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인들의 대축제, 제76회 칸영화제가 5월16일 개막했다. ‘과거의 오늘’을 상기시켜주는 SNS는 지난해 이맘때 내가 칸에 있었음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칸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온라인 티켓 예매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애먹었던 기억도, <헤어질 결심> <슬픔의 삼각형> <클로즈>를 보고 나온 뒤 벅차고 설레고 행복했던 기분도,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매일 프렌치 무드에 취했던 시간도 이제는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올해는 송경원, 김소미 기자가 칸영화제 취재를 맡았는데, 그들이 생존신고차 보내온 사진들을 보니 올해도 칸의 하늘은 쨍하게 푸르고 영화제의 열기는 기대만큼 뜨거워 보인다. 영화제 초반에 화제 혹은 논란이 된 작품은 개막작 <잔 뒤 바리>다. 논란의 이유는 <잔 뒤 바리>가 가정 폭력 혐의로 법정 공방을 이어갔던 배우 조니 뎁의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문제적 배우의 복귀 시점은 언제나 논란 거리인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배우 아델 에넬은 “영화계가 성 범죄자들을 전반적으로 감싸려 한다”고 유감을 표했고,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화제측이 논란을 예상 못했을 리 없으니 이는 다분히 의도된 논란이다.
하지만 칸에 있다 보면 이런 논란은 매일 새롭게 공개되는 영화들에 의해 금세 잊히고 만다. 올해도 거장들이 대거 칸에 출동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난니 모레티, 켄 로치, 누리 빌게 제일란, 빔 벤더스까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적 있는 감독만 5명이다. 켄 로치 감독은 역대 최다인 15번째 칸영화제 진출이라는데, 과연 이 기록을 누가 또 깰 수 있을까 싶다. 칸은 자신들의 영화제를 통해 성장한 감독들에 대한 예우가 특별하다. 거장들에 대한 칸의 예우가 신진 창작자들에게 벽이 된다면 우려스럽지만, 사실 켄 로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토드 헤인스, 알리체 로르와커 등 칸이 애정하는 감독들의 신작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영화제가 놓은 덫에 빠져들어 기뻐하고 흥분하는 게 또한 축제의 묘미 아닌가 싶다. 칸영화제에서 누리는 완벽한 행복 중 하나는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감독들의 신작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관객이 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한편 부산국제영화제는 현재 내홍 중이다. 지난 5월11일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고, 15일엔 이용관 이사장이 최근의 사태를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 뒤 발생한 일련의 일들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그 중심에는 조직 쇄신과 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2년 뒤면 서른살이 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개혁은 무엇이고, 그러기 위해 어떤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논의해야 할 때 큰 위기가 닥쳤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걱정하고 실망하지 않도록 관계자들은 책임 있는 태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