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1호 [인터뷰] 박가언 월드 프로그래머,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2022-10-06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부산국제영화제 박가언 월드 프로그래머 인터뷰

중남미 및 유럽권 영화의 선정을 담당하는 박가언 월드 프로그래머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를 상영작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작품들이 대체로 어둡다”고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혐오와 인종차별 등의 이슈를 현실적으로 반영한 영화들을 꼼꼼하게 짚어 소개해주었다. 박가언 프로그래머는 “영미권 작품들에 비해 생소할 순 있겠지만 오직 영화제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중남미 지역, 유럽 국가의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주시길 바란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코로나19 여파가 여전한 나라도 있고 전쟁으로 인해 유럽 쪽 상황도 좋지 않았다. 작품 수급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작년보다 올해가 좀 더 힘들었던 것 같긴 하다. 2020년도엔 팬데믹으로 인해 세상이 멈추다시피 했고. 주요 영화제들이 축소 운영하거나 취소되다 보니 프로듀서들이 상황을 지켜보며 작품을 회수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 영화들의 공개 시기가 전부 밀려 2021년엔 오히려 영화가 굉장히 풍성했다. 비록 게스트 초청은 어려웠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올해는 오미크론으로 인해 앞서 진행된 영화제들, 선댄스 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까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작품을 공개할지 말지 다들 다시금 고민하는 시기였던 같다. 한편 동유럽 국가에선 작품에서 러시아 국적을 지우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영화에 도움이 될지 프로듀서들이 신중하게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작품들의 분위기도 대체로 어두웠다. 타 문화권에 대한 혐오, 인종 차별과 갈등 등의 주제를 많이 다뤘다. 유럽에선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경향이 당분간 꾸준히 이어질 것이고 우리도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중남미와 북유럽, 동유럽 등 현재 담당하고 있는 권역이 넓다. 지역별로 감지되는 흐름이 있던가.

=중남미 국가에선 신인 여성 감독들이 급부상하는 추세다. 대체로 연출 경험이 많고 다큐멘터리를 2~3편 정도 만든 뒤에 장편 극영화로 넘어오는 경우들이 있어서 만듦새도 뛰어나다. 영화 학교나 제작 지원 정책들을 떠나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게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 것 같다. 제3세계 여성 감독들의 영화라고 하면 으레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들여다보면 편견은 쉽게 깨진다. 아이디어도 신선하고 다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브라질의 여성 감독 줄리아 무라트가 연출한 <룰 34>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작인데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아주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타 국가의 작품이 북유럽 국가의 영화로 이름표를 바꿔 단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표현의 제약이 많은 나라의 영화들이 그러했다. 이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성스러운 거미>도 덴마크, 독일, 스웨덴, 프랑스로 국가가 표기되어 있고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보이 프롬 헤븐>도 스웨덴, 프랑스, 핀란드의 이름표를 달고 공개됐다. 이스라엘 징병제에 관해 논한 <이노센스>는 북유럽에서 제작된 덕에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영화였다. 상대적으로 북유럽 국가의 영화 지원 정책이 잘돼있고 주제 면에서도 열려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창작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지속해서 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슬픔의 삼각형>과 같은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의 수상작 및 화제작들도 이번 부산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슬픔의 삼각형>은 만약 올해 초청하지 못하면 사표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접촉했다. (웃음)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도 초청하려 했으나 올해 영화제들이 비슷한 시기에 개최된 까닭에 쉽지 않았다. 러닝타임이 2시간 반이라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겠으나 세 개의 챕터로 흥미롭게 구성된 터라 지루하지 않다. 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전부 입체적으로 그려지는데, 그중 여자 청소 직원은 정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를만하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기대감을 내려놓고 보면 재밌게 관람할 수 있을 거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도 이번 영화제에서 만나면 좋을 작품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 차례 상영한 뒤, 이냐리투 감독이 현재 재편집을 진행 중이다. 부산영화제는 베니스에서 상영된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의 최초 버전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 밖에도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EO>를 추천하고 싶다. 대중적인 감성의 영화는 아니지만, 일부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할 거라 자부한다.

-신인 감독들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을 소개하는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선 어떤 작품이 눈에 띄던가.

=뉴 커런츠 섹션이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영화들을 소개한다면, 플래시 포워드 섹션은 비아시아권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섹션이다. 예전에는 신인 발굴을 위해 프리미어 상영작을 고집했는데 그러다 보니 선택에 제한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플래시 포워드 섹션의 기준을 아시아 프리미어까지로 낮췄다. 다른 영화제에 출품했거나 트로피까지 거머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올해도 만날 수 있다. 내가 담당한 권역의 영화를 몇 편 소개하자면, <피해자는 누구인가>는 오랜만에 초청된 슬로바키아 영화다. 아들이 누군가에게 갑작스레 공격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고 엄마는 가해자를 찾아 나선다. 범인은 집시족이라는 아들의 증언에 따라 수사가 진행되는데, 엄마는 갈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고, 엄마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분노의 딸>은 영화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니카라과에서 제작된 장편이다. 감독과 제작진, 출연진들이 경쟁 부문 초청 소식에 감격해 즐거운 마음으로 내한을 준비하고 있다. (웃음) 플래시 포워드는 관객 투표를 통해 수상을 결정한다. 올해는 어떤 작품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지 기대가 된다.

-작년보다 훨씬 많은 관객이 부산영화제를 찾을 예정이다. 오랜만에 정상 개최하는 영화제를 관객들이 어떻게 즐겼으면 하나.

=올해 선보이는 250여 편의 영화는 5천 편이 넘는 영화 중 프로그래머들이 고심해 선별해낸 것들이다. 모든 영화가 재밌진 않겠지만, 이중 당신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한 편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영화를 찾아내는 것이 영화제의 묘미가 아닐까. 가끔 GV(관객과의 대화) 때 그런 이들을 만난다. 영화제에 처음 왔거나, 혹은 그저 자리가 남아서 우연히 이 작품을 보러 왔는데 GV 때 질문을 던질 정도로 작품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런 관객들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 세상에는 영화 외에도 즐길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부산영화제를 믿고 찾아주는 관객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흥미롭고 좋은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아까 이야기한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처럼 이번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있으니 많이들 오셔서 즐겁게 지내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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