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 더 찍으면 걸작이 될 수 있어.” <거미집>은 1970년대 한국영화 현장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데뷔작 ‘불타는 사랑’의 성공 이후 하락세를 겪고 있는 감독 김열(송강호)은 차기작 ‘거미집’을 다시 찍어야 한다는 열망에 빠진다. 꿈에서 본 장면을 찍기 위해 회사를 설득하고 배우들을 모은 끝에 재촬영이 시작되지만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난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 걱정만 하는 제작자를 설득해야 하고, 딴생각에 정신이 팔린 배우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어야 하며, 서슬 퍼런 검열의 칼날을 휘두르는 당국의 감시도 피해야 한다. 과연 김열은 이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어 촬영을 마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다시 찍는다고 걸작이 되긴 하는 걸까.
2018년 <인랑>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온 거장들의 고민과 궤적을 함께한다. 팬데믹 이후 세계는 멈췄고 감독들은 일제히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모색 중이다. 최근 거장들의 자전적 영화나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많아진 건 우연이 아니다. 김지운 감독 역시 <거미집>에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열망을 불씨 삼아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다. <거미집>은 197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감독의 자전적인 고백이다.
<거미집>은 1970년대를 빌려 지금을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는 마음속 불꽃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김지운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속 불씨를 꺼내고 활활 태워 모든 걸 전소시키는 과정”은 단지 한 예술가의 집착과 고뇌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열망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불을 지핀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답게 재미있게 전달된다. 이 매혹적인 현장의 설계자이자 놀라운 배우들이 펼치는 앙상블의 지휘자 김지운 감독의 입을 통해 <거미집>을 샅샅이 파헤쳐보려 한다. 김지운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고 후련한 표정으로 묵혀둔 진심을 전해왔다. 재미있고 의미롭게, 우리는 이미 거미집에 걸렸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김지운 감독 인터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