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태우는 거대한 불길도 작은 불씨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을 집요하게 쫓는다. 파우릭(콜린 패럴)은 동네에서 무시를 당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친구들과 바에서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일상에 나름 만족 중이다. 어느 날 절친이라 믿었던 콜름(브렌던 글리슨)이 절교를 선언하며 파우릭의 평화도 부서진다. 콜름은 더이상 시시껄렁한 대화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며 창작을 위해 파우릭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한다. 콜름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파우릭은 그의 삶에 개입하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이를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콜름은 극단적인 협박과 함께 끔찍한 행동을 벌인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통찰과 은유가 빛나는 블랙코미디다. 아일랜드 내전의 역사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근본은 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부조리극에 가깝다. <쓰리 빌보드>가 딸의 살해범을 찾는 과정보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사람들이 화해하는 방식을 그린 영화였던 것처럼 <이니셰린의 밴시> 역시 왜 절교를 했는지가 그다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관계의 따뜻함을 추구하는 파우릭과 생의 의미를 찾는 콜름의 대립은 이윽고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예정된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누군가로부터, 아니 세계로부터 거부당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소통 없는 진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관계의 종말, 상실을 그린 단순한 이야기 위에 흥미로운 질문들이 들꽃처럼 피어난다. 콜린 패럴, 브렌던 글리슨은 물론이고 케리 콘던, 배리 키오건의 무르익은 연기가 한층 깊이를 더한다. 날카로우면서도 우아하고 따뜻하면서도 쓸쓸하여 마침내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