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먹어야 산다. 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명제를 단어 하나만 바꿔 순식간에 공포스러운 문장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은’을 ‘을’로 바꾸는 것이다. ‘사람을 먹어야 산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본즈 앤 올>은 사람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살기 위해 사람을 먹는 ‘이터’(eater)들의 이야기이다. 단, 이 문장은 정확히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의 취향으로서, 예컨대 미식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본능적으로 식인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적으로 보다 익숙한 소재와 비교하자면 ‘뱀파이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터와 뱀파이어 모두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인간의 살갗을 물 뿐이지만, 그 결과로 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그 무엇도 아닌 인간의 목숨을 필요로 한다는 비극. <본즈 앤 올>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두 남녀 매런(테일러 러셀)과 리(티모시 샬라메)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생존 조건에 대해 말한다. 사람은 무엇을 먹어야 살 수 있는가. 그것은 엠마와 안토니오의 새우 요리일까(<아이 엠 러브>), 아니면 엘리오와 올리버의 복숭아일까(<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대답은 단호하다. 바로 그 모든 ‘먹을 것’ 안에 담긴 사랑이다.
세상 모든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
18살 매런은 어느 날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더이상 매런을 감당할 수 없는 아빠가 매런을 버린 채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미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상태다. 매런은 아빠가 남기고 간 녹음테이프를 재생해본다. “널 더이상 도울 수 없어”라는 말로 운을 뗀 아빠는 이어서 매런에게 자신의 입장에서 지켜보았던 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런의 첫 ‘이팅’(eating)은 베이비시터였다는 것과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수습했는지에 대하여. 매런이 두 번째로 먹은 사람이 누구였는지와 자신이 그것을 또 어떻게 수습했는지에 대하여.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는데 결국 딸의 본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때에 느꼈던 절망감과 단지 수습하고 또 수습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자신의 참담한 심경에 대한 아빠의 증언이 이어진다. 아니 이어지는 것은 변명이다. 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 너를 더이상 사랑해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주 긴 변명. 아직 어린 매런은 아빠가 자신을 떠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겨둔 출생증명서에 적힌 엄마의 주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엄마는 자신의 존재에 관한 비밀을 알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 아니 다 필요 없으니 이런 자신이라도 사랑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메릴랜드주에서 미네소타주까지, 1500km가 넘는 여정에 나선다.
매런은 그 길에서 자신과 같은 질문을 품고 있는 인물을 만난다.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리다. 매런은 리를 알아보고, 리도 매런을 알아본다. 리를 만나기 전, 또 다른 이터인 설리(마크 라일런스)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이터를 알아보는 법을 익힌 덕분이다. 설리는 냄새를 통해 이터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실제 이터가 아닌 이상, 냄새를 통해 식인 여부를 구별한다는 설리의 주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얼핏 가상의 존재인 뱀파이어같이,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임은 분명하지만, 영화 속 이터들이 풍기는 알 수 없는 쓸쓸한 분위기와 아무리 깨끗이 비누칠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외로움의 냄새가 서로를 알아보게 하는 뚜렷한 단서로서 활용된다는 설정은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같은 맥락에서 매런과 리의 급작스러운 동행 역시 개연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마치 외톨이가 외톨이를 알아보고 아웃사이더가 다른 아웃사이더를 쉽게 발견하는 것처럼, 매런과 리는 각자의 내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모종의 ‘허기’를 감지하게 된다.그런 의미에서 <본즈 앤 올>은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인육을 먹는 사람들을 뱀파이어나 돌연변이 같은 ‘괴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인 아웃사이더로 보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연배우인 테일러 러셀은 <본즈 앤 올>의 미국 배급사 MGM 스튜디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의 특별 영상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두 주인공을 아웃사이더라고 소개했고,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역시 여러 공식 인터뷰에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우리 모두는 아웃사이더이기도 하다”라는 말로 자신의 영화를 설명한 바 있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인간을 먹는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다름의 영역으로 생각해보자는 상당히 급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카니발리즘의 경우, 문명과 동떨어진 야만의 시대에 벌어졌던 일, 혹은 비현실 장르의 소재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기에 더욱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한때(혹은 누군가에겐 여전히) 틀림의 영역에 있었던 동성애를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훌륭하게 표현해냈던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번 영화에서도 전세계 아웃사이더들의 마음을 위무해내는 데 성공한다. <본즈 앤 올>은 스스로를 유별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단 한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외톨이들에게, 그 누구보다 외로웠을 매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초반 “이런 사람은 나뿐인 줄 알았어”라고 말하던 매런이, 마침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때 배경에 깔려 있는 아름다운 풍광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입’ 이 있는 곳이라면
욕망 3부작이라 알려진 세편의 로맨스영화를 찍은 뒤(<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돌연 1977년에 만들어진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명작 호러 <서스페리아>의 리메이크 영화(<서스페리아>)를 연출했던 루카 구아다니노의 필모그래피는, 로맨스/호러 영화인 <본즈 앤 올>을 향한 로드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도착지에 있는 <본즈 앤 올>이 앞서 언급한 영화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본즈 앤 올>이 자신의 개별 로맨스/호러 영화들보다 더 로맨틱하고 더 공포스러울 뿐만 아니라, 한 영화에서 로맨스와 호러 두 장르의 완벽한 화합까지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가 된 두 장르는 완벽히 뒤섞여 서로가 각자의 장르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영화 속 예시가 필요할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아니 가장 신경 쓰이는 대상은 매런과 리의 입이다. 입은 영화의 장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 로맨스영화에서 입은 입맞춤을 통해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기표 중 하나이지만, 공포영화에서, 특히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에서 입은 영화를 한순간에 피바다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관련해서 단연 압도적인 장면은 이 영화의 오프닝이다. 영화는 아직 길을 떠나기 전인 매런의 한때를 보여준다.
동성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매런은 친구와 거실 바닥에 나란히 누워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친구를 향한 매런의 몸짓이 심상치 않다. 친구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친구의 얼굴에 조금씩 다가가는 듯하다.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친구는 무심결에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고, 매런은 그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는다. 동성간의 에로틱한 스킨십이 진행될 것 같다는 관객의 예상은, 매런이 0.5초 만에 그 손가락을 깨묾과 동시에 깨지고 만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선택한 이 영화의 강력한 오프닝(동명 원작 소설과 가장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은 관객의 머릿속에 어떤 씨앗을 심어놓는다. 바로 언제 어디서나, 등장인물의 대사 속 단어가 하나만 바뀌어도 순식간에 유혈이 낭자하는 영화로 바뀔 수 있다는 것. 요컨대 <본즈 앤 올>은 인간의 ‘입’이 있는 곳이라면,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영화다. 설령 지금 막 사랑을 속삭였던 입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입이 애정의 표시로서 상대의 입술을 깨무는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순간을 연출한다 하더라도, 영화를 보는 당신의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얼핏 완전히 반대에 있다고 생각했던 로맨스와 공포의 감정이 실은 한끗 차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뼛속까지 온몸으로 깨닫게 한 루카 구아다니노의 탁월한 연출과 장르 해석에 대해선, 영화 개봉 이후에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만하다.
사랑을 먹는 사람
한편의 훌륭한 로맨스영화이자 그 어떤 영화보다 무서운 공포영화, 동시에 미국 중서부 지역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장대한 풍광을 담은 로드무비이기도 한 <본즈 앤 올>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최고작 순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작품이다. 올해 8월에 열린 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본즈 앤 올>을 맨 위에 올리는 것도 일리 있는 판단일 것이지만, 과거 아쉬웠던 감독의 전작들 역시 돌이켜보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여정은 돌고 돌아 결국은 ‘러브’다. 사람을 먹는 사람도 사람을 먹지 않는 사람도, 살기 위해선 사랑을 먹어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프랑스의 유명 미식평론가인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의 말이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who we are)를 결정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온몸이 사랑에 휩싸인 누군가를 뼈까지 모조리 삼킨 매런의 앞날을 상상해본다.
20대 영화인들과의 협업
<본즈 앤 올>은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찍은 영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때 이탈리아로 건너가 20대 초반에 자신의 인생 작품을 만났던 티모시 샬라메는, 이번엔 미국에서 첫 작업을 하는 감독을 위해 주연뿐만 아니라 제작자로도 참여해 힘을 보탰다. 덕분에 캐나다 출신의 1994년생 배우 테일러 러셀 역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젊은 영화인들과의 협업은 배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영화의 촬영감독 아르세니 하차투란과 편집감독 마르코 코스타 역시 20대 창작자들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색깔을 유지해가는 동시에 젊은 영화인들과의 교류를 멈추지 않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다음 작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