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는 가족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헌신을 기울였지만 자신이 가장의 자리에서 물어나게 된 것을 가장의 몰락이나 중년 남성의 씁쓸한 말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저씨 캐릭터가 필요 이상으로 자기를 연민하지 않길 바랐다. 왜냐, 다 똑같이 힘든데… 물론 웅이가 어려운 일을 해온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생색내지 않는 아저씨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복희도 고생길을 지나왔고 슬아도 고생하는 중이다.
-웅이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피로를 잘 이해하는 아저씨인 셈이다.
=웅이, 슬아, 복희는 기본적으로 생계에 대한 맷집이 있다. 돈 벌기 위해 여러 힘든 일을 해왔지만 그렇다고 우리만 세상 억울한 건 아니라고 여긴다. 또 웅이는 학습 받지 않아도 딸과 복희와 살면서 민주적 평등을 받아들인 부류의 남성이다.
-웅이와 복희의 전사와 과거 에피소드가 세세하게 나올 수 있던 건 자녀로서 이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일까.
=인터뷰를 따로 진행했다. 다양한 글을 쓰면서도 엄마, 아빠를 인터뷰할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근데 자리를 만들어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족이라서 다 안다고 생각한 그 아둔함이 나를 무례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물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덧대나갔다. 이 둘이 가장 드라마 시청자처럼 읽어줬다. “그럼 이 사람들은 내일 어떻게 돼?” 하고 물어보면서. (웃음)
- 반장은 솔선수범, 편집장은 통솔력과 꼼꼼함, 이장은 너그러움과 카리스마. 보통 ‘장'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미덕이 있는데, 슬아는 이런 면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자유분방하고 고집도 세 고 모부보다 경험도 인내심도 부족하다. 왜 하필 이렇게 괴짜스러운 가녀장의 모습일까.
=슬아가 미덕도 갖추고 늠름한 캐릭터인 건 맞다. 자기만의 유능함과 특별함도 지니고 있고. 하지만 완벽한 가장 여성상을 제시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미디어에서 슈퍼맘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슬아도 우당탕탕 가장의 자리를 통과해가길 바랐다. 다만 슬아가 앓는 소리를 잘 안 내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여느 누아르영화의 우직하고 강렬한 보스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누아르 분위기인데 장소는 주방. (웃음) 홈 누아르, 어떤가. 어린 여자가 성장해야 한다는 서사는 원하지 않았다. 그냥 불완전하지는 않지만 완벽한 여성상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자연스러운 사람.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하다가 데이트도 하고 싶고, 또 낮잠도 자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성장을 하더라도 남성과 하는 게 아닌 점이다. <가녀장의 시대>에 굵직한 연애 라인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슬아는 돈 쓸 줄 아는 가장이다. 보통 부모의 가사노동에 감사해하며 용돈을 드리는데, 슬아는 월급을 준다. 대체 불가한 노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장 보너스, 된장 보너스, 집에 손님이 오면 추가 수당까지. 슬아는 돈을 잘 쓰는 가장이다. 자본주의에서 소비는 수장의 미덕이므로 당연한 태도다. 다만 지금까지 남성들이 돈 쓰지 않았던 부분에 턱턱 쓸 줄 알길 바랐다. 된장 한번 담가보면서 이게 보너스를 주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슬아는 안 거다. 우리 엄마들이 돈도 받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새삼 놀랍다.
-소설 속 가상 회사 ‘낮잠출판사’는 실제 이슬아 작가의 헤엄출판사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모녀지간에 새로운 기술을 알려주고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은데, 어머니 복희님의 수습 기간은 어땠 는지 궁금하다.
=아우, 쉽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복희와 웅이는 블루칼라 노동자고 텍스트를 다루는 직군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복희의 수습 기간에는 이메일을 다루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정말 당황했던 게 엄마가 컴퓨터를 끄고 있으면 이메일을 어떻게 받냐는 질문을 했을 때였다. 마치 집에 아무도 없어서 택배를 못 받는 것처럼. (웃음)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없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한 상황이라 천천히 인내심을 갖고 훈련해나갔다. 사실 기술적인 건 습득하면 그만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보단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복희는 아무나 쉽게 이뤄내지 못하는 일을 성취해내는 직원이다. 출판계에는 아직도 어음 문화가 있다. 외상으로 달아놓은 수금을 적시에 받을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엄마가 장사를 했던 경험 덕에 이런 상황을 유연하게 구슬린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 “송금이 아직 안됐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죠?” 누구도 탓하지 않지만 듣는 사람이 수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멋진 힘을 가졌다. 나였다면 언제쯤 받을 수 있느냐고 메일로 묻고 내내 기다리기만 했을 텐데.
-현재 연재 중인 칼럼에서 장혜영 의원이 시작한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프로젝트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다양한 성별의 보호자를 반영하지 않는 ‘부모’나 외로운 아이라는 뜻의 ‘고아’(孤兒)를 쓰지 않는다고. 이번 작업에서 세심하게 살핀 말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모부’가 있다. 부모의 글자 순서를 바꾼 말이다. 초반엔 이 말을 쓰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의심 없이 부모라는 말을 써왔다면 이제는 균형상 한번 바꿔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가녀장의 시대> 초반에 ‘말이란 세계의 질서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어 슬아는 ‘아버지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내 몸을 기르셨다’는 뜻의 ‘부생아신 모국오신’(父生我身 母鞠吾身)을 저항한다. 그 질서의 순서를 자연스레 바꿔보고자 했다. 또 비거니즘 측면에서 동물들을 마리로 세지 않고 명이나 한분, 두분으로 표기했다. 종차별적 언어를 쓰지 않기 위해서다. 이 표현은 비거니즘 잡지 <물결>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슬아와 복희의 모녀관계뿐만 아니라 복희와 그의 어머니 존자의 관계도 자세히 보여준다. 3대 여성 가족 구성원을 조명한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가녀장이기 때문일까.
=맞다. 가부장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친가친척을 중시하지 않나. 호칭도 친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르고 외가 식구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 부른다. 그래서 가녀장의 시선에서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의 줄기를 따라가고 싶었다. 슬아의 외할머니로 등장하는 존자는 글을 읽지 못하지만 현재 글 쓰는 일을 하는 슬아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교육의 너그러움을 받지 못했던 지난 시대의 여성을 위해 썼다. 사실 내 글은 읽기 쉬운 편이다. 내가 가르치는 초등학생들이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길 바랐고, 우리 할머니가 누군가 읽어주는 걸 귀로 들었을 때에도 막힘 없이 이해하길 바라서 노력했다.
-복희의 말실수 에피소드는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 그의 입을 통과하면 인텔리는 인테리어, 트럼프 대통령은 트렁크 대통령, 올리브 영은 영 일레븐이 된다.
=천연효모빵을 천연호모빵이라고 하고. (웃음) 얼마 전엔 샤인머스캣을 일론머스캣이라고 했다. 사실 이건 복희 혼자만의 실수가 아니라 여러 아줌마의 실수를 섞어놓은 것이다. 50대에 접어든 여성들이 고유명사를 틀리는 실수를 자주 하지 않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도 에블린(양자경)이 자기 딸 조이(스테파니 수)의 또 다른 이름 ‘조부 투파키’를 딱 한번 정확하게 발음한다. 이런 점이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난 그게 그렇게 사랑스럽다. 이런 분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꼭 나를 ‘자기야’라고 부른다. (웃음) 그들은 타인의 일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 한번은 내 친구가 찜질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머리를 들어올려 베개를 넣어주더란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이 상황 자체가 웃겼다. 사회가 집요하게 부정적으로 만들어둔 ‘아줌마’라는 단어에서 그 ‘아줌마 성’을 빼기보다 그 성향을 찬미하고 싶었다. 젠더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해체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랜 시간 쌓아올린 그들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아줌마 성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원작 <가녀장이 말했다> 연재 당시 영상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혔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현재 여러 제작사와 이야기 중이다. 슬아, 복희, 웅이가 구성한 안전한 세계에 왜곡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각본 단계에 참여하고 싶다. 각색을 많이 할 다짐을 하고 있다. 시트콤의 성격은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 시트콤은 다른 장르와 달리 인물들이 회복을 잘한다. 왜냐, 다음 화에도 실수를 또 해야 하니까. (웃음) 계속 잘못을 저지르고 결핍을 내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장도 더디다. 또 대중문화비평 에세이 <어제 그거 봤어?>의 ‘<하이킥> 시리즈에는 책상이 없다’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남성 인물에겐 책상이 당연히 있던 반면 여성에겐 책상 대신 화장대가 있다는 문제를 짚어낸 글이다. 이 글을 읽은 기점으로 지난 시대의 시트콤과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슬아에게 제일 먼저 책상을 줬다. 그리고 낮잠출판사의 운영을 책임진 복희에게도 자기만의 책상을 줬다. 이 글이 드라마 속 인물에게 알맞은 공간을 고안한다는 점을 참고했다.
-<하이킥> 시리즈는 웃긴 장면으로 아직까지 회자되지만 노인 은퇴, 실직 가장, 취업난 등 그 시대의 어둠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시트콤의 페이소스가 <가녀장의 시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요즘 세상만큼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때가 있을까. 슬아는 예외적으로 이 어려움을 치고 올라온 케이스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는지 서사적으로 잘 드러내고 싶다. 또 세 가족 외에 슬아의 친구로 등장하는 레즈비언 부부나 일용직 노동자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그동안 드라마가 많이 조명하지 않은 사정들을 부각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등장인물을 가상 캐스팅해보기도 했다고.
=복희 캐릭터는 어떤 배우가 맡느냐에 따라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 듯한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윤유선 배우다. 인간적이고 따스한 모습을 잘 보여줄 것 같다. 또 김혜수 배우라면 색다른 결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사랑하는 이정은 배우.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기대된다. 웅이는 단연 권해효 배우! 가녀장의 등장을 반길 거라 믿는다. 이젠 슬아가 남았는데, 다른 분들과 상의해서 나온 희망 리스트로 전여빈 배우와 박소담 배우, 김태리 배우를 떠올렸다. 천우희 배우와 한예리 배우까지. 모두 작가 특유의 예민함과 가정을 지휘하는 홈 누아르의 분위기를 잘 녹여낼 것 같아 상상된다. “배우분들이 볼 수 있도록 이 부분은 꼭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