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피지컬: 100’ 장호기 PD, “학폭 이슈, 출연자 검증의 문제는 앞으로도 과제”
2023-03-30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 1천명의 리스트를 꾸리고 미팅을 통해 500명, 100명을 추려나갔다고 들었다.

= 몸과 관련한 인플루언서가 많아서 리스트를 꾸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넷플릭스 규정상 모든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어서, 참가자들에게 갑자기 연락해서 “아직은 말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 건데 당신 몸에 대해 알려달라”고 설득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100명이 모였을 때 정말 다양한 몸을 배치하는 것을 1순위로 생각했다. 전세계에 방영할 프로그램이라 셀럽에 치중할 필요도 없었다. 이 사람 몸에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직업별, 운동 종목별로 축약해나갔고, 때로는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도록 출연자간의 관계성이나 화제성, 좋은 퍼포먼스가 예상되는 캐릭터도 고려했다.

- 게임이나 룰을 개발할 때 어느 정도 예상치가 있었을텐데, 얼마나 빗나갔나.

= 게임룰은 단순하되 게임 과정에서 복합적인 스토리가 나와야 했다. 단순히 스트롱맨을 선발하는 프로가 아닌 데다가 혼성 참가자들의 체급 차이도 컸다. 다양한 체력 지표가 드러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야 했다. 유도 선수 등 운동 잘하는 분을 모셔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거대한 바위를 들어올려 버티는 ‘아틀라스의 형벌’도 시뮬레이션 때는 길어야 20분, 30분밖에 버틸 수 없다고 했다. 모래 나르는 두 번째 미션에서 탈락한 남경진 선수는 유력한 우승 후보라고 생각했다. 좋은 퍼포먼스가 많이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두 번째 경기 결과를 보고 마음이 심란했다. (웃음)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왔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가 너무 빨리 집에 가게 된 거다. 1라운드만 해도 좋은 캐릭터들을 집에 많이 보냈다. 에이전트H나 홍범석씨가 너무 빨리 탈락해서 괴로웠다. (웃음) 하지만 계속 예상이 벗어나서 ‘이거 잘되겠다, 잘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모두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큰 힘을 발휘하는구나, 적당히 이기는 것보다 아름답게 지는 게 중요하구나,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돋보인 스포츠맨십도 인상적이었다.

= 상금 3억원이 적지 않은 액수라 이 3억원을 얻기 위해 모두가 이기적인 개인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우승이나 3억원보다도 매 순간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우선시했다. 내가 탈락하더라도 저 사람을 돕겠다, 비록 졌지만 저 사람은 충분히 이길 자격이 있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프로그램 설계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 죽이자는 식으로 갈 줄 알았는데 박수쳐주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외국에서도 신기하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었으면 머리채 잡고 배신하고 싸움 났을 거다. 한국 사람들은 다르다”는 얘기도 들었다.

- 크게 흥행했지만 논란도 많았다. 학폭 이슈도 사전에 염두에 뒀을 텐데.

= 넷플릭스는 공개 이후 방송본을 수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꼼꼼하게 대비한다. 1차적으로 제작진이 관련 내용을 체크하고 참가자들이 설문을 통해 스스로 응답하게 했다. 면접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정신과 전문의, 심리 전문의를 일대일로 매칭해 제작진에 말하지 못한 고민, 우려사항을 나눌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 <피지컬: 100>은 넷플릭스의 규정과 제작진의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서 검증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타이트한 프로세스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슈가 생겼다. 출연자의 생활기록부를 확인하고 교육기관을 체크하고 가족, 친구, 지인을 면담하는 정도까지 가야 확률을 줄일 수 있는 건데 이건 심각한 인권침해를 야기한다. 주목받지 못한 분들이나 소외됐던 목소리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에 다큐멘터리 PD를 꿈꿨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지만 검증의 문제는 앞으로도 과제가 될 것 같다. 학폭은 안된다는 인식이 더 확산되고 실제 학폭이 없어져야 이런 이슈가 사라질 것이다.

- 마지막 경기를 둘러싸고 진실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경기 중단과 재개가 있었던 마지막 경기가 한번에 진행된 것처럼 편집된 게 논란의 핵심일까.

= 함부로 말하긴 어렵다. 극단적인 리얼리티를 지향한 프로그램이라 그걸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모든 상황이 다 담겼어야 했다는 데에 서운함과 실망이 있을 수 있다. 어떤 분들에게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은 과정 자체의 불공정함이 핵심일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코멘트가 있었다. “이건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뭐 이렇게 만들었어.” 이 말에 여러 메시지가 함축됐다고 느꼈다. 시청자나 출연자가 <피지컬: 100>을 어떻게 생각했고 어떤 기대를 했는지가 그 말에 녹아 있다. 그 부분에 실망을 드렸구나 느꼈다.

- 결국 결승전 영상 원본과 타임라인 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 한국 예능 역사상 영상 원본을 언론에 공개한 건 처음이지 않을까. 대단히 큰 결정이 필요했다. “소규모의 친한 기자들만 불러서 했다, 편집된 걸 원본이라고 하더라”라는 말도 도는데 우리는 넷플릭스에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콘택트 포인트를 통해 연락해달라”고 요청했다. 120개의 매체에 연락해 60명 이상이 와서 편집되지 않은 원본을 봤다. 녹화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일에 관해서는 정말 죄송하고 계속 사과하고 싶지만 조작은 없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진실과 다른 부분이 많이 이야기되면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속상하고 안타깝다.

- 회사 내부에서는 OTT팀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피지컬: 100>을 어떻게 평가하나.

= 지상파의 새로운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고도 하고 실질적으로 지상파에 어떤 이익이 있느냐는 얘기도 들린다. 이 성과를 어떻게 인정하고 평가할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유의미한 고민을 했다고 생각한다. 제작자도 다양한 기회로 시청자를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됐잖나. 꼭 하고 싶은 기획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서 좋은 선례를 이어나가면 함께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나같은 평범한 사람도 했다는 게 누군가에게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