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이야기 책임지기, ‘선산’ 기획 연상호
2024-01-25
글 : 정재현

그동안 연상호 감독이 만들어온 이야기는 ‘가족 드라마’라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부산행>과 <염력>의 주인공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였고, <반도>와 <정이>의 센티멘털은 모녀 관계에서 비롯했으며 <괴이>의 출발은 두 가족 이야기였다. 제목부터 짐작 가능하듯 <선산> 역시 연상호의 가족 드라마다. 다만 전작들과 달리 <선산>은 연상호가 최초로 만든 “가족 자체가 주제”인 이야기다. “한국의 가족엔 양가적 속성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집안의 선산 때문에 가족끼리 싸움이 났다는 이야길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은 언제나 안정된 사랑만을 선사한다’는 사고도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에 공존한다. <선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가족에 관한 사연을 안고 산다. 그런데 이들의 욕망과 동인은 기묘한 가족사가 기저에 작용해 일반적이지 않다.” 가족 이야기 외에도 <선산>엔 연상호의 흔적이 가득 묻어난다. 드라마 <방법>에 이어 연상호는 이야기에 무속 신앙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결국 신앙도 가족도 개인의 자아에 원초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하지 않냐는 질문에 연상호는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종교 이야기를 서브플롯으로 깔아두는 까닭을 들려주었다. “인간이 예상을 빗나가는 행동을 할 때는 종교, 이데올로기, 가족이 원인이다. <선산>을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설정한 후 가족과 가장 유사한 기제를 가진 소재를 생각해보니 결국 종교였고, 그중 작품의 무드와 어울리는 종교가 무속 신앙이었다.” 가족과 종교에 관한 한국인의 비뚤어진 욕망이 투입되며 <선산>은 연상호의 어떤 이야기보다 어두워졌다. 그가 늘 은유적으로 묘사했던 한국 사회의 퀴퀴한 카르텔도 훨씬 침울하고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한국의 공동체 중 카르텔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을까. 어떤 공동체든 폐쇄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 이야기 속 캐릭터들은 늘 폐쇄적 공동체 안에서 탈출구를 희구하다 보니 자꾸만 가족이나 종교에 더 기대하고 싶어 한다.”

연상호 감독은 <선산>에서 총 3개의 크레딧을 차지한다. 각본, 원안 그리고 기획이다. 연상호는 “각본 이상의 책임을 느꼈다”고 밝히며 아직 낯선 직책인 기획자의 기능을 설명했다. “<선산>이전에도 각본을 내가 쓰고 다른 감독이 연출한 <방법> <방법: 재차의> <괴이>가 있었다. 그때까진 각본을 내가 썼어도 감독으로서의 전권은 연출자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넘어 포스트프로덕션 단계까지 내가 만든 이야기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산>이 각본가를 넘어 ‘기획자’로 함께한 첫 사례가 됐다. 해외의 쇼러너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민홍남 감독 겸 작가, 황은영 작가와 <선산>의 각본을 쓴 연상호는 공동 집필 과정을 서부영화의 매캐한 먼지에 비유했다. “셋이 작업실에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론을 했다. 한명이 토론 내용을 대본화하면 다른 두 사람이 수정을 본 후 다시 토론을 이어갔다. 서부영화를 보면 먼지들이 구르며 뭉쳐 큰 공이 되지 않나. 무(無)의 상태에서 셋이 각자 먼지를 만든 후 어떻게든 구의 형체를 갖추려 열심히 먼지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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