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태양이 뜬다’, 배우 이정하
2024-01-09
글 : 이유채
사진 : 오계옥

- <무빙> 다음 차기작이 MBC <쇼! 음악중심> MC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무대를 워낙 좋아해 음악방송 MC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제안이 들어와 무조건 한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항상 도전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공동 MC인 더 보이즈 영훈씨와 엔믹스 설윤씨와 함께 악뮤의 <Love Lee>를 MC 신고식 무대로 가졌는데 가수가 아니다 보니 연습실에서 매번 끝까지 남아 열심히 준비했다. 그럼에도 당일에 동선을 못 찾고 헤매서 아쉽긴 하지만 나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웃음)

- 한달 반가량 했는데 어떤가. 몇 개월간 수많은 엔지와 오케이를 거쳐 하나의 완성본을 만들어내는 매체 연기자에게 생방송 MC는 새로운 감각을 안겨줄 것 같은데.

= 생방송에서 말실수를 할까봐 항상 긴장 상태다. 하지만 매주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다음에 그걸 보완해나가는 과정이 재밌다. 성장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좋다. 오늘처럼 사진 촬영이 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가수들의 엔딩 포즈를 섭렵할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 아까 무대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했다. 무대가 좋아 배우가 된 건가.

= 중학생 때부터 체육대회든 어디든 무대가 열리면 자원해서 올라갔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공연에서 받은 관객들의 박수가 너무 좋았다. 10대 후반이 연기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배우로 꿈을 확실히 정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 <씨네21> 2023 올해의 시리즈 신인 남자배우로 선정됐을 때 나눈 인터뷰에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역시 예상치 못한 행보다.

=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익히고 그동안 내가 맡았던 캐릭터들을 새로 분석해서 연기해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선생님과 일대일로 진행하면서 한 단계씩 더 깊이 들어가는데 표현의 영역도 더 넓어지는 것 같고 부족한 점을 직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

- 캐릭터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유형의 배우인가.

= 캐릭터와 먼저 친해지려고 한다. 예컨대 친한 친구가 “밥 먹었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친하니까 어떤 식으로 말할지 안 봐도 알 수 있잖나. 그 정도로 예상 가능해질 때까지 계속 맡은 역할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뭔가가 나온다. 봉석이 특유의 뒤뚱뒤뚱하면서 뛰는 걸음걸이도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봉석이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찾게 된 행동이었다.

- <무빙> 이후 해사한 얼굴이 집중적으로 조명받았다. 그러니 오늘은 웃지 않는 얼굴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정하는 <런 온>에서 우식이 자신을 폭행하는 선배 선수를 똑바로 응시하는 장면과 <무빙>에서 봉석이 희수를 구하기 위해 둔촌스포츠센터 2층으로 곧장 날아가는 장면에서 보여줬듯 매서운 얼굴도 가진 배우다. 웃음기 빠진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생각하나.

= 표정 생각을 요즘 들어 가장 많이 하는데 질문으로 들으니 신기하다. 남들이 보기에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큰가 보다. 그냥 있을 땐 안 좋은 일 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렇게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있다. 어떤 표정이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긍정적인 봉석이에게서 힘을 많이 얻었다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을 보면서 힘든 시절을 극복해왔다. 그때 받은 고마운 것들을 돌려주기 위해 배우가 된 것도 있다.

- 데뷔 초 출연했던 <더 유닛> 생각도 난다. 성대결절 초기에 다리 부상을 입어 팀에 피해가 갈까 의기소침한 표정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 누군가를 이끌어주고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그때도 있었다. 그만큼 민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도 강했고.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불안한 표정이 나왔던 것 같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에서 위축되기보다는 당당하게 행동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 “언젠가 꽃을 피울 거라는” 어머니의 격려를 자주 언급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자 관계가 각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 엄마에게서 옛날 감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나 <소년시대>같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하고 싶다. 집에 턴테이블과 김광석 전집이 있고, 잔나비의 음악과 조용필의 <그 또한 내 삶인데>는 생각만 해도 좋다. 레트로한 <무빙> O.S.T는 지금 도 즐겨 듣는다. 예스러운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거기서 받은 영감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묻어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기분이 좋다.

- 2살 터울의 누나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여동생이 있다. 누나를 이겨먹으려는 동생이었나, 막냇동생을 지키려는 오빠였나. 아니면 설마 둘째 딸 같은존재였나. (웃음)

= 마지막이 아닐까. 일종의 중간자 역할이었다. 누나와 동생한테 각각 잘하고 둘이 싸우면 얘기 들어보고 한쪽 편을 들어주곤 했다. 둘 사이에서 리모컨의 선택권이 없는 시절을 거쳐 누아르보다는 디즈니를 좋아하는 영화 취향을 갖게 됐다. 인생 영화는 변함없이 <어바웃 타임>이고 <라따뚜이>와 <노트북>을 사랑한다.

- 올해 2월 첫 고정 예능 프로그램 <아파트 404>가 공개된다. 차기작은 영화 <빅토리>와 시리즈 <원: 하이스쿨 히어로즈>다.

= 드라마와 영화가 그랬듯 예능도 내게 많은 힘이 되어줬다. 이제는 직접 웃음을 주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다. <빅토리>에서는 세기말, 거제의 축구선수로 나온다. <원: 하이스쿨 히어로즈>에서는 하늘에서 싸웠던 <무빙>과 달리 땅에서 싸운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 칸영화제도 가고, 한국을 더욱더 세계에 알리는 국가대표 역할을 하고 싶다는 큰 포부가 있다. 그때까지 열심히 실력을 닦아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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