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임지연이 꼽은 ‘더 글로리’에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
2023-03-31
글 : 이자연
사진제공 넷플릭스

- ‘박연진 사직서’는 이미 많은 직장인들의 밈이 되기도 했는데. (웃음)

= 직장 다니는 친구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자기도 그만두면 꼭 저렇게 그만둘 거라면서. (웃음)

- 연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 벌을 받지만, 그중에도 엄마와의 관계 해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보인다. 연진은 어머니로서나 딸로서나 모녀 관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을까.

= 어긋난 모성이 3대 모녀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목적으로 연진이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도 비이성적이지만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 연진이도 예솔이(오지율)에게 뒤틀린 사랑을 전한다. 애초에 모녀간의 지반이 약한 만큼 이 관계가 비틀어질 때 완전히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버림받았을 때 철저하게 좌절하고 비관하기 위해 처음으로 오열했다. 예솔이에게는 일종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작동한다면 엄마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

- 그 장면에 대한 설명이 대본에는 어떻게 적혀 있었나.

= 묘사는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지만 연진의 입장과 생각은 내가 자연스럽게 분석해냈다. 그동안 연진이로서 쌓아온 맥락이 있어서 당연하게 그려진 것 같다.

- 자신의 분석을 대입한 신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있다면.

= 하도영(정성일)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리는 신이 가장 어려웠다. “이 상자는 반짝이지 않아” 하면서 나의 과거를 애써 들추지 말라고 회유하는 장면이다. 대사가 어렵기도 했고 연진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목적이 정확하고 뚜렷해서 그 지점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문장을 잘게 쪼개서 힘을 분배하고 남편을 쳐다보는 표정부터 움직이는 방향, 바둑알을 놓는 방법 등을 다 계산해서 가져갔다. 달달달 외워서 연진이에 의해 하도영이 흔들리게 하고 싶었다. 혼자 화도 냈다가 애교도 부리다가 타일러도 보면서 한 장면에서 휙휙 바뀌었다. 안 감독님이 이 장면을 너무 좋아해주셔서 그제야 잘 분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더 글로리>를 통해 사회 전반에 학교 폭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학교 폭력 이슈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콘텐츠가 변화를 만드는 힘을 느꼈을 것 같은데.

= 사실 <더 글로리>를 하기 전부터 학교 폭력 문제를 유심히 보았고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청소년 시기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더 글로리>가 이 정도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줄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지만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 함께했다는 점에서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현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보고 싶다.

-차기작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김태희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어떤 역할인가.

=연진이와 정반대다. 아무것도 없는 무채색의 여자에 가깝다. 남편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임신부다. 이것 또한 나름의 큰 도전이었는데,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표출하지 않기 때문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나 눈동자 등 비언어적 표현이 많아서 캐릭터 분석 과정에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은’이를 잘 알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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