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BIAF 2호 [기획] 더 차이니즈 이어 특별전, 중국 애니, 전통을 재창조하다
2022-10-22
글 : 김소미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와 ‘더 차이니즈 이어 특별전’

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함께 중화권 애니메이션을 엄선하여 선보인다. 총 4편의 장편영화, 그리고 12편의 단편영화가 '더 차이니즈 이어' 특별전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는 1992년 시작된 한중 수교의 역사가 30주년을 맞이한 시점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 행사로, 양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중국이 한국에 국가대표 선수단을 파견하면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진전시켰고 이어 1992년 8월24일 정식 수교를 맺었다.

체리레인 No.7 스틸

더 차이니즈 이어 특별전으로 구성된 4편의 장편영화는 중국 상업영화 박스오피스의 최상단에 기록된 두 편의 판타지 설화와 시대의 격동을 되짚는 두 편의 역사극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2019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체리레인 No.7>(2019)은 욘판 감독이 <눈물의 왕자>(2009) 이후 10년만에 귀환해 발표한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다. 배경은 1967년의 홍콩. 주윤발, 장만옥 주연의 <로즈>로 홍콩 영화의 정점을 수놓았던 욘판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추억하는 홍콩에는 혼란과 낭만이 동시에 자리한다. 1967년 반영(反英) 폭동 속에서 홍콩대에 다니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모녀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홍콩에 당도한 역사적 분기점을 내밀한 러브레터와 겹쳐둔다. 하지만 욘판 감독은 베니스국제영화제 참석 당시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로 장기간 저항의 움직임을 지속한 홍콩 시민을 향해 오히려 비난의 목소리를 더해, 홍콩 예술계에 뜨거운 논쟁의 불씨를 던지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신성 레이레이 감독은 <은빛 새와 무지개 물고기>에서 1960년대 중국의 격동기를 통과한 가족사를 시각화했다. “우리 가족은 특별합니다”라는 레이레이의 고백을 따라가다 보면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문화대혁명의 억압적인 여파 속에서 한 가족이 견딘 고난의 역사를 꿈처럼 흡수하게 된다. 팝아트적인 컬러로 만들어진 단순한 작화의 애니메이션에 실제 가족사진을 컷아웃 콜라주로 이어 붙여 완성한 영화는, 그 독특한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깊은 정서적 감흥을 끌어낸다. 이는 감독이 주요 인터뷰 대상자로 삼은 인물이 자기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인 덕분이다. 은빛 새와 무지개 물고기와의 환상적인 비행을 시도하는 애니메이션이 은밀히 발설하는 것은 집단주의에 희생된 개개인의 영혼이다.

은빛 새와 무지개 물고기 스틸

유양 감독의 <나타지마동강세>(2019)는 중국 현지 개봉 당시 20일 만에 약 38억 위안(한화 약 7581억원)을 벌어들여 중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고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언뜻 보기에 마냥 호감가지는 않는 외모, 불분명한 젠더, 아이인지 어른인지 알 수 없는 괴팍한 성격과 초월적인 능력까지, 주인공 나타는 여러모로 낯섦이 곧 인기의 요인이 되었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계보를 따른다. 천상의 지배자 천존에 의해 빛의 구슬 영주의 소유자로 낙점되었지만, 악당의 계략에 휘말려 어둠의 구술인 마환의 존재로, 그는 무엇이든 파괴하고 마는 운명 때문에 출생 직후부터 궁궐에 갇혀 지낸다. 영화는 고약한 운명의 소유자가 적수로 만난 동료를 통해 결국 자기답게 살아가게 되는 과정의 성장담을 그린다. 데뷔작을 만든 유양 감독은 인간, 초월적 인간, 신선, 요괴가 공존하는 도교적 세계관을 중국 3D 애니메이션 기술력의 최고점에서 구현했다. 16세기 중국 소설 <봉신연의>가 품은 환상적 배경을 풀어낸 놀라운 비주얼적 완성도, 디즈니·픽사 식의 유머러스한 캐릭터가 야심찬 조화를 이룬다.

나타지마동강세 스틸

<백사: 인연의 시작>(2019)은 송나라에서부터 구전된 중국 4대 민간 전설 <백사전>을 모티프 삼아 서유기를 뛰어넘는 현대적 해석의 묘미를 보여준다. 흰 뱀 요괴가 인간을 사랑하게 된 전말을 살핀다는 점에서 전설의 프리퀄 격이라 할 수 있다. 뱀 잡는 마을에서 홀로 조용히 약초를 캐는 청년 아선이 어느날 숲 속에서 기억을 잃은 소백을 구해준다. 소백을 구하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고 요괴가 되기를 자처하는 과정에서 500년을 아우르는 우여곡절이 이어진다. 미국 합작 영화인 <백사: 인연의 시작>은 현재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기술력,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있어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한 긍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인 소재와 비주얼을 활용하되, 이를 전달하는 플롯을 할리우드 스타일로 세련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박스오피스 흥행에 힘입어 <백사2: 청사의 시련> 속편이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한편 더 차이니즈 이어 특별전에는 신진 아티스트 발굴에 주력하는 중국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페이나키 베이징 애니메이션 위크’의 주요 단편영화들도 공개되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작품에 대한 철학 교수의 강연을 녹여낸 <타임! 타임! 타임!>(감독 펭 하오밍), 화려한 스웨터를 매개로 사이키델릭한 만화경 속에 빠져든 남자의 모험기 <스웨터>(감독 펭 즐라이), 실존의 감각을 악상 기호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모티프>처럼 시공간의 차원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한 명이 글자를 쓸 동안 나머지 아이들이 움직이고, 글자를 다 쓰면 멈추는 게임인 중국의 동상 게임에 기반해 정지된 세계에 갇혀버린 아이들의 동심을 묘사한 <스테취 게임>(감독 홍 시아오)은 중국 전통과 동화적 이미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할머니와의 기억을 빌려 유년 시절의 내밀한 상처를 토로하는 <큰 나무>(감독 리우 이난), 중국 남부 대도시에 자리한 청년의 외로움을 이미지로 각인한 <커핀>(감독 카이 유안칭, 후왕 후지, 미콜라이 제닌우, 망딩비 레봉, 나탄 그라보트, 테오 트란 응옥)처럼 밀레니얼 세대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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