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시선과 구조,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 괴물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배우 송강호 <괴물> 마스터스 토크
2023-11-24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10월8일 일요일 오전 9시30분, 한일 국경을 초월해 오랜 시간 영화적 우정을 쌓아온 두 영화인이 대담에 나섰다. 신작 <괴물>로 부산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사장 공석, 집행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어수선한 부산영화제를 위해 호스트가 되어 손님들을 맞이했던 송강호 배우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두 사람은 함께 호흡한 <브로커>로 제75회 칸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송강호 배우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올해도 나란히 칸영화제에 다녀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2018) 이후 오랜만에 일본에서 촬영한 영화 <괴물>로 칸영화제 각본상이란 결과를 낳았고, 송강호 배우는 1970년대 충무로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거미집>이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칸에서 시간을 보냈다. 따로 또 같이 칸의 바닷가를 찾은 두 사람은 그곳에서도 시간을 내어 차를 마시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부산에서 마주 앉은 두 영화인은 11월29일 국내 개봉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질문을 던진 이는 송강호 배우. <괴물>의 독특한 3부 구성부터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아역배우 기용술,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과의 협업까지. 송강호 배우의 머릿속에는 질문 계획이 다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진지하게 그의 말을 경청했고 신중하게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송강호 배우가 누구인가. 어떤 장면에서든 그만의 재치로 웃음을 유발하는 데 천재적인, 범상치 않은 인물이 아닌가. 이날 대담은 한없이 진지해지다가도 송강호 배우의 농담에 한순간에 좌중 웃음이 터져나와 분위기가 여러 번 뒤바뀌었다. 진지하면서도 편안하고, 두터운 신뢰가 깔려 있되 웃음이 가득했던 이날의 공기가 독자들에게 잘 전해질 수 있길 바라며 두 영화인의 우정 어린 대화를 꼼꼼하게 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이번에 <괴물>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부산에 왔습니다.

송강호 (일본어로) 곤니치와, 송강호데스! <괴물>이 칸영화제에서 굉장히 빠른 순서로 상영되는 바람에 보고 싶었으나 놓쳤는데 이번에 보게 됐습니다. <괴물>이 너무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참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이 밀려오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

송강호 칸에서도 감독님이 호텔까지 오셔서 커피를 마셨는데, 그날이 폐막식 날이었습니다. 감독님이 폐막식에 참석한단 얘기를 듣고 “이야~ 이번에도 팜므도르(황금종려상)?” 했는데 영화를 보니 팜므도르는 받아야 할 작품이 아니었는가 싶었습니다. 이번 영화가 그 정도였습니다. 상 자체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마는 그만큼 진짜 위대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송강호 배우가 영화 <괴물>을 봐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쁘고 지난번 칸에서 함께 만났던 것도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영화를 작업하고 이렇게까지 관계가 지속되고 있어 정말 기쁘네요.

송강호 저야말로 영광이죠. 고레에다 감독님이 늘 부산영화제는 꼭 빼놓지 않고 오셔서 한국 관객과 대화를 나누시는데요. 올해 또 제가 특별한 역할을 맡아 잠시라도 만나뵙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에 얼굴을 뵈니 정말 반갑고 좋습니다. (송강호 배우는 제28회 부산영화제에서 호스트 역할을 맡아 개막식에서 각국에서 온 영화인들과 손님들을 맞이했다.-편집자) 그런데 감독님, 이번에도 좋아하시는 간장게장을 드셨습니까? (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네, 제대로 먹었습니다. <괴물>의 아역배우 구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를 데리고 간장게장 집에 갔습니다. 아이들은 간장게장을 처음 먹는 것이었는데도 너무너무 맛있어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밥을 두 그릇씩 먹었습니다.

송강호 다행입니다. <괴물> 이야기도 나눠볼까요. 소위 ‘다중 화법’이라고 하죠. 예를 들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처럼 다중 화법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한 사건을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게 <괴물>의 다중 화법이란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중 화법 구조 자체가 영화적 발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메시지를 적절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다중 화법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다음에도 영화를 할 때 이런 방식을 또 시도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가 굉장히 오랜만에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었는데요.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처음 플롯을 써서 주셨을 때부터 지금처럼 3부 구성이었습니다. 3부로 구성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점점 더 그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사건을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영화를 만들기 전에 글만 읽었을 뿐인데도 이야기에 의해 제 자신이 요동치고 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라는 게 이런 것이로구나, 인간은 신이 아니라 미물에 불과하구나’를 그때 느꼈습니다. 아마도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이 이야기의 연출을 제게 맡긴 가장 큰 이유가 제가 사람들을 많이 그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만큼 <괴물>이 지금까지 제가 만들어온 영화, 제가 써온 글들, 제가 창조한 세계관과 굉장히 가까운 이야기란 생각이 듭니다.

송강호 저도 동의합니다.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 세계를 제가 단정할 순 없지만, 그 깊이나 세계관을 이 <괴물>을 통해 깊게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건 여담인데 영화를 보면서 기키 기린 배우님이 살아 계셨다면 교장 역할을 맡으시지 않았을까. 다나카 유코 배우님도 너무나 훌륭하게 연기하셨지만 자꾸 기키 기린 배우님이 떠올랐습니다.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면 감동받을 대사가 하나 있는데요. 교장 선생님을 연기한 다나카 유코 배우의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라는 대사인데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사합니다. 제가 쓴 대사는 아니지만 그 대사가 제 마음도 울렸습니다.

송강호 교장 선생님이 그 대사와 함께 악기를 불잖아요. 저는 그 신이 정말 좋았어요. 그 악기 소리가 마치 내면에서 토해내지 못한 인물들의 울음같이 들리고 세상을 향한 외침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정말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송강호 소리도 인상적이었어요. “우~ 우~.” 마치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토해내지 못한 울음을 악기가 대신하고 교장 선생님이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니까, 저는 영화가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어요. (웃음) 컷! 하고 크레딧이 쫙 올라갈 줄 알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을 그렇게 끝내도 좋았겠네요. (웃음) 말씀하신 대로 그 장면이 클라이맥스이자 영화가 향해야 할 지점이라고 늘 생각하면서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연기한 다나카 유코 배우도 시나리오를 읽고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정확하게 느꼈고, 그래서 본인이 직접 현장에서 호른을 불어 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일반인이 호른을 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다나카 유코 배우가 1년6개월 전부터 호른 연습에 들어갔어요. 영화에 담긴 소리는 배우가 직접 악기를 불어서 낸 소리입니다.

송강호 저 같으면 “그럼 이 영화 안 할래요!”라고 했을 텐데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런데 송강호 배우가 계속해서 <괴물>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런 큰 대작이자 걸작인 <괴물>과 똑같은 제목의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해도 되려나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같은 제목이라서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꾸벅 인사한다.)

송강호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영화죠. 사실 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참 역설적인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 사회의 시선과 구조, 사회 내 척박한 감성 등등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 괴물이 아닐까. <괴물>은 이런 역설적인 물음을 던지는 제목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금 이 말씀을 반드시 예고편에 써주십시오! (웃음)

송강호 아~ 감동입니다. (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굉장히 기쁩니다. 제 영화가 가진 본질을 꿰뚫어보셨습니다.

송강호 <괴물>이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님의 유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세상을 향해 뛰어갈 때 찬란한 영혼의 자유를 찾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카메라도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지만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님의 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그 장면에서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님의 찬란한 영혼이 자유로워진 듯한 느낌까지 들더라고요.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은 특히 음악감독님의 음악을 감상하면 그의 깊이와 세계관, 그리고 그의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눈을 감고 끄덕이며 듣는다.)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의 <Aqua>와 빗물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이 올해 3월 세상을 떠나면서 <괴물>은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그리고 약 2개월이 흐른 뒤인 올해 5월 칸영화제에서 <괴물>이 공개되었다. 3부로 구성된 <괴물>은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도시의 화재 사건을 보여주며 각각의 이야기를 구분 짓고, 마지막 국면에 큰 비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장대비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 <라쇼몽>과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구성인 동시에 영화의 마지막 순간 흐르는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의 <Aqua>와 어울리는 엔딩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배우 송강호 <괴물>마스터스 토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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