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토크]
[Masters’ Talk] <듄> 시리즈는 미래에 대한 역사적 탐구 같다고 느꼈다, 드니 빌뇌브 감독 x 김한민 감독
2024-01-12
글 : 배동미
사진 : 오계옥

드니 빌뇌브 어제 <명량>을 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었고 전투 가운데에서도 주인공과 친밀함이 유지되는 점이 감명 깊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한산: 용의 출현>도 보고 싶네요. 2023년 12월에 세 번째 영화 <노량>이 개봉(12월20일)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캐나다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보려고 합니다.

김한민 <명량>이 개봉한 지 10년이 돼가는데 그땐 기술이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절반은 바다에 배를 띄워 찍었고 절반은 크로마키를 사용해 VFX 기술을 이용해 촬영했죠. <듄> 시리즈처럼요. <명량>의 해전 설계가 쉽지는 않았어요. 해전이 61분에 달하는데 해전 속 캐릭터와 스토리를 관객이 따라갈 수 있도록,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도전이었어요. 사실 지금 고백하자면 영화를 편집하면서 ‘아, 영화가 망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드니 빌뇌브 (크게 웃으며) 항상 그렇잖아요? 언제나 실패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한민 그렇죠!

드니 빌뇌브 VFX로 해전을 표현하기란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시각효과로 물을 다루는 건 정말 까다로운 일이죠. 김한민 감독의 영화는 그걸 잘해냈다고 봐요.

김한민 할리우드 VFX 기술자들이 한국에 와 한국영화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난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역사적인 바다가 한국의 남쪽에 존재하니까요. 400여년 전 역사적인 해전이 벌어졌던 그 바다를 소스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거기서 벌어진 전쟁이 특이한데, 당시 조선 백성들이 해전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해전에서 진다면 관람하는 사람들이 다 위험에 처할 수 있었죠. 얼마나 절박했겠어요. 백성들이 좌절하고 극한의 두려움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용기가 모든 사람들의 용기가 됐어요. <듄>의 프레멘들처럼. 이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이고 사명감이었습니다. 다행히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고 전무후무한 관객수를 동원했어요(<명량>의 총관객수는 1761만여명이다.-편집자). 그런데 <노량>의 해전은 더 길어요. 100분인데 지금도 작업하다가 감독님을 만나기 위해 왔어요. 사막 행성에서 펼쳐지는 <듄>과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역사적인 인물을 다룬 <노량> 사이에 묘한 연대감과 공감이 있어요.

드니 빌뇌브 김한민 감독처럼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경우 분명히 책임이 있죠. 저는 SF를 만들기 때문에 좀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픽션을 바탕으로 하니까요. 같은 감독으로서 김한민 감독이 굉장히 용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국민적 영웅을 영화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도전적인 일인지 같은 감독으로서 이해하거든요.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둘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시각효과의 강력한 협력자는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 로케이션을 촬영하려 하고 가능한 한 자연을 담아내려고 합니다. <듄> 시리즈가 픽션이지만 빛에 예민한 편이고, 특히 자연의 빛을 담으려고 하죠(<듄: 파트2>의 사막 신은 요르단과 아랍에미리트에서 촬영됐다.-편집자). <명량>을 보면서 김한민 감독이 저와 비슷한 노력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시각효과에 실제 바다를 소스로 활용했기 때문에 해전 신에서 바다를 느낄 수 있었고 바다가 그 자체로 캐릭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구원의 영감이 깃든 사막

김한민 우주 공간이 아니라 사막에서의 SF. 감독으로서 도전하기 너무나 바라는 일이죠. 전생을 믿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드니 빌뇌브 감독이 전생에 사막과 어떤 운명적인 끈이나 인연이 있어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었을까 생각해요. 조금 전 <듄: 파트2>의 푸티지를 봤지만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듄>이란 서사는 SF지만 지구의 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해요. 민주, 자유, 독재, 권위가 대결하는 영화의 주제도 영화감독으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에요.

드니 빌뇌브 <듄>과 <듄: 파트2>를 만들면서 <듄> 시리즈는 SF보다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역사적 탐구 같다고 느꼈습니다. 원작 소설을 보면 우리의 현실에 근간을 두고 있거든요. 그래서 무척 흥미롭죠. 제 임무는 원작인 프랭크 허버트 소설의 정신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책 <듄의 메시아>를 읽으면 원작의 모든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듄: 파트2>에서 시리즈가 그리는 메시지의 완성도가 조금 더 올라갑니다.

김한민 사막이나 바다는 인간에게 중요한 구원의 영감을 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것도 인연인데, 제가 예전에 대기업에 다니다 관두려고 할 때 대여해서 본 책이 <듄>이었어요. 1997년의 일이에요. 그때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소설이 보여준 멋진 비주얼과 캐릭터, 그리고 메시지를 빌뇌브 감독이 영화화한다고 발표했을 때 정말 기대되고 굉장한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빌뇌브 감독의 전작 <콘택트>를 흥미롭게 봤거든요. 그러고 보니 감독님의 영화는 늘 구원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 듯해요. 혹시 독실한 크리스천이신가요? (웃음)

드니 빌뇌브 아닙니다. 제 본능은 자연을 따릅니다. 저는 자연의 일부로 태어났죠. 자연과 과학이 제 종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듄>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듄>의 원작을 보면 종교의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고찰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김한민 사실은 크리스천이라고 물어봤던 건 농담 섞인 질문이었 고, 아닐 거라고 100% 확신했죠. (웃음)

드니 빌뇌브 제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면 어쩌시려고요! (웃음)

김한민 빌뇌브 감독의 정신세계는 지구 역사로 볼 때 중요한 지점 같아요. 지금까지 우리는 종교의 시대를 살아왔죠. 빌뇌브 감독은 제2의 르네상스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잘 포착하는 연출자예요. <듄>의 세 번째 영화는 부제도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메시아’인데요. 인류가 결국 메시아를 필요로 하고 메시아를 갈구하는 내용인가요? 파트3에 대해서도 살짝 설명해줄 수 있나요.

드니 빌뇌브 김한민 감독은 이미 세편을 완성한 상황인데 그건 불공평해요! 아직 각본 작업 중이라 많은 얘기를 해드리긴 어렵습니다. 김한민 감독님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각본을 쓸 때 저는 굉장히 방어적인 편이에요. 영화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잖아요.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것 같아 아직은 내용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김한민 3편까지 시나리오가 다 나왔고 촬영을 앞두거나 촬영하고 있지 않나 싶었는데 아니군요.

드니 빌뇌브 <듄: 파트2> 작업이 몇주 전에 끝났습니다. 일정이 굉장히 빡빡했어요. 저희는 영화를 빨리 개봉하길 원했고 <듄: 파트2>에 100% 전념하는 것 외에 다른 작업을 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듄: 파트2>가 완성됐죠. 이제부터 속편 각본 작업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겠네요. 김한민 감독님은 10년 이상 이순신 장군, 일본과 해전을 치르는 이야기와 보내왔을 텐데 세편의 영화에서 우리는 같은 캐릭터를 따라가죠? 2부와 3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김한민 맞습니다. 하지만 해전 특색에 맞게끔 이순신 장군을 맡은 배우들이 다 다릅니다.

드니 빌뇌브 굉장히 과감한 결정이네요!

김한민 각각의 해전에 맞게끔 또는 각각의 시기에 맞게끔 나이 든 이순신, 좀더 젊은 이순신을 표현했어요.

드니 빌뇌브 와우!

김한민 <노량>에서는 한국에서 중요도가 있는 멋진 배우가 세 번째 주인공을 맡았고,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시는 이야기입니다. 도망치는 적들을 막아서고 싸우는 이야기와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던지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노량>은 마지막 전투이면서 가장 큰 스케일의 전투가 벌어지는 영화예요. 밤 전투로 시작해 다음날 오전까지의 전투를 다룹니다.

드니 빌뇌브 정말 도전적인 시도네요.

김한민 그래서 제가 지금 목덜미가 아프고(목덜미를 잡으며 웃는다) 빌뇌브 감독만 아니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텐데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이라 나왔습니다.

드니 빌뇌브 <명량>에서 최민식 배우가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내면적이면서도 금욕적인 모습이었고 배우가 표현한 캐릭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편의 배우를 바꿨다는 건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뛰어난 발상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실존 인물의 전기를 그려내는 작업에 임하는 감독님만의 정직한 태도 같군요. 역사를 다루는 감독으로 각편에 다른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이것은 픽션이고,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구현한 게 아니라는 점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거죠. 대상과 거리를 두고 감독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만들면서요. 정말 뛰어난 발상입니다.

사막과 바다 이후의 행보

드니 빌뇌브 저희의 다음 행보에 관해 말하자면, 둘 다 계속 영화를 연출하고 있겠죠. 김한민 감독의 영화 <노량>이 개봉하고 제 영화 <듄: 파트2>는 두달 반 뒤에 개봉합니다. 저는 현재 네개의 각본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혼자가 아니라 시나리오작가들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들이 각기 다른 단계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를 차기작으로 할지 고민 중입니다. <듄>의 세 번째 영화가 바로 다음편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아라키스로 돌아가기 전에 다른 작업을 하는 것이 저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어요. 사막에서 빠져나와서 다른 작업을 할까 합니다.

김한민 일단 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너무 바쁘게 일하시는 것 같은데.

드니 빌뇌브 6개월간 쉬고 싶었는데 휴가를 딱 6일만 주더라고요. (웃음)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김한민 퀘벡인가요? 미국에선가요?

드니 빌뇌브 눈 덮인 퀘벡에서요.

김한민 저는 캐나다에 안 가봤는데 가게 되면 꼭 감독님을 뵙고 싶습니다.

드니 빌뇌브 캐나다에 오시면 꼭 저에게 전화주세요.

김한민 저야말로 다음 영화는 SF가 될 것 같아요. 안드로이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전작인 <최종병기 활>은 활들의 전쟁에 관한 얘기인데, 그런 패턴과 스타일의 SF를 만들고 싶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저도 각본 작업 중이라 자세히 설명해드릴 순 없지만 감독님과 앞으로 좋은 인연으로 감독과 감독으로서, 사람과 사람으로서 좋은 대화를 나눠갈 수 있는 인연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드니 빌뇌브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개봉하는 영화 <노량>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