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 '작은 아씨들' 배우 추자현②
2022-10-21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초연한 욕망의 얼굴

- 특별 출연 같지 않은 특별 출연상이 있다면 올해의 수상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작은 아씨들>의 추자현이 아닐까. 합류할 때만 해도 이런 반응을 기대하진 못했을 것 같다.

= <작은 아씨들>의 조문주 CP와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를 함께했는데, 빈말을 안 하고 좋고 싫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라 캐스팅 역시 쉽게 던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일단 보고 얘기하시죠” 하면서 8화까지 대본을 보내주더라. 오죽하면 김희원 PD, 정서경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도 나중에 읽으면서 알았다. ‘내 분량은 특별 출연으로 2화까지라고 들었는데, 왜 부담스럽게 8화까지 다 주지? (웃음) 그래도 보내준 만큼 일단 다 읽어보자’라고 툴툴거리면서 시작해 새벽녘까지 멈추지 않고 읽었다. 진화영은 누가 맡든 간에 계속 궁금할 수밖에 없는 힘 있는 인물이었다.

- 2화에서 진화영이 오키드건설의 비리에 얽혀 의문사한 뒤 11화의 법정 신에서 재등장하기까지, 화영의 생사와 행방에 관해 많은 시청자들이 추측을 더했다. 6주 가까이 드라마에 대한 반응을 지켜보면서 어떤 심정이었나.

= 활자가 영상으로 실현되면 읽을 때 살짝 간과했던 부분들까지 상상 이상으로 그 힘이 세질 때가 있다. 인주(김고은)의 감정과 플래시백을 통해 화영이 이야기 속에 환영처럼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조금은 두렵기까지 했다. 막상 화영이 재등장하는 장면에서의 내 감정선이 그동안 드라마 속 현실을 쭉 살아온 배우들에게 못 미칠까봐, 또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

- 진화영은 <작은 아씨들>의 횡령 사건을 여닫는 인물로 서사적 상징성이 크고, 특히 세 자매의 맏이인 인주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등장하는 분량에 비해 체감상 존재감이 클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 그래서 <작은 아씨들>에서 진화영이란 캐릭터가 사랑받은 데엔 인주를 연기한 김고은 배우의 해석과 연기의 몫이 컸다고 본다. 해맑은 인주 특유의 성격으로 늘 일관하다가도 화영 언니 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감정이 깊어지니까. 나도 보면서 놀란 장면이 있다. 신 이사(오정세)가 화영의 집에서 인주를 농락하는 장면에서 인주가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화영도 과거에 똑같은 순간을 겪지 않았을까 싶더라. 김고은 배우가 <작은 아씨들>에서 인주와 화영을 동시에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보배저축은행 사건에 얽혀 엄마를 잃고 상중에도 원상아를 위해 싱가포르로 떠나야 했던 전말이 후반부에 자세히 드러나긴 하지만, 복수심이 화영의 모든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화영만의 욕망을 어떻게 해석했나.

= 레스토랑에서 인주와 ‘부자 놀이’를 할 때 화영은 이미 돈의 맛을 알게 된 상태다. 그렇다면, 이전의 화영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대로 많은 생각을 했다. 엄마의 존재가 화영의 전부는 아니었을지, 둘 만의 삶은 어떠했을지 차곡차곡 전사를 쌓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원상아를 만난 뒤 화영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엔 열심히만 살아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것들이 있다고. 화영이 단순히 복수심에만 사로잡힌 것이라면 법정에서 그렇게 초연하게 원상아를 쳐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외려 초연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돈의 힘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래서 플래시백 장면에서 “사람들의 배를 가르면 돈벌레가 나올 거”라는 대사를 할 때 웃는 표정을 지었다. 자식이 있는데도 돈 때문에 목숨을 끊는 엄마를 보면서, 지독하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정말로 웃기다고 느끼는 상태가 되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 마지막화 비밀정원에서 진화영-오인주-원상아가 3자 대면하는 순간은 <작은 아씨들>의 엔딩을 장식하는 클라이막스였다. 엄지원 배우와는 <작은 아씨들>에서 처음 만난 셈인데.

= 그런데 내용상 화영은 원상아의 실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엄지원 배우와의 첫 대면 장면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배우도 사람이라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차차 케미스트리도 쌓고 서로의 호흡을 알아가는 건데, 우리는 그날 처음 만났으니까. (웃음) 헤맬 시간도 없이 빨리 찍기도 했지만 다들 프로페셔널의 자세로 각자의 방향성에 충실했다. 갑자기 손에 수류탄을 쥐고 뛰쳐들어온 인주는 정말 용감무쌍 그 자체인 자기만의 심지를 밀어붙어야 했고, 박재상(엄기준)의 죽음 이후에 폭주를 시작한 상아 역시 온전히 자기 감정에 몰입해서 약간은 미친 사람처럼 날뛰어야 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원상아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아는 화영은 자기 혼자 죽는 건 상관없지만 인주가 다칠 것을 걱정할 테니 인주의 등장 이후로 많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신은 어떻게 보면 세명의 여자가 한자리에 있지만 자기만의 마침표를 찍고 있던 순간이기도 한 것 같다.

- 대사를 간결하고 문어체적으로 쓰는 정서경 작가의 스타일과 잘 맞던가. “제가 바로 그 진화영입니다” 같은 단순한 문장도 작가의 의도와 배우가 시너지를 내면 뉘앙스가 한층 풍부해지더라.

= 그 대사는 대본을 처음 읽을 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느낌이 잡혔다. 한 끗 차이의 디테일, 약간의 다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배우의 몫이고 자기만의 색깔이 되는 거니까. 정서경 작가님의 대사는 배우 입장에서 어렵고도 재미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말할 때 보통 말과 말 사이를 자연스럽게 잇는 브리지들이 있잖나. 정 작가님의 대사엔 불필요한 브리지가 없다. 구어체에 충실한 대사가 아닌 경우 말을 소화하는 배우는 긴장해야만 하지만, 듣는 관객의 입장에선 오히려 핵심이 딱딱딱 꽂히게 된다. 말하자면 대사에 이미 적절한 힘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배우까지 톤을 강하게 잡으면 작가님이 쓴 대사의 세련됨이 다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뭘 더 얹으려고 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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