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경계 없는 여정, ‘D.P.’ 시즌2, ‘악인전기’ 배나라
2023-12-28
글 : 조현나

“이런 포즈도 한번 해볼까요?”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망설임 없이 상황을 연출한다. 작품에서 보여준 예민하고 날 선 얼굴에서 벗어난 채 배나라는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시시각각으로 바꿔놓았다. 2013년 뮤지컬 <프라미스>를 시작으로 21편의 뮤지컬에 출연한 그는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2023년,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꿈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D.P.> 시즌2의 탈영병 장성민, <악인전기>에서 유성파 2인자 서도영(김영광)의 부하 권오재로서 화려한 드랙퀸의 무대와 묵직한 누아르의 지대 위를 자유로이 오갔다. 여러 차례 “경계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답한 배나라는 이미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내고 있다.

- 처음 방송에 얼굴을 비춘 건 음악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 시즌3에 출연했을 때다. 이후로도 꾸준히 무대에 올라 뮤지컬 배우의 길을 올곧게 걸어갈 사람으로 보였다.

= 정확하다. 처음엔 실용음악 공부를 먼저 시작했는데 보컬 선생님이 뮤지컬을 해보지 않겠냐고,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공연 영상들을 찾아보며 완전히 빠져들었고 대학도 뮤지컬연기과로 진학했다. 매체 연기에 관심이 없던 건 아니지만 내겐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괜히 기웃대다 전부 놓치느니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지난해 초에 <D.P.> 장성민 역의 오디션 제안이 들어왔다. 무척 놀랐지만 <D.P.>는… 놓칠 수 없었다. (웃음) 시청자로서 충격적일 만큼 재밌게 본 작품이었으니까.

- 장성민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 결핍덩어리로 보였다. 본인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을 거고 무대에 오르고 싶은데 군대에선 자신을 표현할 창구가 없으니 결국 무단이탈까지 감행한다. 감정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캐릭터라 몰입할수록 에너지가 가라앉았다. 그래서 촬영할 때마다 최대한 즐겁게 임하려고 애썼다.

- 갈수록 피폐해지는 장성민의 내면이 겉으로도 잘 드러났다. 특히 공항에서 도망치며 절규하는 신에 복합적인 감정이 담겼다.

= 그 피폐함을 표현하기 위해 총 10kg을 감량했다. 그중 4~5kg 정도를 촬영 중에 뺐고, 근육량도 줄이기 위해 6개월가량 근력 운동을 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신을 찍으려니 정말 힘들더라. 보디캠을 달고 달릴 때는 어떻게 하면 성민이의 괴로움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람이 절박하면 말도 잘 안 나오지 않나. 그리고 성민이는 욕도 제대로 못할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욕을 내지르는 대신 절규로 마무리지었다.

-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편 같다.

= 자극적인 표현을 할 경우 고민을 거듭할수록 전형적이지 않은 표현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할 때도 그런 식으로 캐릭터를 연구해왔다. 촬영장에 갈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대신 현장에선 완전히 내려놓는다.

- 무대에 오르는 태도와 비슷하게 들린다. 연습은 철저히 하되 무대에서는 그날의 공기에 완전히 녹아드는 식으로 많이들 임한다고 들었다.

= 그렇다. 그래야 진짜 살아 있는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배우는 끊임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직업이라는 걸 많이 느낀다.

- 극 중 뮤지컬 <헤드윅>의 넘버 <Wig in a Box> <Midnight Radio>를 불렀다. 나중에 <헤드윅>의 원작자 존 캐머런 미첼이 본인 SNS에 해당 영상을 게시하며 칭찬한 게 화제가 됐다.

=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이 <헤드윅>이다. <헤드윅>의 넘버를 부르며 뮤지컬 입시를 준비했을 정도다. 그런데 그 작품의 원작자가 나를 직접 태그해 칭찬하다니. 새벽 5시 즈음 소식을 확인하고 너무 떨려서 감독님께 바로 연락드린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 깊은 애정을 갖고 있던 노래를 데뷔한 지 10년차가 된 시점에 또 다른 시청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

- 곧이어 드라마 <악인전기>의 권오재 역으로 출연했다. 유성파 조직의 일원이지만 그렇다고 주먹으로 승부를 보는 유형은 아니다.

= 조직의 브레인을 맡고 있어서 그렇다. 워낙 충성심이 강해서 몇몇 액션 신을 제외하고는 서도영의 곁을 우직하게 지킨다. 누아르 장르를 좋아해서 권오재 역도 재밌게 촬영하긴 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좀더 동적인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다.

- <약한영웅 Class2>(가제)의 나백진 역에 캐스팅되지 않았나. 원작에서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만큼 보여줄 액션이 많을 것 같은데.

= 그래서 액션스쿨을 정말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액션 신을 찍어보니 다치지 않으려면 상대 배우와 합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더라. 그래서 앵글에 멋있게 담기면서도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는 동작을 익히는 중이다.

- 액션 신도 안무 외우듯 외운다고.

= 내게 익숙한 방식이어선지 그렇게 해야 동작이 빨리 외워진다. 춤추듯 액션을 해선 안되겠지만, 어떤 게 나백진에게 어울리는 움직임일지 다방면으로 시도해보고 있다.

- 뮤지컬 <쓰릴 미>를 비롯해 여러 작품의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서 장난치길 좋아하는 밝은 성격이란 인상을 받았다. 코미디나 로맨스 장르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 정말 많다! 요즘 들어 어두운 역할을 많이 하긴 했는데 가볍고 통통 튀는 캐릭터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멜로가 체질> 같은 성격의 작품들에 꼭 도전해보고 싶다. 아직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이 많다.

- 반면 노래 취향은 굉장히 감성적이다. 한 인터뷰에서 애창곡으로 동물원의 <혜화동>, 포지션의 , 양다일의 <사랑해도 될까요> 등을 언급했다.

= 내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추억 냄새’가 나는 음악들을 좋아한다. 가을이 됐을 때 듣는 음악, 여름이 됐을 때 듣는 음악, 여행 갈 때 듣는 음악 등이 다 정해져 있다.

- 여행 갈 땐 어떤 곡을 선곡하나.

= 아비치의 <The Nights>를 주로 듣는다. (곧바로 노래를 틀어주며) 어떤가. 바로 떠나고 싶어지지 않나? (웃음)

배우 배나라의 휴식법

하루나 이틀을 꽉 채워서 드라마나 영화를 몰아본다. 최근엔 <우리들의 블루스>와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정주행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많이 울고 웃게 하는 작품이었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를 위해 음식을 하고 맛있게 먹고 난 뒤의 만족감이 크다. 얼마 전 어묵탕을 처음 만들어봤고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 월남쌈을 자주 해먹는다. 라이스페이퍼에 두부와 계란을 넣은 뒤 스리라차소스에 찍어 먹는데, 다이어트 레시피치고 정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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