022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영화 제목 <애프터 미투>처럼 미투 이후의 2022년은 어때 보이는지 중간 평가를 해보자.

소람 올해 학생들에게 군대 위문 편지를 쓰도록 한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나도 그 학교 출신인데 실제로 내가 고등학생일 때에도 위문 편지를 쓰게 했다. 그게 그 학교의 오랜 전통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담임 선생님이 편지에 우리 신상을 절대 적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말 자체가 신상을 적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아무도 위문 편지에 자신에 대해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생님도 우리 학교 졸업생이었기 때문에 이런 공포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돌아보면 당시 학교는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친구들이랑 공통의 감정을 느끼며 연대를 쌓아왔던 것 같다.

박소현 여성가족부가 2019년부터 이어온 청년 성평등문화운동 ‘버터나이프크루’가 올해 폐지됐다. 버터나이프크루는 2030 청년 3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에 사업비를 지원하여 성평등을 위한 연구와 캠페인, 콘텐츠 제작을 독려했다. 버터나이프크루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 한팀이 나에게 1인 가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 영상 협업을 제안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무산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의 전화 한통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프로젝트가 백지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랐다. 전화 한통이 가지는 다양한 함의가 절망적이기도 했다. 또 올해는 용화여고 스쿨 미투의 가해 교사가 1년6개월의 징역을 마치고 출감하는 해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도 5년밖에 되지 않아서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솜이 그래도 미투 운동에는 연대 의지가 불타올랐는데 스토킹 살인사건 같은 경우는 급격히 우울감이 올라온다.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두워진다.

강유가람 문화예술계를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제도적 변화가 생겨나긴 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9월25일부터 시행되면서 권리 침해에 속수무책이었던 예술가들에게 성희롱을 비롯한 블랙리스트 작성, 갑질 등으로부터 방어막이 되어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아예 없던 시스템을 조금씩 구축해나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회 전반으로 보았을 때 고발 문제를 두고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보다 공동체 모두의 문제로 희석해내는 대중적 능력이 아직은 미미한 것 같다. 조금 더 세심하게 상상해낼 힘이 필요하다. 궁극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보지 않고 여성가족부 폐지만을 내세워서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진다.

가장 최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가해자의 서사에 집중하는 ‘힘패시’(himpathy. him+sympathy)로 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 내에 스토킹 사실이 알려지고도 가해자를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두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거나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도 했다.

소람 어느 순간부터 서사 싸움이 돼버렸다. 가해자 입장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주변 평판이 어떤지 적극적으로 알려주면서 공감을 강요한다. 가해자 서사가 넘쳐난다. 그런 점에서 <애프터 미투> 같은 영화가 더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서사를 발굴하고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쓰리 빌보드>를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강간치사 사건을 지지부진하게 수사하는 경찰 서장의 이야기가 아주 세세하게 나오더라.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얼마나 선하고, 또 암에 걸려 얼마나 힘든지 계속 설명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현실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유가람 사회가 남성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것도 사실이다. 남성의 일이나 능력치에 대한 존중이 과잉되다 보니 법정 판결에서 자주 듣는 단어가 ‘참작’이다. 반면 이 관대함이 여성들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8년에 이뤄진 ‘불편한 용기’ 시위도 성별에 따른 편파적 수사 때문에 시작되지 않았나.

박소현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잘하는 것 같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선 자본가에게,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선 대통령에게 더 이입한다.

이솜이 이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니까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로서 번아웃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영화 질의응답 시간에 ‘이 사회적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빠진 적이 없다.

강유가람 영화에서 남순아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매일 여성 혐오 사건에 몰입해 지낼 수는 없으니 나를 돌보며 조금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의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 그레이스 리 보그스는 “세기 단위로 생각하면 시간의 감각이 달라진다”는 말을 남겼다. 너무 짧게 바라보지 않고 10년, 20년 단위로 생각하면 변화의 폭이 더 체감된다.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수용하면 소진감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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