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과 <미드소마>. 단 두편의 영화로 호러의 새 거장이라 불리며,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튜디오 A24의 달링이 된 남자. 아리 애스터가 긴 장마 소식과 함께 서울에 도착했다. 방만한 디테일과 더불어 한층 사적인 뉘앙스마저 풍기는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두고 창작자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향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짙어졌지만, 그는 이번 영화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고자 했다. 아리 애스터와의 대화는 그럼에도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수다스러운 배경만큼이나 빼곡하게 채워졌다. 장르와 스타일에 관한 한 그는 자신의 위치성을 고찰하는 시네필리아이고, 무엇보다 약 15년 전 시작된 단편영화 제작 시절부터 실험해온 프로덕션의 기술과 장악력이 정점으로 향하는 중인 미국영화연구소(AFI) 출신의 성실한 필름 메이커다. 가엾은 중년 남성의 3시간짜리 정신적 오디세이인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못다 이룬 생애는 어두컴컴한 물속에 처박히지만, 체크 무늬 셔츠와 후드티를 입고 나타난 이 36살의 뉴요커가 보여준 전망은 밝고 명민해, 인터뷰라는 곤혹스러운 부연 설명의 포맷 앞에서 그가 주저하는 동안에도 미처 가려지지 않았다.
- 2014년에 <보 이즈 어프레이드> 초고를 완성했을 정도로 커리어 초기부터 품고 있었던 프로젝트다. 그럼에도 <유전>과 <미드소마>가 먼저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 내 첫 두 영화가 이번 영화만큼 이상하지는 않기 때문에? <유전>과 <미드소마>는 장르영화이고 시장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다크 코미디로 나는 ‘악몽 코미디’라고도 부른다. 우습다는 감각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어서 잠재적으로 누군가에겐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개봉(4월) 후 예상보다도 더 격렬하게 분열된 관객 반응이 관찰됐다. 나는 그렇게까지 생경한 종류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규모의 문제도 있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유전>과 <미드소마>보다 훨씬 더 큰 영화였기에 더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 당신은 이 영화를 “살지 못한 삶에 대한 영화”라고 압축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겁에 질린 보(호아킨 피닉스)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정 중 연극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체험하는 순간이 있는데, 메시지가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된 구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보와 그의 사랑, 갈망과 욕망, 슬픔을 가장 깊이 파고들었던 장면이다. 좀더 주체적인 삶을 살거나 두려움에 덜 휘둘렸다면 어떤 삶을 살 수 있었을지에 대한 보 자신의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보려 했다. 그의 마음속에 빠져들고 있지만 연극의 인공적인 느낌 역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여전히 현실이 아니라 연극이어야 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가장 가짜 같고 인위적인 시퀀스지만 감정적으로는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 신경증이 도사리는 가족, 특히 서로를 향한 공포와 억압으로 점철된 부모와 자식간의 심리를 건드려왔다. 지금껏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당신과 엄마의 관계를 묻는 정신분석학적 호기심을 수없이 접했을 것 같은데, 비슷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심정이 어떤가.
= 짜증난다. (웃음) 영화가 끝날 때 내 일도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언론에 나서는 것이 천성적으로 즐겁지가 않다. 내게는 매우 위험한 상황처럼 느껴진다. 이미 내가 영화에서 한 말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만 할 뿐인 말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 말이 더 있다고 생각했다면 영화에서 말했겠지. 오스카 와일드처럼 인격이 우선이고 그의 말과 행동 또한 작품의 일부인 예술가들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런 타입의 예술가는 아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 있다면 정말 피하고 싶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럴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있다.
- 인터뷰에 시간 내주어 다시 한번 고맙다. (웃음)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뒤틀린 가족 관계가 일으키는 심리적 긴장과 성적 금기의 침범 같은 주제는 당신이 시나리오를 쓸 때 그저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 같은 것인가. 왜 여기에 천착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본 적 있나.
=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런 것들에 자연스럽게 끌리기 때문에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확실히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감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어머니는 우리가 태어난 장소이기도 하므로 모자 혹은 모녀 사이에 더욱 애틋하고 복잡할 무언가가 움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 경우는 그 유대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고려할 때 비로소 탐구하고 싶은 흥미로운 드라마가 생성된다.
코미디 이즈 코미디
- 주인공 보는 아직도 엄마를 벗어나지 못한 중년의 오이디푸스라고도 할 수 있겠다. 후반부 연극 장면을 포함해 그리스 비극의 모티프를 녹이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나.
= 그리스 비극에 대해 내가 대단히 재미있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신들이 너무 속이 좁고 하찮다는 것이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보에게 어머니가 그리스 신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특히 유대인 문화에서는 어머니를 신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많은 경우에 유대인들은 반드시 종교적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엄마만큼 더 높고 무서운 존재를 바라볼 수 없는 실존적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아, 어쩌다보니 유대인 농담을 한참 풀어 설명한 셈이 됐는데, 이만 말을 줄이겠다.
- 몬트리올 세트장에 구현된 보의 도시는 무정부적 지옥도에 가깝다. 판타지도 리얼리즘도 아닌 그 사이 지대의 한톤 과장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이 까다로운 비전을 제작진과 명확히 공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 그 적절한 피치를 찾는 것은 매우 고조되는 일이었고 때로 극단적으로 나아갔으며, 통제할 것이 무척 많았다. 배경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에게 매우 구체적인 행동을 부여하는 식이었다. 많은 통제권을 행사해야 했지만 어쨌든 핵심은 제작진들 사이에 공유되는 유머가 무엇인지 단서를 찾는 것이었다.
- 전작들에 비해 장르 관습의 보호를 받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에 초현실적인 설정들에 혼란을 느끼는 관객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어땠나. 이를테면 보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의 환상이거나 겁에 질린 내면의 반영일 수 있다는 식의 해석이 배우나 스탭들에게 허용되었을까.
= 무엇이 판타지고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이 프로덕션에서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영화에 대해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보의 세계는 보의 세계일 뿐이었다. 내 관점으로는 보의 현실은 정확히 지금의 형태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세계보다 약간 더 만화적인 버전이다. 하지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 칼에 찔린 보가 어느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족의 10대 딸이 머무는 방에서 깨어났을 때, 멤버수 55명인 K아이돌 포스터가 그를 반겨준다. 유머로 활용되는 매우 집요하고 구체적인 배경 미장센으로 가득 찬 영화인데,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갔나.
= 프레임에 담긴 수많은 세부사항들은 프로덕션 디자이너 피오나 크럼비와 함께 작업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상업주의적인 일상 세계의 디테일들, 영화 포스터, 간판 및 광고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내가 구글 시트에 모아두었던 긴 목록의 아이디어들을 활용했다. 한동안은 사물에 이름 붙이는 것만 생각할 정도였다.
- 지금과 같은 프로덕션 디자인의 기조가 앞으로도 이어질까. 가령 구글 시트의 남은 목록들을 다음 작품에 반영할 것인가.
=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대부분을 사용했지만 물론 아직 남아 있는 것들도 많다. 언제 다시 이번과 같은 종류의 유머, 우스꽝스러움의 조도를 공유하는 영화를 또 작업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 이즈 어프레이드>와 비슷한 무대를 가진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 끔찍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만드는 것이 당신에겐 비극의 완충 작용에 가깝나, 아니면 더 가학적인 선택인가.
= ‘아! 이 영화는 코미디가 될 거야’ 혹은 ‘이걸 코미디로 만들어야겠어’라고 의식적으로 결정한 시점이 있었다면 이 질문에 답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 같다. 하지만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그저 코미디였을 뿐이다.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길을 간 것이었고 그래서 톤을 조절하는 데 어떤 전략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영화는 내게 웃기고 재밌는 것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충실히 일한 결과물일 뿐이다. 질문에 대답하자면 어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농담이 가장 중요했다.
불경과 전복의 전통을 사랑한다
- <유전> <미드소마>에 참여한 파벨 포고젤스키 촬영감독이 이번에도 함께했다. 보가 집에서 엄마, 택배 직원과 각각 통화하면서 극도로 두려움에 물드는 장면의 클로즈업 숏을 인상적인 촬영으로 거론하고 싶다. 오직 인물의 얼굴만 보여줄 뿐인 미니멀한 숏이지만 드라마틱한 카메라 무빙을 통해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 카메라가 그저 무언가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의 주제와 비트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궁리한다. 카메라의 모든 것은 의도적이어야 한다. 이 장면에서는 호아킨 피닉스의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끊지 않고 지속시키기로 했다. 처음에 보가 대화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애쓸 때는 돌리숏으로 그에게서 멀어졌다가 비극적인 뉴스가 들려오는 순간 카메라가 멈추고, 그의 마음속에 공포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카메라가 줌인한다. 돌리숏으로 시작해 줌숏으로 바뀌는 것이다. 촬영감독, 돌리 그립, 촬영조수(first assistant camera)와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 위해 집중하는 동안 현장은 훨씬 재미있어졌다. 호아킨이 훌륭한 연기를 펼쳤는데 포커스가 망가지거나 돌리가 덜컹거리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공포스러운 일 아닌가. 모두가 제대로 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장면이다.
- 숲속의 유랑 연극단이 펼치는 연극의 무대장치, 그리고 후반부 등장하는 다락방의 페니스 괴물까지 최대한 아날로그하고 인형극적인 모티프를 살렸다.
= CG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전>과 <미드소마> 때도 항상 아날로그와 실용적인 효과를 선호해왔다. 물론 시간이 없거나 제대로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물리적인 구현이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실체를 만들려고 한다. 컴퓨터그래픽을 추가할 때는 실제로 촬영한 것의 세부를 향상시키기 위함이지 화면에 아예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선 카메라의 움직임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열쇠와 가방을 잃어버리는 초반부 설정은 AFI 대학원에서 발표한 2011년 단편 <보>에서 먼저 등장했던 것이다. <보>는 당신이 실제로 대학원 시절에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가기 전 촬영한 작품인데, <보 이즈 어프레이드> 속 보의 아파트 역시 단편과 거의 비슷한 분위기로 재현된 것이 흥미로웠다. 혹시 그 시절에 체험한 강렬한 경험이 있나.
= 많은 문제들이 산재한 큰 건물의 작은 방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그 시절의 나는 돈이 없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단편 <보>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문 앞에 열쇠를 둔 채 잠시 집으로 들어간 사이에 열쇠가 사라지고 만다는 공포스러운 설정이었다. 그 사소한 불행이 촉매제가 되어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보>의 시도가 미래의 어느 때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확장되긴 했지만, 기존의 단편영화를 리메이크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비슷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전혀 다른 단계의 작품이다.
-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는 빈민가의 노숙자와 마약중독자들, 교외의 중산층 가족, 숲속의 히피들, 그리고 대저택에 사는 CEO 엄마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일종의 자본주의 계급도를 보여준다.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는 당신의 단편 <세라비>(C′est La Vie, 2016)의 노숙자, <뮌하우젠>(Munchausen, 2013)의 중산층 모자, <베이시컬리>(Basically, 2014)의 부유층 모녀들이 모두 하나의 세계에 모인 것 같다. 창작자인 당신의 자리는 이중 누구와 가장 가깝다고 보는가.
= 생각해본 적 없는데 좋은 질문이다. 예술가가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계층 구조 어디쯤에 위치하게 될지의 문제가 정말 어려워진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싫어하더라도 미국에 사는 그 누구든 자본주의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본주의자로서 기능하는 것과 그 시스템에 대한 해설자 역할을 하는 것 사이에 있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그게 내가 하는 일 같다. 그리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간접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건드리고 있긴 하지만 논쟁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 내겐 중요하다. 사실 오래전에 만든 단편영화들을 다 지워버리고 싶다. (웃음) 나를 자연스럽게 자극하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마음만큼 위험한 자기 반복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 악몽의 코미디를 구사한 동시대의 또 다른 미국 감독들로 데이비드 린치, 찰리 코프먼 등을 떠올려보게 된다. 이들 영화와 비교하는 코멘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 초현실주의 영화에서 데이비드 린치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루이스 부뉴엘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찰리 코프먼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연결 짓는지도 잘 알겠다. 나는 두 감독의 영화를 모두 매우 좋아하지만, 모든 창작자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그것이 오직 홀로 서기를 바랄 뿐이다.
- 이번 작업을 통해 배우 호아킨 피닉스와 유독 긴밀하게 교류한 듯싶다. 작업을 회고하거나 연기 방식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인데 당신과 나란히 A24 팟캐스트에서 대담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메소드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보니 어떻던가.
= 호아킨 피닉스는 매 장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이다. 그와 동시에 감독도 예상치 못했던 새롭고 직관적인 표현을 시도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거나 자신이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고 느끼면, 그는 그 상태로 계속 진행하기보다 무조건 멈추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한다. 거짓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배우이다. 호아킨과 나는 촬영 전부터 긴 시간 매우 협력적으로 함께 일했고, 나는 그에게서 나오는 다양한 모습에 끊임없이 흥분할 수 있었다. 한번은 블로킹이 어떻게 될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촬영에 들어갔음에도 그와 현장 리허설을 마친 이후에 정말로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 한국영화에 오랜 관심과 애정을 밝혀왔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번 내한 기자회견에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영화로 꼽았다.
= 멜로드라마적 느낌과 유머, 그리고 불경함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에 매우 친근감을 느낀다. 특히 <오발탄>은 가족에 관한 훌륭한 영화 중 하나이고 무엇보다 뛰어난 멜로드라마이다. 멜로드라마틱한 영화들을 무척 좋아한다.
- 멜로드라마적 양식이 한층 강화된 작품을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차기작으로 알려진 <에딩턴>은 다크 코미디와 결합한 웨스턴 누아르가 될 거라고 예고했다.
= 지금까지 내가 만든 세편도 이미 충분히 멜로드라마적이지 않나. (웃음) 더글러스 서크와 윌리엄 와일러, <오발탄>과 김기영의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불경과 전복의 전통을 사랑한다. 언젠가부터 과하거나 지나친 상태를 멜로드라마적이라는 말로 비하하기도 하는데 그건 굉장히 부정확한 쓰임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뜻하는 멜로스(melos)와 드라마가 결합된 개념이 멜로드라마인 만큼 숙명적으로 오페라틱할 수밖에 없고, 나는 바로 그 점에 아주아주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