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롤인 블랙 팬서 티찰라를 연기했던 배우 채드윅 보즈먼의 죽음이 <블랙 팬서> 이야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많은 영화 팬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배우가 시리즈에 출연하지 못하게 됐을 때 새로운 얼굴로 대체한 전례가 마블 시리즈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보즈먼을 대신할 배우들의 이름이 루머로 떠돈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속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배우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이야기에 녹여냈다. 그리하여 속편은 엄숙하면서 장엄하고, 화려하면서 강렬한 티찰라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트레일러(예고편)에 소개된 장례식 장면만 봐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영화 안팎의 현실을 새로운 이야기에 반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1월9일 개봉하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그 어느 때보다 트레일러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큰 관심을 받았고, 새로운 블랙 팬서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팬들의 추측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씨네21>은 10월27일,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봤다. 인터뷰하는 동안 질문과 답변 사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떼던 감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티찰라를 대신할 배우를 찾는 대신,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다. 이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채드윅 보즈먼을 잃는 비극 뒤에 속편 제작을 위해 우리는 수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우선 <블랙 팬서>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의 흐름이 영화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블 프랜차이즈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물론이고 영화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반영되어야 했다. 그래서 속편으로 돌아올 때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전부터 속편을 만든다면 신선한 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채드윅 보즈먼의 죽음, 블랙 팬서의 죽음 뒤 남겨진 사람들이 그의 유산을 기리길 바랐다. 현실은 물론 영화 속의 커다란 상실 뒤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새로운 리얼리티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실은 그래서 어렵다. 나를 위해 존재하던 특별한 한 사람이 사라지면 세상이 모두 바뀌어버린다. 새 영화에서 그런 현실적인 부분도 보여주고 싶었다.
-블랙 팬서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슈트도 관심의 대상이다. 새로운 슈트는 어떤 기능과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티찰라가 입었던 슈트는 그의 아버지 트차카가 입었던 블랙 팬서의 슈트였다. 슈리가 티찰라를 위해 만들어준 새로운 슈트는 <블랙 팬서>에서 처음 선보였다. 새로운 팬서를 위한 새로운 슈트는 선대 팬서들의 슈트가 가졌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했고, 동시에 우리가 보여주려는 스토리에 적합한 기능과 디자인을 장착해야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팬서 슈트를 만들었다.
-새로운 블랙 팬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블랙 팬서> 개봉 당시 인터뷰했을 때, 감독은 티찰라에 대해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슈퍼히어로”라고 말했다.
=새로운 블랙 팬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대답을 아껴둬야겠다.
-와칸다에 이어 탈로칸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해저왕국을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새 영화를 준비하고 탈로칸을 떠올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탈로칸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블랙 팬서>의 세계관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면서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특정한 문화적인 배경이 탈로칸의 바탕이 됐든 간에 와칸다를 만들었던 만큼의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와칸다라는 공간과 관객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탈로칸 역시 관객과 연결성을 가질 수 있어야 했다. 탈로칸에 대한 컨셉이 만족스럽게 완성된 뒤에는 실재하는 특정 문화를 선택, 반영함으로써 현실성을 높이려고 했다. 탈로칸 왕국을 구현함에 있어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영화의 역동성은 물론이고 와칸다와의 멋진 대결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시각적으로는 고대 마야 문명이 탈로칸을 건설하는 데 문화적인 영감을 주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앤절라 배싯, 루피타 뇽오, 레티티아 라이트 등 강한 여성상에 대한 영화의 시선도 <블랙 팬서>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관객과 미디어가 강한 여성상에 매료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차별성을 찾을 수 있는 선택과 취향을 통해 현재의 미디어가 보여주는 모습에 균형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선택은 세상에도 가치가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내가 이에 관해서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를 만들 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자라는 정체성을 떠나 내가 만드는 영화 속 캐릭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내가 갇혀 있던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기회가 소중하고 그런 기회를 영화를 통해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만들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슈퍼히어로 장르는 이제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끊임없이 새롭게 제시해왔다. 그래서 <블랙 팬서> 시리즈를 통해 보여질 강한 여성상의 캐릭터가 관객에게 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기회를 만들어낼지 생각하면 행복하고 흥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