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 감독 이종필 각본 손미 출연 이나영, 구교환, 서현우, 선우정아, 심은경, 조현철, 한예리 / 플레이지수 ▶▶▶▷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하경(이나영)은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가 일주일 중 하루, 토요일에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 하경의 짐은 그녀의 걸음만큼 단순하고 가볍다. 대단한 계획 없이도 ‘떠나고 싶다’는 사소하지만 강력한 동기만 품을 수 있다면, 하경은 이미 다른 곳에 도착해 있다. 하경은 숙박 없는 절반짜리 템플 스테이를 하러 땅끝 마을로 향하고, 제자의 전시를 보겠다는 목표만으로 군산에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하경에게 여행은 의무나 숙제가 아니다. 하경의 여행은 종종 당일치기라는 규칙을 벗어나기도 하는데, 여행의 동기와 형식이 단순하기에 우연과 즉흥을 끌어안을 수 있다.
<박하경 여행기>는 여행의 ‘힐링’과 같은 순간들만 모아놓은 소품집이 아니다. 물론 하경이 머무는 장소들은 때로 에릭 로메르 영화에 등장하는 해변처럼 이국적으로 묘사되지만, <박하경 여행기>는 여행이라는 일탈 속에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의 고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4회에서 하경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노인과 말다툼을 한 뒤 부모를 떠올리고 눈물짓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에피소드들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거창한 극적 전개가 없다는 특징은 <고독한 미식가>의 여행 버전을 기획하고 싶었다는 설명에 잘 들어맞는다. 슈트케이스 대신 크로스백을 걸치고 스스로의 주말을 개척하는 하경. ‘단 하루라도 괜찮다’는 가벼운 위안 속에는 우리를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묵직한 힘이 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감독이 연출한 시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