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편의 영화에서 존 윅은 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암살자 세계를 관장하는 최고회의를 향해 복수를 다짐한 터다. 그의 차를 훔치고, 죽은 아내가 남긴 강아지를 해친 뉴욕 러시아 갱단의 아들을 혼내주고 끝내려 했던 일은 어느새 암살자 집단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변질됐다. 그만큼 존 윅이 서 있는 세계는 확장해왔다고 할 만한데, <존 윅> 시리즈뿐 아니라 암살자들이 머무는 호텔을 다룬 시리즈 <더 콘티넨탈>과 배우 아나 데 아르마스가 주연하는 스핀오프 영화도 제작되는 상황을 보자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우리는 존 윅 유니버스의 탄생과 성장을 목격하고 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돌아온 존 윅을 온전히 환대하려면 그간의 사정과 <존 윅> 시리즈의 세계를 되짚어볼 필요성을 느낀다. 이 시리즈의 개성을 재확인한다면 4편을 감상하는 재미는 배가 될 것이다.
금기가 지배하는 세상: 이계의 매혹
<존 윅> 시리즈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건 존 윅이 활보하는 세상의 색깔이다. 현실의 논리가 아닌 다른 회로가 작동하는 세계를 그리는 상상력은 늘 관객의 흥미를 끌기 마련이다. 한때 존 윅도 속했지만 이제는 결별하려는 암살자 집단은 금기와 제약이 지배하는 게 특징이다. 명백한 범죄 집단인 것과 어울리지 않게 이 세계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성역으로 지정한 호텔 내에서는 동종업계 사람을 죽여선 안되고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해 남긴 표식은 무조건 갚아야 하는 빚이 된다. 결국 작품은 스스로 설정한 금기와 제약을 깨부수는 데서 쾌감의 원천을 찾는다.
특별한 점은 암살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전혀 눈치채지 않을 수 없는 폭력과 소동을 일으키는데도 마치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에 반응하지 않고 주목하지도 않으며 현실 세계의 힘이 개입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존 윅이 거처를 급습한 일당을 해치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으로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관이 복직했냐고 묻고 가스 누출 사고였냐며 사건을 무마해주는 사례가 말해주듯 마치 소수만이 암살자 세계를 알고 현실 세계와 암살자의 세계는 아주 작은 통로로만 연결돼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런 점에서 <존 윅> 시리즈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 닮았다. 해리 포터가 활약하는 세계에는 마법사와 머글이 있고 머글은 마법사의 일을 알지 못하거나 소수만 인지하며 마법사는 머글이 사는 세상에 개입하는 일을 금기로 여긴다. 현실과 경계를 짓고 자기만의 질서로 구축한 세계의 이야기는 이계에 매혹되는 우리의 습성이 아니고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소문과 전언의 사나이
이계에서도 존 윅은 특출한 인물이다. 놀라운 점은 예상과 달리 영화가 그의 존재감을 액션으로 먼저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존 윅을 묘사하는 극 중 인물의 전언으로 그의 대단함을 관객의 머리에 심는다. 1편에서 존 윅의 복수를 버거워하며 아들을 다그치는 러시아 갱단 두목 비고는 그를 암살자를 암살하는 수준의 역량을 뽐내는 부기맨 ‘바바 야가’라고 말하며 술집에서 하찮은 연필 한 자루로 세명을 해치운 일화를 들려준다. 또 2편은 비고의 형이 존 윅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부하에게 존 윅이 겨우 자동차와 강아지 때문에 자기 동생과 조카, 그리고 수십명을 죽였다며 그의 집요함과 강인함을 강조하려 재차 연필 살인 에피소드를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3편에 등장한 거지왕 바워리 킹도 부하에게 존 윅이 다가오는 낌새를 느끼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입은 상처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감독은 별 계획 없이 다짜고짜 액션을 꺼내놓지 않고 먼저 관객에게 존 윅이 지닌 액션 수행력의 기대치를 높인 뒤 막강한 액션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그래서 마주한 존 윅의 액션은 각국의 유명 무술과 이종격투기의 움직임을 포함할 뿐 아니라 근접 사격을 특징으로 하는 총격술 등을 망라한다. 소문과 전언은 <존 윅> 시리즈를 관통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3편에서 존 윅을 처리하기 위해 암살자 세계의 권력 기구인 최고회의가 고용한 킬러들은 하나같이 존 윅에게 존경과 찬사를 늘어놓거나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는 듯 괜한 분개심을 보이기도 하는데,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판에 팬을 자처하는 킬러의 모습은 일종의 농담으로 소문과 전언이 <존 윅> 시리즈를 이루는 개성의 하나임을 말해준다.
예술을 지향하는 액션
1편의 흥행에 고무된 까닭인지 2편은 감독의 액션영화에 관한 자의식을 짐작할 법한 장면을 제시한다. 바이크를 탄 인물을 쫓는 존 윅의 자동차가 한 건물을 지나기 전 건물 외벽에 버스터 키턴의 작품이 비친다. 감독은 슬랩스틱 연기의 고전적 대가를 보여주면서 액션이야말로 영화의 기원 중 하나로서 명백한 예술이라는 점을 강변하는데, 이 자의식이 과거를 향하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암살자 세계는 현실과 시간 거리를 달리할 뿐 과거의 이미지와 어떻게든 연결돼 있다. 암살자 세계의 사무원은 도스 운영체제 시절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칠판과 노트에 필기한다. 다른 인물도 스마트폰이 아니라 구식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거나 기껏해야 2G폰을 쓴다. 1편의 클럽은 아테네 신전의 외양을 띤 건물 안에 있고, 2편에선 이탈리아 고대 유적지에서 파티가 열리는 와중에 존 윅이 처리해야 할 최고회의 간부 여성은 드라큘라와 마녀의 이야기가 횡행하던 중세 귀족의 옷차림을 하고 있다. 3편에서 존 윅은 골동품점에 진열된 유물을 무기로 사용하고 뉴욕 도로를 말을 타고 가로지른다. 또 사무라이 갑옷을 유리 장식장에 붙박여놓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한다. 러시아 발레단과 사막 속 아라비아풍의 천막과 인물의 등장도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감독은 액션이란 고전과 관계하면 할수록 본질과 예술에 가까워진다고 믿는 듯하다.
여기서 존 윅은 한명의 고지식한 예술가가 된다. 그는 매번 정장을 차려 입고 고급 와인을 테스팅하듯 화기를 고른다. 또 마치 뛰어난 예술가가 대중이 건네는 환호에 응대하듯이 전사들이 표한 존경에 화답한다. 고전과 아날로그, 예술품과 골동품의 오브제, 그리고 사무라이 문화에 심취한 감독의 취향은 고전에 관한 대중의 인지 관습, 그러니까 옛 시절은 예절로 대표되는 일말의 도덕이 있고, 격식과 기품이 있으며, 미적으로 우수하다는 고정관념과 공명하며 액션을 단순한 오락 거리가 아니라 엄연한 예술의 하나라는 점을 역설하려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예술은 러시아 갱단의 폭력 문화와 사무라이 문화의 형식미를 합친 잡종의 형태를 띤다. 여기에 자동차와 강아지에 집착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사유재산 침범을 죄악시하는 자본주의 풍토가 덤으로 얹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