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감정은 컵 속의 물과 같아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배우 송강호 <괴물> 마스터스 토크 2
2023-11-24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 감정은 컵 속의 물과 같아서

송강호 그나저나 이번에도 변함없이 아역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펼칩니다. 그게 참 미스터리해요. 아무리 오디션을 통해 아역배우를 캐스팅했더라도 어떻게 저렇게 어린 배우들이 영화의 본질을 꿰뚫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지. <브로커> 촬영 때도 제가 계속 이에 대해 질문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번 더 여쭤봅니다. <괴물>의 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한 아역배우 구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 두 사람을 어떻게 캐스팅했으며, 어떻게 연기 지도를 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번엔 기존과 다른 기준으로 아역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괴물>의 두 주인공 캐릭터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는 안고 있는 갈등이 상당히 깊으면서도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천진한 면이 있습니다. 깊이 있으면서 굉장히 순수한 내면을 표현해야 하기에 이제까지와 달리 성인배우와 같이 시나리오를 미리 읽게 하고 리허설도 했습니다. 가능하면 두 아역배우가 자주 함께 식사하고 두 배우를 데리고 길에 나가서 대사를 시켜보는 리허설도 했습니다. 준비를 길게 했죠. 또 아역배우들이 대사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행동하면서 대사를 툭 던질 수 있게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밥 먹다가 대사가 툭 나오고 놀다가 대사가 툭 나오는 식으로요. 상대의 대사를 듣고 자연스럽게 리액션 대사가 나오도록 둘의 관계 속에서 대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연습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역배우들에게 감정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을 가리키며) 여기에도 있고 (배를 가리키며) 여기에도 있다고, 감정을 몸의 어디로든지 표현하는 게 좋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물건에도 감정이 있다고 계속 얘기했죠. 그랬더니 구로카와 소야 배우가 영화의 후반 장면에서 보리차가 든 컵을 기울여서 물이 쏟아질 것처럼 다시 되돌리는 연기를 보여줬어요.

송강호 이야~ 저도 컵에 물 좀 주세요! 한번 해봐야겠다. (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가 감정을 생각할 때 자신이 컵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했거든요. 그리고 감정은 그 컵 안에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그 안에는 따뜻한 물이 들어갈 수도 있고 차가운 것이 들어갈 수도 있고, 그 컵은 유리일 수도 금속일 수도 있고 플라스틱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안에는 우유를 넣을 수도, 커피를 넣을 수도 있으니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보라고 했죠. 그랬더니 구로카와 소야 배우가 촬영 때 컵을 기울이는 연기를 펼친 겁니다. 어떻게 이런 연기를 했냐고 배우에게 물어보니 보리차가 든 컵이 자신이라 생각하고 표현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아역배우가 그러한 연기를 발견해냈다는 것이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그 연기를 볼 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송강호 주인공을 연기한 친구들이 이번에 연기를 처음 하는 친구들이에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드라마는 몇편 했지만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건 처음입니다.

송강호 <브로커> 때도 느꼈지만 고레에다 감독님의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아역배우들의 뛰어난 창의력과 감성이 느껴집니다. 그게 참 궁금했거든요. <브로커>를 찍을 때도 제가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아역배우들한테 연기를 주문하나. 그때도 놀라웠지만 아역배우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감독님의 연기 주문 방식이 저는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스스로 찾아가게끔 하는. 이게 가장 정석이고 가장 배우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방식이면서 그 자유로움 속에서 배우가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걸 창조하게 하는 위대한 디렉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역배우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에게 이렇게 연기 주문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다음 작품 때 구로카와 소야처럼 컵에다 물을 담아 한번 해보겠습니다. (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하하하! (작게 웃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송강호 그럼 감독님이 “거 송강호씨, 물 흐르잖아요! 빨리 닦으세요!” 이럴 거 같아요. (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역배우들이 현장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아역배우가 자유롭게 마음대로 해도 이렇게 제대로 받아주는 성인배우들이 있어서죠. 성인배우들이 있다는 안심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죠.

송강호 고레에다 감독님이 정말 훌륭한 감독님이란 사실이 다시 한번 간접적으로 입증됩니다. 후배 배우들한테 “다음부터 오디션 갈 때 컵에다 물 담아가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웃음) 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 한잔 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송강호 배우가 물을 마시는 사이 취재진을 향해) 지금 이렇게 송강호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나 즐거워요. 송강호 배우는 현장에서 절대로 심각한 상황을 만들지 않습니다. 모두가 준비를 하고 있을 때도 어느 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툭 던져 분위기를 따뜻하게 풀어주셨고, 그렇게 다들 긴장이 조금 풀어지면 가장 좋은 연기가 나왔어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뛰어난 연출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송강호 배우는 언제나 환기를 시켜주는 사람이라 생각하는데요. 따뜻한 공기가 필요하면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또 다른 공기가 필요하면 분위기를 다시 바꾸는 역할을 하죠. 그것이 비단 송강호 배우가 본인의 연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 전체와 한신 한신에 맞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송강호 배우는 이제껏 제가 만난 적이 없는 배우입니다.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오늘처럼 취재진과 함께 대담하는 자리에서도 분위기를 확 바꾸어주죠. 통역을 하는 과정에도 송강호 배우가 한마디를 툭 던지면 분위기가 달라져버립니다. 저는 한국어 의미를 잘 모르지만 0.001초의 타이밍에 던진 말로 뭔가가 크게 바뀌네요. 그런 걸 보면 정말 두근거립니다.

송강호 인터뷰 끝나고 간장게장을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오늘 무대인사 때문에 죄송합니다. (송강호 배우는 이날 대담이 끝나자마자 대구에서 열리는 <거미집> 무대인사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을 떠나야 했다.-편집자) 무대인사 때문에 식사를 대접하지 못하고 이 말씀에 보답을 못해드릴 것 같습니다. 너무나 과찬을 해주셨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송강호 배우에게는 모자란 칭찬입니다.

송강호 (꾸벅 인사하며)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된 인연

송강호 오랜 팬으로서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을 꾸준하게 다 봐왔지만, 첫 만남은 부산 해운대의 그랜드 호텔에서 우연찮게 마주친 것이었죠. 그때 고레에다 감독님께서 어떤 말씀을 해주셨냐면 다 좋지만 특히 <밀양>에서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고. 그 말씀이 제게 처음으로 건넨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기억하고 있습니다.

송강호 그때 처음 만나뵙고 몇년 지난 뒤 또 부산영화제에서 <브로커>란 작품을 구상하고 있으니 같이하자고 제의하셨습니다. 그 뒤로 6~7년 흘러 <브로커>를 같이하게 됐죠. <브로커2>를 찍으면 더 잘할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에서 다시 영화를 함께할 수만 있다면 꼭 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오늘 계속 송강호 배우 칭찬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칭찬 말고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산영화제 인터뷰 중 “한국 배우와 일한다면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 “송강호 배우입니다”라고 답했는데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딱 송강호 배우를 만났습니다. ‘내가 말한 그가 바로 여기 있네!’ 하고 놀랐죠. 그때 굉장한 인연을 느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관계가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송강호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 어떤 연기도 저는 칭찬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밀양>에서 전도연 배우도 정말 훌륭하지만, 그 영화가 알려준 것은 이 세계에 송강호라는 배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밀양>의 신애(전도연)를 구원해준 사람도 종찬(송강호)이고 <밀양>이란 작품을 구원한 것도 송강호 배우의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송강호 배우는 언제나 배역이 땅에 발을 붙일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인데요. 특히 <밀양>에서는 이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우리가 그를 실감할 수 있게 만듭니다. 영화가 끝난 뒤 현실로 돌아와서 작품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정말로 뛰어난 연기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송강호란 배우가 항상 우리를 살아가는 쪽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배우라고 생각하고요. 심각한 연기이건 코믹한 연기이건 간에 송강호 배우가 나오면 영화에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송강호 오늘 간장게장을 꼭 사드려야 될 것 같은데…. 너무 과찬을 해주셔서. 다시 한번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송강호 배우가 꾸벅 인사하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함께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감독님도 지금 너무 바쁘시고 저도 일정이 있어 더 시간을 못 보내는 게 너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꼭 작품이 아니더라도 늘 뵙고 싶고 또 신작이 나오면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감독님입니다. 제가 일본을 가든 아니면 감독님이 한국에 오시든 언제든 뵙고 싶습니다. 다음에 한국에 또 오시면 간장게장을 제가 꼭 사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아쉽지만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30여년 만에 다른 각본가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다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환상의 빛>(1995) 이후 다른 각본가의 시나리오로 제작한 작품이다. 30여년 만의 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환상의 빛>의 경우 오기타 요시히사 각본가가 시나리오를 썼고, <괴물>의 시나리오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등 방송가와 영화계를 활발히 오가는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썼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와 함께 2019년부터 <괴물>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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