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괴담 레지던시에 참가한 '잉여탐정단' 리엔루 감독, 한국의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영감을 얻다
2023-07-08
글 : 이자연
사진 : 최성열
괴담 캠퍼스-괴담 레지던시에 참가한 <잉여탐정단> 리엔루 감독

올해부터 부천영화제에 ‘괴담 레지던시’가 신설 됐다. 영화 창작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괴담 캠퍼스’의 일환으로 해외 창작자들이 영화제 기간 동안 부천에 머물며 국내 현직자의 전문적인 멘토링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영화, 시리즈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괴담 기획개발 캠프와 별개로, 외국 창작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부천영화제와 대만의 협업

부천영화제는 대만콘텐츠진흥원(이하 TAICCA),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필름위크(JFW)와 업무 협약을 맺고 한국 장르영화의 비결을 배우기 위한 창작자들의 짧은 유학을 돕는다. 특히 대만의 경우, 부천영화제와 윈윈 전략을 설계했다. 부천영화제가 TAICCA 크리에이터에게 멘토링 기회를 제공하면, TAICCA는 한국 감독들에게 공동제작 펀드를 신청할 자격을 제공한다. TAICCA의 공동제작 펀드에 신청할 자격을 얻으려면 먼저 대만크리에이티브콘텐츠페스티벌 (TCCF)에 참가해야 하는데, 괴담 캠퍼스 프로 그램을 마친 한국 영화 창작자는 선별 과정 이후 자동적으로 TCCF에 등록된다. TAICCA의 공동제작 펀드는 최대 30만달러(약 4억원)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국제협약의 긍정적 측면을 기대할 수 있다. 괴담 레지던시의 가장 큰 혜택은 프로젝트에 맞게끔 1:1로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멘토의 해외 작품 경험이나 커리어 이력에 맞춰 유익한 조언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올해에는 <더 테이블> <여배우는 오늘도> <리틀 포레스트> <조제> 등을 제작한 구정아 PD 가 함께했다. 6월12일부터 7월9일까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구정아 PD와 한달여 동안 함께한 참가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멘토와 화상 통화로 온라인 피드백을 받는다. 현재 작업 중인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올 10월, 부산콘텐츠마켓에서 피칭을 가질 예정이다. TAICCA의 추천을 받아 부천을 찾은 대만 감독은 바로 리엔루다. 리엔루 감독은 단편영화 <명왕성에게>(A Map to Pluto)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최우수 학생 영화상,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최우수 단편영화상 등을 수상 했으며, 2020년 자신의 영상 스튜디오 ‘발 프로덕션’ (Val Production)을 설립해 뮤직비디오와 광고 이미지 영상을 작업하고 있다.

리엔루 감독에 대해

괴담 레지던시에 선정된 그의 작품은 <잉여탐정단>(Leftover Women Detectives)이 다. 이제 막 3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가리키는 ‘잉여’라는 말의 사회적 의미를 전복시키고자 영화를 기획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네명의 단짝 친구 중 한명이 현재 만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야”라는 말과 함께. 레즈비언이자 LGBTQ 운동가, 이전의 연애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승무원, 일하는 것만이 나를 증명한다고 믿는 워커홀릭, 패션 회사를 운영하는 완벽주의자. 서로 성향도 관심사도 다른 네 친구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선택을 놓고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다. “정말 그 남자가 완벽한 사람일까?”

친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탐정이 된 세 친구는 남자를 향한 탐색과 취조 과정에서 서로를 위한 우정을 다시금 발견한다. 영화 속 자유로운 소재와 개성 넘치는 이야기는 대만 현지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 리엔루 감독은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다. 법과 규율이 바뀌니 성 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잉여탐정단>에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사회상을 반영한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격변 속에서 대만은 세대 차이로 인한 문제를 앓고 있다. 결혼관은 물론 라이프스타일까지 자유로운 밀레니얼 세대와 기성세대간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라며 <잉여탐정단>에서 가늠할 수 있는 대만의 동시대성을 짚어냈다.

영화의 스토리와 구성을 점검하기 위해 구정아 PD와 함께 보낸 지난 한달에 대해 리엔루 감독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성 서사에 작은 왜곡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남자들의 구원을 기다리는 여성상을 그리지 않는 게 중요했는데, 구정아 PD는 그런 목표를 잘 이해해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유일한 정답처럼 말하기보다 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날렵한 질문을 건넨다. ‘원래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뭐야?’ ‘이 장면이 여기에 필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했어?’ ‘어떤 사회현상을 반영하고 싶어?’와 같이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궁극적인 질문을 건네니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TAICCA와 부천영화제의 국제 교류는 리엔루 감독의 창작 경험을 넓혀주고 새로운 방향의 기분 좋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대만은 콘텐츠 창작자들이 다른 국가와 교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섬이라서 고립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창작자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어떻게 해결책을 모색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한국에 직접 와서 이곳의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함께 포럼과 강연을 들으 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이어 그는 TAICCA와 부천영화제의 지원으로 영화가 제작될 날을 고대했다. “경제적 기반 없이 자유롭게 영화 작업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대만의 이야 기이긴 하지만 대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식 기관의 도움을 받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기쁘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잉여탐정단>을 완성해 세상에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작품으로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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