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김과장’ 박재범 작가,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게 목표"
2023-03-12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사진제공 KBS

- <김과장>을 기점으로 독특하고 참신한 도전에서 공감의 영역으로 무게추가 옮겨간 걸로 보입니다.

= 맞습니다. <블러드>까지는 메디컬 의학, 미스터리에 기반을 둔 구도였는데 <김과장>부터 코미디가 강해지고 웃음에 많은 공을 들였죠. <블러드>가 끝나고 온갖 병이 다 몰려왔어요. 10년치 스트레스에 몸이 무너진 시기였죠. 수술하고 병원에서 2주 정도 쉬면서 할 일이 없어서 대한민국 예능이란 예능은 다 봤어요. 지금도 글을 쓸 땐 보든 안 보든 항상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습니다. 요즘엔 <피지컬: 100>이 재미있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확장성, 그러니까 대중적인 이야기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한번은 쉬면서 군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수다를 떠는 두 아저씨를 만났어요. 한쪽이 다른 쪽에 채용을 부탁한 상황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성의 표시를 안 해서 섭섭하다는 말을 나누고 있었죠. “김 과장, 사람 그러는 거 아니야. 좋은 마음으로 해줬으니 나는 괜찮아. 근데 거기 식구들은 환영식도 해줘야 하고 돈이 필요할 거 아니야?” 그 대화를 듣는 순간 차기작은 <김과장>으로 정해졌습니다. (웃음)

- 그야말로 운명처럼 다가온 이야기네요.

= 이거다, 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지친 상태이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어요. 안 해본 방향이었지만 어렵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일단 뭐를 좋아할지 모르니 좋아할 만한 걸 다 넣었죠. (웃음)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A부터 Z까지 다 건드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에요. 코미디는 유치함과의 싸움입니다. 병맛부터 슬랩스틱까지 웃음의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게 가져가고 싶었어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1편을 다 본 것처럼 버라이어티하게 가는 거죠. 사실 다 넣는다는 게 말은 쉽지만 전체적인 리듬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어요.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주인공이라는 마에스트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연들이 파트마다 개성 있는 색깔을 선보이는 게 중요했어요.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조연의 수도 많아졌고, 조연마다 각자가 주인공이 되는 파트가 있어요. 장르물이라고 하지만 실은 버라이어티 캐릭터물인 셈이죠.

- 의학 기반의 초기작들과 마찬가지로 <김과장> 이후 <열혈사제> <빈센조>의 코미디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한층 강화됐습니다. 음식으로 치면 단짠단짠이라고 할까요.

=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게 목표예요. 메시지만 있으면 그저 프로파간다에 불과하고, 재미만 있으면 의미 없는 공허한 오락에 불과하죠. 웃음에는 시선을 모으고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바닥을 찍을 때도 다시 튕겨 오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미디가 매력적인 거죠. 제대로 잘 웃기기 위해선 공감할 수 있는 단단한 내용물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과장> 속 김 과장은 마냥 의인이 아니라서 좋아해요. 이기적, 이타적인 행동을 나누는 사이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지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김 과장은 적당히 계산적이고 속물인데, 최후의 선은 지키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인물이죠. 마냥 정의롭기만 한 건 피곤하니까요. 과정이 매번 정당할 수만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현실에서 하기 힘든 부분을 시원하게 건드려주고 싶었습니다.

사진제공 SBS

- 사회 비판과 풍자의 또 다른 맛은 수많은 명대사에 있습니다. <김과장>에서 “우리 목표는 1번 버티기, 2번 더 버티기, 3번 죽어도 버티기”라는 대사는 각박한 세상에서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대신 읊어주는 동시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자조가 묻어납니다.

= 감사합니다. 시청자의 마음의 소리를 대신 꺼내주고 싶었어요. 대사는 매일 일상에서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두는 편입니다. 특정 테마에 꽂혀 있으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모두 그 방향으로 출력이 되거든요. 아이디어의 원천이 있다면 대체로 잡념에 가까워요. 머리 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다듬고 정제하는 작업이 글 쓰는 일의 팔할인 것 같아요. 아침에는 잠깐 책을 보고 오전 11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까지 회의를 합니다. 5시 이후부터가 온전한 내 시간인데,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달려서 오래 쓰진 못해요. (웃음) 그래서 일상 속에서 모아둔 아이디어나 대사, 말들이 더 소중합니다.

- 글이 막힐 때 돌파하는 요령이 있을까요.

= (단호하게) 안 써야 돼요. 일단 멈추고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글이 안 써진다는 건 지금 구조적으로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니까요. 하나에 몰두하다 보면 전체 구조가 안 보일 때가 있어요. 중요한 건 전체적인 설계예요. 부실 공사인데 끝까지 몰아붙인다면 결국엔 균열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캐스팅이 엉망이라서, 재미가 없어서 등등 드라마가 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초기 설계와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가 딱 데뷔 20주년이었는데 되돌아보니 이제껏 마감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상상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마감 이후의 시간에 대한 상상력 말이에요. 글이 막힐 땐 우선 마감일에 맞춰 호텔 예약을 해놓습니다. 마감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언제 하는지는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탈고한 후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버티는 거죠. 한번은 동료 작가들과 “우리는 언제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한 적이 있는데, 결론은 이 일을 관두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어차피 해결할 수 없다면 친해질 수밖에 없는 이 친구를 잘 다독이면서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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