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커넥트’ 고경표, “몰입의 중도”
2022-12-14
글 : 김수영

지난 11월25일, 2022 청룡영화상 이후 가장 화제성 있게 언급된 이름은 배우 고경표였다.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로 꼽히는 고경표는 컷 소리에 서늘한 연쇄살인마로, 다시 컷 소리에 명랑한 자기 자신으로 무리 없이 넘나든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말처럼 “몰입이 강한 배우”다. 올해 영화 <우라까이 하루키> <헤어질 결심> <육사오>, 드라마 <서울대작전> <월수금화목토>까지 부지런히 선보인 그가 <커넥트>의 빌런 진섭으로 돌아왔다. 전작의 어떤 캐릭터와도 닮지 않은 인상과 제스처로 고경표는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그려냈다.

-최근에야 완성본을 봤다고. 어땠나.

=신선하게 빠져들었다. 빠른 호흡의 영화가 많은 시대에 상대적으로 느린 호흡으로 흘러가면서도 인물의 정서를 깊게 전달한다고 느꼈다. 장르 특성상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고 인물들의 관계나 캐릭터의 사고방식이 독특해서인지 컷이 빠르게 넘어가지 않는데도 몰입해서 봤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진섭 캐릭터를 두고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캐릭터상을 깨고 싶다”고 했다. 새 빌런을 위해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진섭은 죄의식 없이 사람을 해치고 타인의 신체를 통해 자기 삶의 존재와 목적을 세상에 보이고자 한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섬뜩해서 과장되고 들떠 있는 모습보다 오히려 차분한 사람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감독님도 진섭이 최대한 표현을 자제하길 바라셨다. 대신 눈빛과 분위기를 통해 진섭의 집요함을 드러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할 때 힘을 빼고 쇳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말투를 보면 조금의 에너지도 타인에게 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맞다. 뒤로 갈수록 진섭이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을 수 없는 이유가 나온다. 진섭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본인이 해야 할 일에 그동안 축적한 에너지를 다 쏟아야만 한다. 진섭이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소시오패스가 일상에서는 구분되지 않는 존재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오진섭은 이질감이 드러나길 바랐다. 일상적인 척하다가 반전을 주는 게 클리셰라고 생각해서 대놓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진섭을 “좋아할 만한 매력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인물”이라고도 말했다. 연쇄살인마 진섭 역은 연기 변신이자 나름의 도전이었을 것 같다.

=그동안 해오지 않았던 다른 분위기의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보람됐다. 아무리 연기이고 안전한 장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합의라고 해도 마음이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빌딩 위에서 사람을 집어 던지는 장면을 찍을 땐 안전장치를 했음에도 실제 사람이 난간 밑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봐야 했다. 액션 합을 맞출 때도 피할 수 없는 신체 충돌이 있었다. 평소에도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점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이전과 다른 캐릭터를 찾고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보람을 강조하더라. 당신에게 새로운 캐릭터는 어떤 동기가 되나.

=연기를 시작할 때 히스 레저를 롤 모델로 삼았다. 히스 레저가 연기를 대하는 태도나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히스 레저는 순수한 사랑을 지닌 청춘 스타의 모습이다. 반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는 디테일한 발음과 특유의 입 모양으로 색다르게 인물을 표현해내 신선했다. <조커>는 또 다르다. 감정에만 치우쳐 연기하기보다는 배우의 고유한 스킬 위에 감정을 더하면 새로운 인물을 그려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를 보면서 연기를 오래하려면 어떤 재미를 익혀야 하는지 알게 됐다. 나도 신체적인 변화나 특수분장을 통해서라도 고경표라는 인물을 지우고 다른 캐릭터로 그때마다 관객에게 새롭게 다가가고 싶다.

-평소에도 다른 배우의 연기를 유심히 본다고 들었다. 연기 스터디도 계속하고 있나.

=데뷔 이후에는 자기 본연의 연기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스터디하는 친구들과도 연기에 관해 자주 공유하지만 혼자서 잠깐이라도 꾸준히 훈련하고 있다. 주로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서서 다른 배우의 표정이나 말투의 디테일을 몸에 익히는 연습을 한다. 말의 빠르기나 어미의 끝처리 같은 것을 신경 쓰면서 똑같이 모사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분위기를 가져오려는 연습이다. 다음 작품을 위해 최근에는 하정우 선배가 <더 테러 라이브>에서 보여준 냉철한 아나운서의 모습을 연기해보고 있다.

-최근에 청룡영화상을 즐기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사람들의 반응을 즐겁게 찾아봤다. 예전부터 시상식에 가서 더 놀고 싶었지만 불안감이 있었다. 사적인 모습을 드러내서 일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이미지가 가벼워져서 캐릭터 롤을 받는 데 영향이 있진 않을까.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막연하게 갖고 있는 두려움이다. 다행히 요즘은 시청자 분들이 공적, 사적인 모습을 분리해서 봐주시는 것 같다. 덕분에 더 용기내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친구들은 평소의 내 모습을 봤다고 했고 동료들도 앞으로 영화제를 더 즐겨보고 싶다고 했다.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받기도 했는데 이런 작은 계기로 문화도 조금씩 바뀌어나가면 좋겠다.

-올해 자신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총 여섯 작품이 공개됐는데 작품마다 캐릭터가 다 다르다. 내가 너무나 바라던 일이 12년 만에 이루어졌다. 또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해 관계자 분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좋게 봐주고 내 노력에 관심을 가져줘서 뿌듯했다. 삶의 성과를 이제껏 수직적으로만 봐왔다면 이제는 수평적으로 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의 신체와 커넥트될 수 있다면 누구와 커넥트되고 싶나.

=(한참 생각하다) 우리 조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나 궁금하다. 해주고 싶은 게 많다. 커넥트돼서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뭘 느끼면서 사는지 알고 싶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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