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황여래(이하늬)는 SF영화에서 ‘발연기’를 선보인 이후 얼굴과 발이 합성된 사진으로 조롱받는다. ‘콸라섬’의 부동산 재벌 조나단(이선균)은 태권도복을 입고 손날 목치기로 적을 응징한다. 이원석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를 본 관객이라면 특유의 B급 코미디가 낯설지는 않을 터. 포스터에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감성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킬링 로맨스>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영화’를 표방하고 나섰다. 개연성을 가뿐히 뛰어넘는 상상력, 혼종을 장르로 내세운 영화가 낯설 수 있다. 그런 당신을 위해 이원석 감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킬링 로맨스> 사용설명서를 준비했다.
관람 전 주의사항
“시사회를 본 뒤 딸은 재미있다고, 와이프는 재미없다고 했다. 같이 밥 먹으면서 ‘뭐가 재미없냐’는 딸과 ‘영화는 이래야 한다’는 아내의 말다툼을 보면서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순 없다. 모두가 좋아한다는 건 캐릭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영화를 제작한 쇼트케이크의 김명진 대표도 같은 마음이었다. “코로나19 시기에 그룹별로 진행했던 관객 인터뷰에서도 반응이 크게 갈렸다. 이왕에 만들 거 평평하게 만들지 말자고 얘기했다.” 기존의 영화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이야기가 가리키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따라가보자.
‘만약에’를 따라갈 것
외국인 할머니가 들려주는 <킬링 로맨스>는 동화 이야기로 시작된다. 동화는 이원석 감독에게 중요한 키워드다. “어떤 이야기든 동화처럼 ‘옛날에’ ‘만약에’라는 말을 붙이면 상상의 영역이 커지고 어떤 생각도 허용된다. ‘만약에’라고 시작하면 ‘왜?’라는 질문도 내려놓게 된다. 여래는 왜 그럴까. 범우(공명)는 왜 그럴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굳이 설명하지도 않고 ‘만약에’로 쭉 밀고 나가보려고 했다. 관객이 ‘만약에’로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뭘까, 궁금해했으면 했다. ‘왜’라고 질문하기 시작하면 이야기에서 튕겨나올 수밖에 없다.”
각색 방향
<남자사용설명서> <상의원>에서 보여준 이원석 감독의 개성 때문일까, 이원석 감독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방귀를 뀌어서 사람이 어렇게 변했다는 등 누가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희한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개중 남편을 죽이는 이야기인 <킬링 로맨스>는 지극히 평범한 편이었다고. “<뷰티 인사이드>를 쓴 박정예 작가의 시나리오였는데 재미있었다. 다른 감독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무난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이야기의 베이스가 탄탄하니까 오히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잘 넣을 수 있겠더라.” 이원석 감독은 원작 시나리오의 텐션을 올리고 톤 앤드 매너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뮤지컬 한 스푼, 무협 한 스푼
“단편 <랄라랜드>가 영화 <라라랜드>를 흉내낸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뮤지컬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시작은 그러했으나 예산이나 판권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평소 뮤지컬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노래하는 장면이 낯설다고 하는데 그 점이 오히려 재미있지 않을까. ‘저 사람 갑자기 왜 노래해?’ 하는 리액션을 넣어주면 노래가 가미되어도 자연스럽게 넘어가겠다고 생각했다.” ‘푹쉭확쿵’, ‘슥컥훅’처럼 범우와 여래의 암호 같은 살인 계획은 의외의 인물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명세 감독님과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에 출연한 적이 있다. 감독님이 배우한테 하는 디렉션이 이랬다. ‘훅가서 샥해서 푹하고 슉해!’ 그러면 배우들이 알아듣고 그렇게 하더라. 거장의 연출 방법이 너무 재미있어서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이디어가 더해질 때마다 각색을 맡은 황조윤 작가님에게 ‘이렇게 바꿔주시면 어때요?’라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아이디어를 더해갔다. 감독, 작가, 제작자가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뭐든 ‘이런 건 정말 처음 본다’ 싶은 걸 만들어보자는 데 모두가 진심이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킬링 로맨스> 사용설명서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