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발레리나인 엘리즈(마리옹 바르보)는 26살 젊은 나이에 발레 <라 바야데르>의 주연으로 발탁된 유망주다. 이 무대만 잘 소화하면 그녀는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다. 그러나 대망의 첫 공연이 열리는 날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불운이 연달아 닥친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같은 발레단의 발레리노이자 남자친구인 줄리앙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목격하고, 설상가상으로 무대에서 왼쪽 발목을 접질리기까지 한다. 그녀는 의사로부터 재활에 실패하면 발레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평생 발레에 전념한 그녀는 자신의 꿈을 되찾으려 파리 근교의 브르타뉴로 내려가 재활에 전념하기로 한다. 그녀는 그곳의 아티스트 레지던스에서 일하며 새로운 인연을 하나둘씩 만난다. 그녀는 레지던스에 머무르는 현대무용단의 자유분방한 춤사위에 매혹돼 발레보다 현대무용이 자신에게 더 어울린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8)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세드리크 클라피슈의 신작이다. 한국에서는 제7회 서울무용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감독은 20년 전부터 무용에 관련된 극영화를 찍으려는 열망을 내비쳐왔다. 그 열망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 화려한 무용 시퀀스에 여실히 드러난다. 각각 10분 가까이 되는 발레와 현대무용 시퀀스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서사도 이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전작에서부터 인물의 일상사를 담백한 화법으로 풀어낸 감독의 장기가 돋보인다. 언뜻 보기에 청춘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듯하지만 과잉된 연출을 배제해 관객이 엘리즈의 정신적인 성장을 차분하게 따라가도록 여백을 남겨두었다. 영화는 엘리즈가 주조연이 정해져 있는 발레의 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무용수가 주인공인 현대무용의 세계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정갈하게 그려내면서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다. 영화의 원제대로 ‘En Corps’(우리 함께)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발레리나 마리옹 바르보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며 현대무용가 호페시 셰히터의 안무는 영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끌어올린다. 다프트 펑크 출신 뮤지션 토마스 방갈테르의 음악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