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2019년 박스오피스 분석: ‘기생충’부터 ‘극한직업’까지
2023-04-07
글 : 이유채

2019년 한국 사회는 상반기의 버닝썬 게이트, 하반기의 조국 사태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두 사건의 파장이 컸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도래한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여성팬들의 사랑을 받고 유명세를 얻은 남자 연예인들의 성범죄가 남긴 충격이 거셌다. 조국 사태는 계급과 공정성, 정의에 관한 담론을 사회에 던졌다. 역대 최고의 호황을 누린 영화계에서도 계급과 여성 서사가 주목 받았다. 상반기에 이미 천만 영화가 4편 탄생했고, 하반기에 1편이 추가되면서 2019년은 사상 처음 5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한 해가 됐다. 그중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이 포착한 부의 지형도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극한직업>

주인공은 소시민, 이야기는 무겁지 않게

우리네 자영업자(<극한직업>), 가족(<기생충>), 청년(<엑시트>), 아버지(<백두산>)가 주인공인 영화들이 2019년 박스오피스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흥행 1위는 1월에 개봉해 1627만명을 기록한 <극한직업>이 차지했다. 코미디라는 단일 메뉴로 승부를 본 이 영화의 배짱을 혼란한 한국 사회가 두팔 벌려 환영했다. 운도 따라줬다. 2019년 1월 시장은 전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달아 개봉한 한국 대작 영화 3편(<마약왕> <스윙키즈> <PMC: 더 벙커>)이 모두 부진하고 각광받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부재해 잠잠한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극한직업>은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2월 설 연휴(4~6일)를 향해 달려갔고, 1월30일 개봉작 <뺑반>이 힘을 받지 못하면서 <극한직업>이 설 연휴 관객 대다수의 선택을 받았다. <기생충>은 1009만명을 모아 5위를 차지했다. 마케팅을 담당한 박혜경 앤드크레딧 대표는 <기생충>의 결정적 흥행 요인으로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꼽았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하면서 일단 보러 가자는 초반 분위기를 형성했다.”

7월31일 개봉해 943만명이 본 <엑시트>가 6위를 차지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7월2일)을 피해 개봉한 덕분에 8월 여름 시장을 거머쥐었다. 배급을 담당한 조현경 CJ ENM 배급파트장은 “개봉 당시가 청년 실업 문제가 한창 대두할 때였다. 진짜 재난은 청년 실업이라는 목소리와 <엑시트>가 공명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엑시트>를 이 시대 ‘청년의 생존을 다룬 재난물’(손희정, <21세기 한국영화>)로 보는 시각과 일치한다. 영화의 마케팅을 담당한 이채현, 이나리 호호호비치 공동대표는“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짠내’를 키워드로 잡아” 영화의 확장성을 넓혔다. 12월19일에 개봉한 <백두산>이 629만명을 기록하며 8위를 차지했다.

견고한 팬덤과 화제성, 절대 강자 코믹스영화

1393만명의 관객을 모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이 2위를 기록했다. 봄 비수기인 4월에 개봉해 1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역대 최단기간)하면서 팬덤 화력에는 장사가 없다는 걸 보여줬다. 같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3 피날레에 속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하 <파 프롬 홈>)이 802만명을 모아 7위에 올랐다. <엔드게임> 이후 변화한 세상을 담은 <파 프롬 홈>이 약 두달만인 7월2일에 개봉하면서 <엔드게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관객을 극장으로 빠르게 소환했다. “어떻게 어벤져스 멤버로 융합할지가 마케팅적으로 중요했던”(이채현 대표) <캡틴 마블>이 580만명을 모으며 9위를 기록했다. 캡틴 마블의 등장으로 소녀들에게도 되고 싶은 슈퍼히어로가 생겼다. DC코믹스의 대표 빌런을 주인공으로 한 <조커>가 525만명을 불러 모아 10위에 안착했다. 마케팅을 담당한 김태주 로스크 대표는 영화 흥행 요인으로 “광기와 자학적 패러디가 활성화되던 시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점”을 꼽았다. 조커 역을 맡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며 일찍부터 화제를 모은 <조커>는 코믹스영화 사상 최초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수상 한달 뒤인 10월2일에 개봉해 수상 효과를 톡톡히 봤다.

SING SING SING

디즈니의 뮤지컬영화 두편이 나란히 톱10에 올랐다. <겨울왕국2>는 전편 <겨울왕국>(2014)의 1029만명을 뛰어넘는 수치인 1337만명을 기록하며 3위를 차지했다. 전편의 대대적 흥행에 힘입어 1월 방학 시즌 대신 11월 가을 비수기를 개봉 시점으로 선택해 17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마케팅을 담당한 김주석 영화인 실장은 전작이 관객 천만을 넘긴 것을 <겨울왕국2>의 결정적 흥행 요소로 봤다. “1편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작품이던 터라 2편은 당연히 봐야 하는 영화로 여겨졌다. 아주 실망스럽지 않은 이상 어느 정도 흥행은 예상한 작품이다. 핵심 셀링 포인트는 음악이었다. 뮤지컬 장르에 무엇보다 그 유명한 <Let It Go>가 있었으니까. 다행히 2편의 이 주제곡으로 삼을 만큼 멋져서 적극 활용했다. 5월23일에 개봉한 <알라딘>은 1255만명을 모아 4위를 차지했다. 강력한 음악영화를 4DX로 즐기려는 관객의 수요가 커지면서 역주행했다. 이채현, 이나리 호호호비치 공동대표는 4DX를 핵심 마케팅 전략으로 펼쳤다. “다 같이 부를 만한 노래라고 판단해 4DX 시사회를 열었다. 준비할 땐 걱정도 했지만 영화도 콘서트처럼 다 함께 어울리며 즐길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이 덕분에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여성 캐릭터의 진화와 다양한 여성감독의 등장

2019년은 여성 캐릭터의 확장과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확인한 해다. <겨울왕국2>는 왕자님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엘사의 주체적인 스토리를 확장했고, 입소문으로 장기 흥행에 성공한 <알라딘> 역시 디즈니 여성 캐릭터의 진화를 보여줬다. <엑시트>에서 임윤아가 연기한 의주 역시 재난 상황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에 머무르지 않는, 체력적으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새로운 캐릭터였다. 한국 페미니즘 리부트를 대표하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김도영 감독의 <82년생 김지영>(10월23일)이 368만명을 불러모아 흥행 순위 14위를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다원 감독의 <걸캅스>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중심으로, 유은정 감독의 <밤의 문이 열린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이옥섭 감독의 <메기>,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 등 다양한 여성감독의 다채로운 여성 서사가 한해에 영화계에 당도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