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드림' 이병헌 감독, 스포츠보다 홈리스 팀원들의 드라마
2023-05-04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이병헌 감독은 8년 전 <드림>의 기획을 처음 시작했다. TV프로그램을 통해 홈리스 월드컵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홈리스 월드컵의 한국 공식 주관사인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홈리스들을 취재하고 201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에 동행하는 등 긴 사전 조사 기간을 거쳐 <드림>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실화 자체가 이병헌 감독 같은 이야기꾼에게는 욕심날 만한 소재였다.

- 개봉 전주 인스타그램에 “<드림>의 핸디캡은 나 자신”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작 <극한직업>과 계속 비교가 되다 보니 함께한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본인은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밝혔지만 공교롭게도 <씨네21> 별점이 나간 직후에 올라온 글이라 사람들이 감독의 의도를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고.

= 강아지 두 마리를 산책시킨 후 정말로 기분이 좋았을 때였다. 원래 <씨네21> 20자평은 네이버로 확인하기 때문에 별점이 올라온 직후라는 것을 정말 몰랐다. 오히려 나중에 전문가 평점을 보기 전까지는 <드림>이 굉장히 호평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극한직업>이 많이 언급되는 반응을 보면서, 전작을 함께하지 않은 제작사나 배우, 몇몇 스탭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글을 썼다. 평소 내가 가진 우울감 때문에 가볍게 쓴 글이 무겁게 해석돼서 유통된 것 같다. (웃음)

- 2010년 홈리스 월드컵 실화는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됐나.

=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20~30분 정도 되는 분량으로 홈리스 월드컵을 다룬 적이 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경기 내용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 후반부 내용과 똑같다. 내가 알았어야 할 이야기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미안함에 생각이 많아졌다. 대부분 ‘노숙자’ 하면 서울역 지하도 어딘가에 누워 있는 분들의 모습만 떠올리고 다른 홈리스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면 안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의미 있고 재미까지 줄 수 있는 기획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을 아주 쉽고 재미있는 대중영화로 만들어서 많은 이들에게 홈리스 월드컵을 소개하고 싶었다.

- 스포츠물에 기대하는 승리의 서사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고민은 없었나.

= 스포츠영화로 접근했다면 이 소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누가 이길까에 대한 긴박감이 없으면 어떻게 찍어도 재미가 없다. <드림>은 스포츠영화가 아니라 홈리스 팀원들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접근했다. 홈리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전직 축구 선수 홍대(박서준)나 홈리스 국가대표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 소민(아이유) 캐릭터를 잘 만들면 이 이야기가 지나친 신파로 빠지지 않게끔 균형을 잡아주면서 대중영화로서 재미도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12년 전 초고를 쓸 땐 시나리오를 한창 많이 쓰던 때라 코미디에 대한 감이 꽤 좋기도 했고. (웃음) 가까운 친구처럼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영화 초반을 이끈 후 홈리스 팀원들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전달되게끔 계산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여러 부침의 과정을 거치며 조금 흔들린 적도 있지만 내겐 확신이 있었다.

- 처음 구상했던 시나리오와 지금 시나리오가 많이 달라졌나.

=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 경기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쓰려고 했기 때문에 하이라이트 시퀀스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원래 시나리오에 인터넷 밈에 대한 부분도 있었다. 캐릭터와 그들의 사연을 각색하고 나머지 뼈대를 짜는 작업은 교과서처럼 진행했다. 전형적이라고 무조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많이 사용된 작법이라는 의미이고, 많이 사용된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재미 요소를 더하면 전형성의 단점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계산했다.

- 이병헌 감독 하면 떠오르는 말맛 나는 대사와 유머 코드를 살리되 소외 계층을 희화화하지 않는 선은 어떻게 정리해나갔나.

= 자극적인 기교를 쓰기보다는 쉬운 대사로 정확하고 담백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초고는 코믹한 대사가 많았는데 이 이야기에서 허용 가능한 코미디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서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대사를 걷어내는 작업을 많이 했다. 홍대나 소민 캐릭터를 더 키워서 투자를 받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훼손되는 것 같아 그 부분까지는 타협하지 못했다. 허용 가능한 코미디의 범위는 편집 과정에서도 끝까지 고민했다. 보통은 남나영 편집감독에게 많이 맡기는데 이번 작품은 메모 몇 바닥을 채워 가져가니 편집감독이 “너 왜 그래. 어디 아파?”라고 할 정도였다. (웃음)

-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어떻던가.

= 사람들이 내 의견을 너무 잘 따른다. (웃음) 맞다고만 하지 말고 제발 아니라고 말해 달라고 채찍질을 했다. 영화를 공개하고 나니 내가 만드는 코미디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기대치는 기분 좋게 가져가야 할 짐이 아닐까 싶었다. <드림>은 <극한직업>과 다른 제작사, 배우들과 만든 작품인데 이병헌에 대한 기대치를 그들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오로지 나만 생각하면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 크게 감이 떨어진 것 같지도 않고. (웃음) 영화 만들기 자체가 모험인데 어떻게 안전하게만 갈 수 있겠나. 혹독한 평가를 받을 때 느끼는 쾌감도 있다.

- 홈리스들이 ‘거지’라는 표현을 자학하며 쓰는 신이 있다. 그 신의 적정성은 어떻게 판단했나.

= 우리는 ‘거지’라는 표현을 정말 많이 쓴다. 그러면서 우리가 ‘거지’라고 일컫는 노숙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정작 알지 못한다. 잠시 거처를 잃고 시설이나 쪽방에서 지내는 분들도 ‘홈리스’라고 지칭하는데, 전체의 5%도 되지 않는 길거리 노숙자들의 이미지만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 지점에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 사채를 끌어다 썼다가 가족에게 피해를 입힌 환동(김종수)을 비롯해 홈리스들은 무결한 사람들이 아니다. 주인공들을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 불쌍한 이들로 묘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실제 홈리스들의 사연은 대단하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IMF 금융 위기로 인한 타격이라든지 빚보증을 잘못 섰다든지 비슷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르다.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취재하면서 봤던 가장 많은 유형의 사례를 가져온 것이다. 성소수자 홈리스도 실제 있었고, 인선(이현우)의 사연 정도가 나이가 어린 캐릭터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새롭게 만든 것이다. 착한 사람들을 사회가 내몰았다는 전개가 되어버리면 우리가 <드림>을 만든 처음 의도와 달리 자칫 감정을 강요하는 것처럼 돼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홈리스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 부녀 관계가 묘사되는 캐릭터가 둘이나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힘내세요, 병헌씨>에도 딸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특히 환동의 서사는 부녀 이야기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었는데 실제 딸이 있어서 나도 모르는 무의식이 튀어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 ‘이병헌 사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극한직업>에 출연했던 김종수 외에도 정승길, 양현민, 홍완표, 허준석 등은 전작에도 얼굴을 꾸준히 비췄다.

=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가장 힘든 작업을 같이한 배우들이다. 고등학교 동창 같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 어울리는 역할이 있고 스케줄이 맞으면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거다. 그런데 이제는 본인들 마음대로 연기를 한다. (웃음) 나랑 작품을 자주 하다 보니 어느 선까지는 자유롭게 해도 되는지 잘 안다. 이번에 현민이랑 준석이가 소위 잘 따먹었는데, 그것도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한 거다. 정말 이상하게 연기를 해도 내가 오케이를 하니까 고창석 선배님은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웃음)

- 반면 고창석 배우와는 첫 작업이었다.

= <힘내세요, 병헌씨> 때 시사회도 뒤풀이도 와주셨다. 내 연출작이 대체로 그렇지만 그 영화가 대단히 분석하면서 볼 작품은 아니지 않나. (웃음) 그런데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의미까지 잡아내며 감상을 전해주셨다. 인품도, 연기력도, 작품 해석 능력도 좋은 분이라 언젠가 꼭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8년 전 <드림>의 시나리오도 가장 먼저 드렸다.

- 박서준 배우는 오랜만에 결핍 있는 밑바닥 캐릭터를 연기했고, 아이유 배우는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이 가진 우울감을 떨친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 서준씨는 거의 이미지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유씨에게는 분명 발랄한 이미지가 있는데 정작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그런 캐릭터를 연기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소민 캐릭터가 그에게 전작과 차별화되면서도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두 배우는 알아서 잘하는 프로다. 현장에서 굳이 내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서 괜히 가서 디렉션을 한번 하기도 했다. (웃음)

-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필수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중간에 촬영이 한번 중단됐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현지 촬영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 축구 경기라면 한국에서 가능했을 수도 있다. 경기장이 넓기 때문에 CG로 관객을 채워넣을 수 있다. 하지만 풋살 경기장은 실제 관중이 있어야만 한다. 기술적으로 잡을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또한 감정이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에 전·후반부 질감이 튀면 이입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촬영이 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 홍대의 매니지먼트 회사는 소민의 다큐멘터리가 가진 감동적인 내러티브가 스타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드림>의 이야기는 홈리스 월드컵 실화를 재구성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이들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르다고 생각하나.

= 영화는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떤 이야기를 갖고 오건 이를 잘 구현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작법이 존재한다. 어떠한 변수 없이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된다. 반면 실화 자체를 전하는 다큐멘터리는 계산을 뛰어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맥락 없이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만드는 방식은 무척 다르다.

- <드림>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 중에는 <극한직업>이 아닌 <멜로가 체질>을 비교선상에 놓는 반응도 적지 않다. <멜로가 체질>은 재미있는 코미디면서 설레는 로맨스, 슬픈 드라마이기도 했다. 반면 <드림>의 코미디와 신파는 잘 봉합되지 않는다는 시선이 있는데.

= <멜로가 체질>은 좀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개성을 녹여내 만든 작품이라면, <드림>은 정석에 가깝게 정공법으로 만들었다. 한계라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실화가 가진 한계도 존재할 것이다. 만약 <드림>의 장르가 잘 봉합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그건 연출적인 기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비판이다.

- 개봉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일단 <드림> 홍보 활동이 끝나고 나면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은 OTT 시리즈 <닭강정> 후반작업을 해야 한다. 그다음 작품으로는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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