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악몽 코미디’의 마력, ‘보 이즈 어프레이드’ 리뷰와 아리에스터 감독 인터뷰
2023-07-06
글 : 김소미

3500만달러의 예산으로 A24의 11년 역사상 가장 비싼 장편영화라는 기록을 세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부모와 남매로 구성된 네 가족이 산산이 파열되는 오컬트 호러 <유전>, 불건강한 연애와 가족 트라우마가 이끈 컬트 집단 입성기 <미드소마>를 만든 미국 감독 아리 애스터의 세 번째 영화다. 202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됨과 동시에 7월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엄마 문제’(mommy issue)를 극복하지 못한 남자의 장대한 3시간짜리 블랙코미디를 보고 난 관객의 반응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표현대로 “극도로 분열”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 여정을 꽤 웃으며 즐겼던 기자의 오디세이 동행담을 우선 띄워보려 한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아리 애스터 감독과 1:1로 나눈 긴 인터뷰도 전한다. 온라인을 떠도는 그의 오래된 단편들과 앞선 두편의 장편까지 종합해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체험해보는 토끼굴로 삼아주시길 바란다.

* 영화 내용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일에 엄마를 만나러 고향에 가려는 아들이 있다. 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엄마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이고 그것이 보(호아킨 피닉스)를 기분 나쁘게 한다. 초현실주의 블랙코미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극심한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 보가 위압적인 어머니(패티 루폰)의 집을 오랜만에 방문한다는 간단한 전제를 낚아채 정신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쳐 내려간다. 요컨대 보는 복상사한 아버지가 죽는 순간에 잉태된 남자로, 그에게 자신의 탄생은 살인을 동반한 섬뜩한 사건이자 유죄 행위다. 섹스를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평생을 쇠약하게 살아온 남자가 자신의 공포와 분투하는 동안, 영화는 장르와 리듬이 상이한 6개의 장을 비명과 함께 통과한다. 좀비물을 연상케 하는 공황 상태의 빈민가, 기이한 평화를 유지 중인 중산층 가족의 교외 주택, 얼핏 <미드소마>의 공동체와도 닮은 유랑 연극단의 숲, 어머니의 그림자가 깃든 거대한 대저택 등이 그 무대다. 현관문 앞에서 열쇠를 도둑맞는 지극히 편집증적인 사건은, 백인 미치광이에 의해 칼에 찔리고, 극단적인 10대의 자살 소동에 연루되더니 급기야 참전 트라우마로 정신 분열에 시달리는 거구의 전사에게 쫓기는 추격전까지 초래하기에 이른다.

그 남자의 문제가 무엇이든…

도입부에서 보의 말을 경청 중인 심리 치료사(스티븐 헨더슨)가 노트에 적은 한 글자 ‘죄의식’(Guilty)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러닝타임 내내 보여주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다. 비교하자면 감독의 가장 유명한 단편 <존슨 가족의 기묘한 일>(2011)의 오프닝 신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금기(taboo)에 대해 설명한 이후, 아들이 아버지를 학대하는 근친 성폭력이 이어지는 전개와 비슷한 셈. 편집증, 자기혐오, 오이디푸스적 불안, 프로이트의 억눌린 리비도, 혹은 그 무언가일 주인공의 이슈는 이미 첫장에서 공표되었고, 남은 것은 공포와 유머의 어 트랙션일 따름이다. 아리 애스터는 “이 영화는 죄책감에 관한 것이 너무 분명해서 말할 가치조차 없다. 자기 자신에 갇힌, 정말 정말 정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다”(<복스>)라고 말한 바 있다. 애초부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테제는 정신분석학적, 실존적 자기 탐구가 아니다. 차라리 그것에 대해 얼마나 웃을 수 있는가를 살피는 집착적 자조 코미디이자 비싼 추상화 실험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행기를 놓친 보는 곧 엄마가 천장에서 떨어진 샹들리에에 머리가 산산이 으깨진 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유전>과 <미드소마>에 이어 이번에도 얼굴 없는 시체가 등장한다. 한편 응당 있어야 할 머리가 없는 자리를, 터부시된다고 할 수 있는 성기의 이미지가 채운다. 시작은 단편영화 <터틀스 헤드>(2014)였다. 성적 욕망이 강한 장년의 백인 형사가 자신의 성기가 점점 쪼그라드는 것을 지켜보는 코미디 소동극인 이 작품에서 성기는 위축되다 못해 사라지고 만다. 아리 애스터는 그 ‘광경’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선 유년의 다락방을 지키고 서 있는 거대한 페니스 괴물이 등장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둔 2편의 장편 이전에 주제적, 형식적 실험을 거쳤던 8개의 단편을 종합하고 극대화한 듯 보이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성적 억압과 자기혐오에 매몰되어 주변화된 남성성이라는 시의적 사회상과 맞닥뜨린다. 이는 그의 새 영화가 어쩔 수 없이 냉소를 불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포에 질린 남성의 여성 혐오까지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는 이 영화에서 보의 곤혹스러움은 관객에게 또 다른 의미의 곤욕이 될 수 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극도의 히스테리 속에서 출산 중인 여자의 산도를 빠져나오고 있는 영아의 시점숏으로 문을 연다. 이 고통스러운 탄생 신에서 시작해 “보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작품을 집어삼킨 남성 판타지의 그물을 떼어내고 나면 결국 태어나는 것, 살아가는 것, 죽는 것 모두 지독히 끔찍한 일이 아닌지 되묻는 악취미적 농담이 남는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고통받을 것이다.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이토록 거창하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를 놀리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웃음기는 어쩌면 실존적 불쾌함에 대응하는 영화적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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