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나선 백현진은 배우·음악가·미술가 등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활동을 선보여왔다. "예술의 본질만 골몰하다 그 안에 갇히기보다,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에 집중"할 거라는 그는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섹션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와 지향점을 담은 7편의 영화를 선별했다. 큐레이션 리스트에는 감독으로서 연출한 <뽀삐>, <영원한 농담>, <디 엔드>를 비롯하여 루이스 부뉴엘 감독 3부작인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자유의 환영> <욕망의 모호한 대상>, 그리고 신 스틸러로서 배우 백현진을 증명한 <경주> <뽀삐>가 포함된다. 4월 29일, 장률 감독의 <경주> 상영 이후 60분 동안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 ‘J 스페셜 클래스'에서는 ‘최현' 역의 배우 박해일이 함께 참여했다. 진행을 맡은 문석 프로그래머의 안내를 시작으로 “안녕하세요, 컴퓨터 프로그래머 백현진입니다"라는 엉뚱한 인사와 함께 <경주>에 담긴 소담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끄집어냈다.
백현진은 2008년 단편영화 <디 엔드>로 박해일을 처음 만난 과거를 추억했다. 감독으로서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박해일을 떠올렸고, <복수는 나의 것>의 음악 감독으로서 인연이 있는 박찬욱 감독에게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을 부탁했다. 그러자 박 감독으로부터 "왜 나한테 제일 어려운 거 시켜~ 그 사람 아무 말도 안 듣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일화를 들은 박해일이 추억을 떠올리며 밝게 웃고 있다.
"감독이 아닌 배우로 만난 백현진이 <경주>에서는 어떤 인상을 남겼"냐는 문석 프로그래머의 질문에 박해일이 잠시 답변을 생각하고 있다. "백현진 배우는 맡은 배역을 체화하는 게 특히나 자연스럽다. 이러한 유연성을 갖게 된 뿌리를 알고 싶어 오랜 대화를 나누어보니 누군가 시키는 일을 억지로 해오지 않았더라. 오직 자신이 하고 싶고, 스스로 납득되는 일만을 고수해왔다. 그게 백현진의 뿌리다. 백현진 배우가 연기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이상하리만치 묘한 기운을 가진 이유다.”
"박교수는 <경주>에서 문제적 인물이다. 신스틸러로서 자신을 증명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 어떤 디렉션을 받았나." 문석 프로그래머가 질문을 던지자 백현진은 "디렉션을 크게 많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대사도 '현진이가 직접 만들어 보라'는 장률 감독의 제안에 불국사를 여러 차례 걸어다니며 기쁘게 고민했다"며 <경주> 촬영기를 회상했다.
관객들의 질의응답 시간. "<경주>의 롱테이크 촬영이 어렵진 않았"냐는 관객의 질문에 백현진은 "실제 대화를 나누듯 긴 호흡을 이어가는 게 편하다. 장률 감독의 느림의 미학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백현진의 대답에 모든 관객이 경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