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MCU의 ‘타임라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히어로물 애호가의 항변
2023-11-24
글 :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
<왓 이프...?>

MCU는 일종의 대체역사물의 기능을 해왔다. 마블이 자신들의 공간 배경을 ‘지구-199999’라고 명명하고 ‘멀티버스 사가’로의 진출을 결정한 순간, 영화의 역사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미래가 펼쳐진 셈이다. 코믹스 시장이 그래왔고 <스타워즈> 시리즈가 팬들과 함께 성장하며 새롭게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를테면 어벤져스에게 승리를 안겨준 치타우리족의 뉴욕 침공이나 ‘시빌 워’의 발단이 됐던 소코비아 협정, 우주 생명체의 절반이 5년 동안 사라졌다 돌아온 ‘블립’과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주요 사건들은 21세기 초에 벌어졌던 진짜 지구의 역사를 거울처럼 반영했다. 페이즈5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향후 몇년 안에 만들어질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 역시 작금의 국가간 분쟁 이슈나 시대정신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시크릿 인베이전>의 결말에 충격을 받은 팬들이 많지만 닉 퓨리와 스크럴족의 관계가 거울처럼 대변하고 있는 이슈는 결국 가짜 뉴스, 정보와의 전쟁이다. 마블은 나아가 문화 다양성을 포용하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개발했고 제작진 기용에서도 다양성을 포용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함몰되어 재미없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마블과 디즈니의 이 실험은 결과를 내다볼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장이다. 현실을 반영한 대체역사물의 ‘타임라인’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다.

물론, ‘인피니티 사가’에서 사실상 무적에 가까운 카리스마와 파워를 보여줬던 캡틴 마블이 <더 마블스>에서 ‘다르-벤’ 같은 존재감이 빈약한 캐릭터와 왜 박빙의 겨루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왓 이프...?>에서 울트론에 맞서 싸우던 ‘가디언즈 오브 멀티버스’ 팀플레이의 완성도에도 한참 못 미치게 만든 건 제작진 중 누군가는 책임을 면치 못할 문제이자 위기가 맞다. 그럼에도 <로키> 시리즈를 통해 기존의 캐릭터를, 심지어 죽음을 맞이했던 캐릭터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시킨 성공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어벤져스 멤버도 아니었던 로키가 아이언맨의 희생에 버금가는 감동과 희열을 선사하게 만든 <로키> 시즌2의 결말은 사실상 ‘리부트’의 개념이라 봐야 하고, 이걸 가능하게 만든 것이 MCU의 ‘타임라인’, 즉 멀티버스 사가로의 진출인 셈이다. 로키와 같은 방식으로 블랙 팬서와 블랙 위도우도 복귀시킬 수 있다. 이미 <왓 이프...?>에서 실험을 마쳤다.

페이즈4와 페이즈5는 마블의 과도기가 분명하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고뇌도 실은 아이언맨의 부재 때문이고 <완다비전>의 스타일리시한 전략도 스칼렛 위치가 비전을 못 잊어서 벌어진 사태에서 기인했고, <왓 이프...?>가 선사하는 감동 역시 블랙 팬서와 블랙 위도우를 추모하기 때문이다. 즉, ‘인피니티 사가’ 이후 현재까지의 화제성은 결국 ‘이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타노스를 대체할 빌런의 부재로 슈퍼히어로들에게 과거만큼의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거라는 점 역시 숙제다.

그러거나 말거나 멀티버스의 위기를 뜻하는 ‘타임라인’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영화가 드라마 시리즈의 브리지 형태가 되고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불평하고 있을 때 관객과 시청자가 봐야 할 작품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현실의 역사는 연대기순으로 펼쳐볼 수 있지만 마블의 ‘타임라인’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무작위로 펼쳐보는 사람마다 다른 재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MCU의 ‘타임라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로키’가 지금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고생하고 있고, 종말의 위기가 찾아오면 멀티버스를 들여다보는 왓쳐가 개입해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게 만들어줄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멀티버스 사가’에 무지한 자기 탓을 할 일이다. 결국 따라갈 사람들은 따라가게 되어 있다. ‘남아 있는 자’가 그렇게 정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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