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이주현 편집장] 2023년 여름의 한국영화가 남긴 것들
2023-08-25
글 : 이주현

<씨네21>의 비평지면 ‘프런트 라인’의 필자 4명(김소희, 송형국, 김병규, 송경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올여름 개봉한 4편의 한국영화 대작들을 중심으로 최근 한국 상업영화가 보여준 일련의 경향과 성패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조곤조곤 진행된 대담은 4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몰래 온 손님처럼 참석한 나는 이야기가 더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평론가들은 창문 없는 회의실을 이제 그만 탈출하고 싶은 눈치였고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는 이우빈 기자도 이미 기사로 쓸 분량은 충분하다는 말로 평론가들의 귀가를 배웅했다.

‘한국 여름영화 빅4를 말하다’ 대담 시작에 앞서 김병규 평론가는 ‘개봉 시기가 비슷할 뿐인 4편의 영화를 왜 빅4라는 이름으로 묶어 이야기해야 하는지, 무기력한 관습과 인위적인 마케팅 용어는 아닌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씀. 1년 중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여름 시즌의 텐트폴 영화는 주요 배급사들이 올해의 대표주자 격으로 내놓는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 여름 시장의 흥행 결과를 분석해보면 지금의 대중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도 알 수 있다. 창작자/투자자들이 생각하는 ‘대중적’ 영화와 실제 대중의 선택이 늘 기분 좋게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올여름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네명의 평론가들은 네편의 개별적인 영화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귀환의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거나,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대를 향하고 있다거나, 국가 질서 혹은 시스템의 부재를 얘기한다거나. ‘지금 여기’가 삭제된 현상에 대해 다음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올여름 한국영화에 현재 세대는 없고 오로지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만 존재한다. 현 세태와 영화가 비슷한 상황이다.”(김소희) “아무도 현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의 작가들이 너무 염세적이란 게 느껴진다.”(송형국) “시대의 내부에서 저항하는 방식으로 해결점을 찾기보단 그 바깥으로 나가거나 아예 리셋하고자 하는 충동이 영화(<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느껴진다.”(김병규) 기획의 시점도 목표도 모두 다른 영화들이 이런 공통점을 보인다는 것은 확실히 무언가를 시사한다.

지면에는 싣지 못했지만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유롭게 오갔다. 이를테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선 왜 민성(박서준)과 명화(박보영)보다 영탁(이병헌)이 더 돌출되는가. 영화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캐릭터는 민성이고, 끝까지 살아남는 인물은 명화인데도. 그것은 이병헌 때문인가. 송경원 기자는 “영화가 날 매료하는 건지 배우(이병헌)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날 매료하는 건지 점차 헷갈리더라”라고 했고, 김병규 평론가는 “영탁이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에서, 그가 지닌 폭력성과 나르시시즘에 영화가 동조하고 심취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가 의도치 않게 배우의 연기에 압도되었다면, 그것은 감독이 영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통제되지 않은 무언가가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인가. 대담이 끝나고 나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