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영화 ‘거미집’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시리즈 ‘무빙’의 팝업존 방문기
2023-09-21
글 : 김소미

1970년대 영화판을 호령하는 신성필름 건물을 누비는 감독이었다가, 가짜 퇴마 사무소에 취직해 명함을 발급받은 신입 직원이었다가, 안기부와 정원고 건물을 거쳐 저 높은 구름 위까지 두둥실 떠오른 초능력자가 됐다. 돌아오는 길, 손에는 어느새 굿즈용 대본과 직접 ‘부꾸’(부적 꾸미기)한 부적, 초능력자임을 증명하는 기밀문서가 들려 있다. 종로와 성수 일대의 영화, 시리즈 팝업존을 돌아다니며 반나절 만에 생긴 일이다. 컨셉과 캐릭터, 극 중 장면을 구현한 공간을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관객 유입을 추구하는 팝업존 마케팅의 매력을 체험했다. 기자가 느낀 바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과연, 안 볼 수가 없겠구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주소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 40 / 기간 9월4일~9월24일

➊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무속적 실내 장식, 천 박사(강동원)에게 의뢰 들어온 망령이 깃든 망주석 등 영화 속 미장센을 그대로 살려 컨셉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팝업존 내부.

➋ 팝업존이 작품과 관객간 친밀감을 도모하고 입소문을 내는 데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수단은 SNS 인증 마케팅. 해시태그 인증을 마친 말레이시아인 여행객들이 키링, 티셔츠 등을 받을 수 있는 굿즈 뽑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동선에 따라 참여자들의 시선이 주로 머무는 벽면에 영화의 주요 정보들을 노출했다. 천 박사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조력과 대립 구도를 알려주는 관계도가 눈에 띈다.

➌ 배경에 큼지막이 자리한 극 중 캐릭터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부스.

➍ 생계형 퇴마사 천동식의 사무실을 연출했다. 원하는 이름을 입력하면 ‘천박사퇴마연구소’의 신입 연구원 명함을 얻을 수 있다.

➎ 천 박사, 범천(허준호), 유경(이솜), 인배(이동휘), 황 사장(김종수)까지, 5인의 주요 캐릭터별로 애정운, 합격운, 금전운 등 대표하는 운수를 부여해 팝업존을 찾은 예비 관객들이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 부적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캐릭터별 도장과 스티커를 붙이고,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성심껏 써보는 이른바 부꾸존

<거미집>

주소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56-1731 / 기간 9월4일~24일

➊ <거미집> 팝업존의 정수는 세트장 체험에 있다. 준비된 소파에 앉아 재촬영에 몰두 중인 감독 김열(송강호)이 되어보거나, 이민자(임수정), 한유림(정수정)에 버금가는 당대 은막의 스타들처럼 흑백 화면의 주인공이 되어볼 수도 있다. 감독 의자 옆에 놓인 카메라로 실시간 촬영되어 흑백 모니터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참여 관람객들의 셔터 소리가 가장 분주히 들리는 공간.

➋ 팝업존의 핵심 컨셉은 <거미집>의 감독이 되어 재촬영된 시나리오 수정본을 완성하는 것. 영화 속 장면이 그려진 스틸컷 아래 직접 대사를 써보기도 하고, 거미집 위에 사라진 거미를 내 식대로 그려보는 미션도 있다. 그 끝에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드디어 김열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벽면에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불같은 사랑> 포스터. 당대 영화 포스터의 유행을 그대로 재현한 컬러풀한 디자인 속 배우 임수정의 모습이 옛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감쪽같이 아름답다.

➌ 팝업 안내원의 의상부터 행사장 바깥까지 <거미집> 팝업존은 1970년대로의 시간 여행에 충실하다.

➍ 어지러운 작업실엔 쓰다 만 시나리오와 콘티가 한가득. 당신의 아이디어를 벽면에 붙이면서 이렇게 중얼거리면 된다. “수정한 시나리오는 여기에 붙여놓고 가면 조연출이 확인하겠지?”

<무빙>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5 / 기간 9월1일~10월3일

➊ 미현(한효주)과 두식(조인성)의 사랑이 꽃핀 안기부 자판기 앞이 <무빙> 스페셜 팝업의 문을 여는 첫 공간이다. 자판기를 지나 두식이 하늘을 날아 돈가스를 배달했던 미현의 사무실을 통과하고, 주원(류승룡)의 원테이크 액션 신이 돋보였던 부서진 모텔방으로 향한다. 작품 속 장소는 물론 주요 사건을 재현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구성.

➋ 마지막 관문은 구름과 조명이 어우러져 남녀노소 각자의 초능력 스타일대로 포즈를 취하게 하는 구름존.

➌ 직접 자신의 사진을 출력해 국가재능육성사업(NTDP)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팝업 공간을 돌며 미션을 하나씩 완수할 때마다 신상명세서 아래쪽에 도장을 받으면 완성.

➍ 사격존에선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고글을 쓰고 목표물을 향해 정조준한 뒤 인당 5발을 발사한다. 이어서 관람객을 기다리는 건 봉석(이정하)과 친구들이 머무는 정원고 교실. 텅 빈 교실에서 붕 떠 있는 봉석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게끔 꾸며졌다.

➎ 블랙요원에서 치킨집 사장이 된 주원의 공간이 팝업을 둘러보다 출출해진 관객들을 유인한다. 컵 사이즈로 무료 제공되는 치킨과 콜라를 먹으며 식탁에 비치된 태블릿으로 <무빙>을 볼 수 있도록 배치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➏ 행사장을 떠나는 이들이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한성도서주식회사 터의 오래된 건물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미현, 두식, 주원 캐릭터의 사진을 실물 크기와 흡사하게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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