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한국형 프랜차이즈, ‘범죄도시’라는 사건
2023-06-22
글 : 강유정 (영화평론가)

1. <범죄도시>의 브랜드 가치

“어떤 영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은 일단 사회적인 사건이다. 영화의 질 문제는 부차적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 말은 수많은 흥행 영화들의 비평적 구원이 되어주었다. 태생부터 대중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영화의 매체 속성상 흥행은 사회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범죄도시> 연작은 이미, 사건이다. 사건적 중요성은 포스트 팬데믹 시기, 고전적 관람 형태로서 물리적 영화관의 지속 가능성과 연관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OTT를 비롯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개봉관 영화의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깊어졌다. 더불어, 가격 상승의 압박 요인까지 보태져 회복세에 대한 전망도 어두웠다. 관객의 영구적 체질 변화인지 일시적 현상인지 판단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우려는 불안으로 확산되었다. <범죄도시>가 한국 영화산업의 방향성을 읽어낼 중요한 참조 사항이자 시료로 여겨진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2023년 <범죄도시3>는 흥행에 성공했다. 1편의 우연이 2편에선 기대로 3편에선 확신으로 다져졌다. 명실상부 <범죄도시>의 브랜드 가치가 입증된 셈이다. 이는 한편, 재밌는 영화라면 돈과 시간을 들여 영화관을 찾는 영화 소비자들의 존재 증명이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이 ‘재밌는’이라는 수식어의 실체다. 도대체 재미있는 영화는 무엇이고, <범죄도시>의 재미란 어떤 것일까?

2. 영화의 재미, 수고로운 기회비용

<범죄도시>의 특징은 잔혹성과 유머로 압축된다. <범죄도시>에서 장첸 일당이 보여줬던 폭력은 한국형 누아르영화에 단련된 관객에게조차 당혹스러웠다. 반면 진지하지만 어설프고, 센 척하지만 허술한 장이수, 독사 등의 중국 동포 범죄단은 개성 있는 서민형 유머로 웃음을 줬다. 무엇보다 마동석표 말장난과 정의 구현의 타격감이 통했다. 심오하고 복잡한 범죄의 이면이 아니라 화끈한 ‘한방’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단순 화법이 오히려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범죄도시2>나 <범죄도시3>의 서사구조 역시 1편과 다를 바 없다. 선과 악이 대결하다, 악을 응징하고 ‘마침내’ 사법 정의를 실천한다. 후속편의 차별성은 선을 고정값에 둔 채 악당의 변주로 구현된다. 각각 손석구의 강해상, 이준혁의 주성철로 악당을 교체하며 후속작을 차별화한 것이다. 블록처럼 조립된 안타고니스트 악당과 실제 소재 강력 범죄의 틈새는 조력형 범죄자들의 캐릭터와 마석도식 개그로 메워진다. 선과 악의 대결, 유머, 사필귀정의 흥행 공식을 축으로 계산된 유머와 타격감 액션을 변주하며 자기 복제를 거듭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가문의 영광>을 비롯한 조폭 코미디 시리즈가 있었고, ‘강철중’을 앞세운 형사물 <공공의 적> 연작도 있었다. <범죄도시>의 요소요소들을 살펴보자면 조폭 코미디, 형사물, 누아르의 특징들을 영리하게 재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선 시리즈물과 차별점이 있다면 바로 마동석에 압축된 마석도 형사의 독보적인 캐릭터이다. 의외로, 형사 마석도는 욕이나 비속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점은 슬랩스틱이나 비속어로 웃음을 유발하던 과거 조폭 코미디의 저속함과 구별된다. 칼이나 총 같은 흉기나 도구 없이 순전히 맨손과 맨몸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마석도식 액션도 특징적이다. 탁월한 신체 능력이 발산하는 타격감은 마동석 자체가 개연성이 되어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다고 마동석표 캐릭터 영화들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범죄도시>라는 허구적 세계 안에서 마동석-마석도의 매력은 두드러진다. 마석도는 재력이나 지적 능력, 인맥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슈퍼히어로와 달리 보급형 서민 영웅에 가깝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석도가 끝장내는 강력 범죄들이 모두 과거의 실제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거 완료된 빈티지 사건을 마석도라는 필터로 여과해 정의 구현의 쾌감으로 복각한 게 바로 <범죄도시>라는 상품인 셈이다.

3. 완결된 판타지의 유효기간

과거는 바뀌지 않고, 성취는 보존된다. <범죄도시>의 정의는 늘 후일담이다. 2017년 <범죄도시>는 2004년 사건, 2022년 <범죄도시2>는 2007년 무렵 사건, <범죄도시3>는 2017년경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완결된 사건으로서 후일담은 강력 범죄에 대한 정복감을 준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속 미제 사건이 형사들의 무능이 아닌 치안 공백을 자초했던 공안 정국의 폭력성임을 환기하듯 역설적으로, 검거된 범죄가 형사의 탁월성이나 시대의 무결함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해결된 범죄의 판타지는 과거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과거에 붙잡힌 <범죄도시>식 해피 엔딩은 마동석으로 상징되는 공공 영웅의 현존 불가능성을 더 분명히 한다. 마석도 같은 인간미 넘치는 형사도, 초롱이 같은 조력형 범죄자도, 괴물 형사의 한방에 무너진 극악한 범죄자도 모두 과거에 있다.

실현된 정의, 완결된 해피 엔딩은 범죄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구조적 모순을 덮는다. 악당 한명에 응축된 악을 마석도가 흠씬 두들겨패줄 때, 관객은 정의 구현의 쾌감을 대리 체험한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악당의 수난기가 장면화되며 마석도식 타격감이 청량한 해결감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일거에 정화된 듯한 찰나적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하지만 이런 쾌감은 유효기간과 지속시간이 매우 짧다. 영화는 늘 판타지를 제공하지만 어떤 판타지는 과거나 순간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닿기도 한다. 역사적 미결 사태를 교정했던 <암살>이나 대안적 허구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보듬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결말은 열린 판타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먹 한방과 개그 한줄을 필수 요소로 설계된 결말은 강박적 완결성에 갇히기 쉽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범죄 서사에서 사회성과 구조적 복잡성을 제거해 관객의 호응을 얻어냈다. 불안과 불황 가운데 <범죄도시>의 흥행 성과는 분명 가치와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범죄도시>의 프랜차이즈화와 흥행이 한국영화의 일부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성공이 공존하는 가운데 <범죄도시>의 흥행은 한국영화의 건전성과 다양성의 지표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또 한번의 돌출적 흥행이라면, 이는 다양성 고갈 위기에 처한 한국영화계의 이상 징후로 받아들여질 게 분명하다. <범죄도시>라는 사건이 반가우면서도 우려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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