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계절 시리즈도 어느덧 출간 5년째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이 단행본 시리즈 덕분에 잘 쓰는 젊은 작가와 여럿 만났다. <소설 보다: 여름 2023> 역시 마찬가지.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와 김기태의 <롤링 선더 러브>, 하가람의 <재와 그들의 밤>이다. 하나의 주제로 묶이질 않는, 개성이 다른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을 읽고, 이어지는 작가 인터뷰를 읽는 것이 이 시리즈의 묘미다. 공현진의 단편소설은 암울하고 비관적인 제목과 달리 다정한 온기가 묻어난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에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주호와 희주는 수영장 초급반에서 만난다. 초급반에서 나란히 꼴찌인 두 사람을 향해 강사는 못하는 사람은 뒤로 빠지라고 소리 지르지만 눈치 없는 주호는 끝까지 앞에 선다. 대열에 잘 끼지 못하고 강사의 철칙에 의도치 않게 반하게 되는 두 사람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같다. 작가는 수영장에 다니다가 주호를 떠올렸다고 한다. “맨 뒷줄에 설 수밖에 없고, 서야만 하는 인물이 스스로 저항 의지나 악의 없이, 그저 눈치가 없어서 자꾸만 앞에 서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이었다. 세상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적당하고 당연하다 여겨지는 균형에 의해 돌아간다. 그렇지만 그 적당한 방식을 체득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길길이 화를 내는 강사에게 도리어 주호가 묻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롤링 선더 러브>는 실존하는 데이트 예능 프로그램 <나는 SOLO>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아 근데. 나는 사랑이 좀 하고 싶다.’ 엘. 오. 브이. 이. 그게 뭔데. 나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하고 싶다고 말하네.”(69쪽)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 <솔로농장>에 출연하게 된 맹희의 실시간 녹화 일정을 따라가는 소설은 <나는 SOLO>의 얼개조차 모르는 독자라도 페이지를 아까워하며 넘길 수밖에 없다. 일반인 출연자를 품평하는 인터넷 댓글 내용까지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이다. 취미, 노동, 연애, 모녀 관계 등 한국 사회의 일면을 흥미롭게 담아낸 세편의 소설과 함께 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된다.
75쪽배추. 담백한 분위기로 이번에도 소란 없이 한명의 마음쯤은 얻을 수 있어 보였다. 양파. 또 남자를 울리려나. 토마토. 자기는 야채가 아니라는 듯 의뭉스러운 매력으로 판을 흔들겠지. 브로콜리. 브로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