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인터뷰] 서스펜스도 즐거움도 충만한, 옴니버스영화 <더 킬러스>(가제)의 감독들
2024-01-12
글 : 배동미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살인자들>을 읽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나.

이명세 “헨리네 식당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 밖은 어두워지고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소설의 초반 몇줄을 읽으며 시각적 상상력에 불이 켜졌다.

장항준 처음 읽을 때 ‘쓰다 말았나?’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었다. 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인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추리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노덕 유머러스했다. 카페를 찾아온 청부업자들의 느긋함과 거만함, 카페에서 일하는 이들과 손님이 느끼는 의아함과 불안감 등 상반된 감정이 눈에 들어왔다. 누아르 속 우수에 젖은 검은 양복의 킬러가 아니라 서부극의 총잡이 같은 살인 청부업자들에게 흥미를 느꼈고 세공되지 않고 살짝 무식해 보이는 캐릭터도 재밌었다.

윤유경 소설 초중반이 캐릭터와 서스펜스로 구축됐다면, 후반은 허무주의가 스며든 심연 같았다. 그러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속 펍이 우주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이런 분위기와 구성을 모티브로 킬러들과 함께 우주로 가면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다.

- 각각의 작품이 개별적이지만 하나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명세 각자 개별적인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관통되는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의견에서, 각자 시나리오를 쓰되 원작 고유의 분위기를 지키고 시나리오를 공유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면 내가 만든 <무성영화>는 장항준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의 시대적 배경을 이어서 쓴 것이다.

김종관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를 공유하면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형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심은경 배우가 전체 스토리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아 옴니버스의 재미를 만들기로 하면서 지금의 형식을 갖추게 됐다.

- 각자 영화의 특징을 소개한다면.

이명세 내 영화의 제목은 <무성영화>다. 움직이는 이미지와 소리가 영화예술이라고 말한 로베르 브레송의 영상언어에 다가가려 했다.

장항준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1979년을 배경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일을 배경으로 설정했다. 그 시대의 절대자와 악당들이 있고, 그 시대를 새롭게 이끌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상상하며 연출했다.

노덕 킬러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표적에게 접근하지만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하는 소설 속 코미디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몇번의 수정 끝에 청부살인이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다 의도치 않은 소동을 만들어낸다는 지금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리고 영화에 이명세 감독에 대한 헌사를 심고자 <개그맨>을 오마주해 주요 인물을 삼인조로 설정하고 이름을 따왔다.

조성환 <인져리 타임>은 밝으면서도 어두침침한, 그러다 또 조금 밝아지는. 바닥에 착 붙지 못하고 조금은 붕 떠다니는 작품이다.

윤유경 초중반의 서스펜스는 우주 미아가 돼 먹먹한 우주 속을 오래도록 유영하면서도 살아가는 노장 킬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온 ‘팩트 폭격’ 신입 킬러간의 대결이다. ‘우주선에 이런 술집 하나쯤 있지 않을까?’ 농담처럼 떠오른 질문으로 공간을 상상하면서, 그 공간이 <나이트호크>의 고독에 닿을 수 있길 바랐다. 수많은 기억과 지나간 사람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우주선을 만들고 싶었다.

- 마지막으로 작품을 보게 될 관객이 어떤 감정과 메시지를 느끼길 기대하나.

장항준 시대적 분위기와 한정된 공간이 주는 27분의 긴장감을 기대하길 바란다.

노덕 <업자들>은 사회물이자 코미디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피식 웃었으면 좋겠다.

김종관 그동안 내가 시도하지 않은 장르에 도전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나 역시 궁금하다.

윤유경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는 척박한 토양에 씨앗 하나를 심어보려는 고군분투기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죽음을 손에 쥔 킬러들이지만 애잔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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