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리바운드’ 장항준 감독, 배우 안재홍, “누구에게나 다시 기회가 필요하다”
2023-03-28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실수와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 ‘리바운드’는 오직 농구 코트 안에서 유효한 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경기장과 영화관 바깥으로 연결된 희망의 언어이기도 하다. 한때 고교 농구 MVP로 이름을 알렸던 강양현은 해체 직전인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팀 코치를 맡게 되면서 마음 한구석에 잠재워두었던 꿈을 깨우고 새로운 반등을 계획한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현실은 지리멸렬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고난만이 이어진다.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은 “대부분의 삶이 뜻한 걸 이루지 못하고 꿈꾸는 것조차 어느 순간 멀게만 느껴진다”며 강양현 코치와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얼굴을 바라보게 만든다. 배우 안재홍의 말처럼 이제는 “내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는 너그러움”을 장착할 차례. <리바운드> 안팎의 두 리더, 장항준 감독과 안재홍 배우를 만났다.

<리바운드>와 함께하게 된 인연이 궁금하다.

장항준 <리바운드>는 2012년 부산 중앙고의 실화에서 시작됐다. 당시 ‘언더도그의 반란이다’, ‘한국판 <슬램덩크>다’ 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때 장원석 제작자가 강양현 코치에게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농구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렵던 시절이라 진행이 좀 더뎌서 그로부터 5년 뒤에 연출 제안과 함께 권성휘 작가의 시나리오를 전달받았다. 조사를 해보니 상황이 훨씬 열악했던 터라 조금 더 실제에 가깝게 고증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김은희 작가가 한번 읽어보더니 “이거 내가 하면 안돼?” 하고 묻더라. 이게 웬 떡인가! 당장 건네줬고 그렇게 영화 작업에 착수했다.

안재홍 어느 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보는데 장항준 감독이 나와 <리바운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근데 이상하게 왠지 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뜨거운 이야기라 내가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딱 사흘 뒤 내게 시나리오가 왔다. 벅차올라 한번에 읽고 당일 저녁에 바로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강양현 코치는 기존 스포츠영화에 그려지던, 재야의 숨은 외골수 코치들과 다르다. 젊은 나이지만 아이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설득할 줄 알고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용기도 보인다.

안재홍 확실히 강 코치는 과거에 상처를 크게 입고 은둔 고수처럼 살아가는 코치들과는 다르다. (웃음) 그렇지만 꿈을 한번 접었던 전사가 있어서 공익근무 생활을 하다 덜컥 찾아온 기회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간절하지만 서툰 인물이다. 보통 스포츠영화에선 코치가 긍정적인 확언으로 선수들을 고취시키는데 강 코치는 그저 “지금을 보라”고 한다. 친구들에게 생애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직면하고 즐기라는 말을 건넨다. 이러한 대목이 영화 바깥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더 강렬하게 와닿지 않을까 싶더라.

장항준 성장의 중심에 강양현 코치가 있다. 워낙 안재홍 배우가 인물 표현을 잘해주어서 힘을 주지 않은 장면에서도 현실적인 모습이 잘 살아났다. 강양현 코치의 “농구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럼 점에서 영화는 농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평범한 10대 청소년으로서 주인공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장항준 영화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아이들이 옥상에서 앞으로 농구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그때까지의 정황만 본다면 이들이 아무리 평생 농구만 해왔어도 고등학교 단계에서 선수 생활이 끝났을 것이다. 그게 엘리트 스포츠의 이면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리바운드>도 실화의 결과가 좋으니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불안한 와중에도 계속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어느덧 어른이 돼 있을 거라는 아이들의 믿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편집 단계에서 딸에게 영화를 보여준 적 있는데 이 장면이 제일 좋았다고 하더라. 진로를 고민하는 세대가 가장 공감하는 장면인 것 같다.

강 코치도 미래가 막막한 공익근무요원으로서의 청년상을 잘 드러낸다. 실존 인물인 강양현 코치를 직접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안재홍 하루는 장항준 감독님과 강양현 코치를 다 같이 만났는데 영화화가 처음인 코치님이 “극 중에서 저를 죽여도 좋습니다”라고 하더라. 도대체 농구영화에서 코치가 왜 죽냐고 다 같이 웃었다. (웃음) 강 코치는 딱 20대 중후반의 청춘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과 현실은 지난하게 다르고, 좌절하기 앞서 당장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다. 부산 촬영 중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이 하나 생겨났다. 강 코치가 홀로 소주를 먹는 장면인데 영화의 전반적 갈등이나 개인 강양현의 심정 등을 딱 그 나이에 맞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장항준 혼자 쭈그리고 앉아 술 마시는 강 코치는 우리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청년의 얼굴이었다. 그게 영화의 현실적인 한끗을 잘 살려줬다.

<리바운드>는 단순히 어린 선수들의 협동이나 경기 승패만을 다루지 않고, 당시 스포츠계에 만연한 고질적 문제도 보여준다. “부산에 남으면 나가리 된다”는 대사는 지역 격차에 따른 인재 부족 문제를 상징한다.

장항준 인재 부족과 누수는 취재 과정 중 지방에 위치한 농구팀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모두가 서울로 향한다. 이런 현실에서 극한 경쟁을 다루기 위해서는 지역 편중과 엘리트 체육의 이면을 배제할 수 없었다.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니 그것을 주요하게 다루진 않지만 소외되고 잊힌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배경 안에 어떤 시스템이 담겨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당시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환호하고 또 지금 영화 관계자들이 시나리오를 좋아한 이유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준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때문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실제를 방불케 하는 박진감 넘치는 농구 경기였을 텐데. 연출자로서, 선수들을 통솔하는 강 코치로서 무엇에 신경 쓰려 했나.

장항준 웬만한 스포츠영화보다 경기 장면이 많이 나온다.

안재홍 그때 배우들의 눈빛이 거의 특전사였다. (웃음)

장항준 워낙 농구가 빠르게 흘러가고 가만히 서 있는 포지션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합을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몇달 동안 합숙하고 연습하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최종 시나리오가 정해진 뒤엔 두어달 동안 경기 합만 맞췄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애들이 실력이 너무 늘어버린 거다.

안재홍 최약체 농구팀인데 넣는 족족 골인돼서 골을 넣고도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웃음)

그 덕에 선수들이 경기 촬영에 더 몰입할 수 있었겠다.

안재홍 경기 장면에서 총 10명의 선수가 뛰니까 무수한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정신없이 합을 맞추다보면 이미 예정된 합을 지나 있는데 장항준 감독님은 현장감을 중요하게 여겨서 컷을 안 하신다. 그럼 계속 공을 던지고 뛰고 따라가면서 경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장항준 일부러 컷을 안 해봤다. 약속되지 않은 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거칠고 날것 같은 장면들이 있다. 그런 게 너무 좋았다. 내가 고생하는 건 아니니까! (웃음) 테이크를 많이 못 가는 대신 800프레임의 초고속으로 촬영했다.

안재홍 승리를 거듭할수록 상대편이 강해지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영화 촬영이란 걸 알면서도 배우들끼리 동그랗게 모여서 “저들은 진짜 다른 것 같다…” 하며 더 의기투합했다. 나중엔 정말 경기를 앞둔 선수들 같았다. 모두가 공동의 목표로 나아가는 한팀이 되었다.

촬영장의 장항준 감독은 어떤 유형의 디렉터인가.

안재홍 촬영장에 있는 장항준 감독님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방송에서 유쾌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셨으니까. 그런데 그 유쾌함이 현장 그대로 이어진다. 그 덕에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또 연기 디렉팅도 명료하고 정확하게 주셔서 배우로서 어떤 큰 그림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장항준 감독님을 보면 지휘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항준 약속된 대로 잘 말해주는군. (웃음)

영화는 등장인물에게 계속 실패를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장항준 우리는 다 부족하다. 다양한 형태의 부족을 인정하는 건 자책이 아니라 용기다. 예를 들어 내가 게으른 성정을 타고났다면 그 게으른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니까 내게 맞는 현실적인 방책을 궁리해볼 수 있다. ‘그래 나 게을러! 그러니 이 일을 하는 데엔 평소보다 시간을 더 줘야지’ 하면서 내게 맞게 현실적인 계획을 짤 수 있지 않나.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근육과 인내를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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