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에 이어 에미상까지, 지금 <성난 사람들>은 부지런히 ‘빛의 형상’을 받드는 중이다. 놀라운 결과인 동시에 예견된 결실이다. 도로 위 아시아계 남녀의 충돌로 시작하는 이 10부작 넷플릭스 시리즈는 지난해 4월 공개 직후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줄곧 회자됐다. 시청자들은 독한 코미디를 구사하면서도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성난 사람들>만의 화법에 주목했다. 작품의 겉과 속을 두루 챙긴 쇼러너이자 실제 경험으로부터 <성난 사람들>을 길어 올린 작가 겸 감독 이성진에 대한 궁금증을 동반한 채 말이다. 이성진 감독은 몇편의 TV시리즈에 각본가로 참여한 경력 외에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이에 <씨네21>은 ‘LG OLED, 영화감독을 만나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에게 대화를 청했다. 압도적인 명암비와 완벽한 블랙 구현으로 인정받아온 LG OLED TV는 후반작업은 물론 영상 품질 참조용 디스플레이로 널리 활용되는 기기다. 집에서도 LG OLED를 사용 중이라는 이성진 감독은 잠시 한국을 찾은 어느 겨울날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어워즈 시즌을 맞아 <성난 사람들>의 행보를 돌아보며, 이성진 감독이 전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덧붙인다. 그의 목소리는 <씨네21> 유튜브 채널과 레터박스 내 LG OLED 무비 클럽(https://letterboxd.com/lgoled)에서도 들을 수 있다.
<성난 사람들>의 마지막 에피소드.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는 지피에스(GPS) 신호도 잡히지 않는 수풀에 떨어진다. 서로를 향해 이글거리던 눈에 힘이 풀리고, 그 눈이 박힌 얼굴은 흙빛이 되고 만다. 좋은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공유하지 않을 듯했던 두 사람이 햇볕 아래서 식량을 나눈다. 자칭 식물 전문가인 에이미에게 자줏빛 열매 몇알을 건네받은 대니가 입을 연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저런 선택을 하다가 정신이 들어보니 여기네.” 에이미는 건조하게 응수한다. “요약 죽인다!”
공교롭게도 2023년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인 <성난 사람들>이 당도한 ‘여기’는 어느 때보다 반짝거린다. 미국 현지 시간 기준으로 1월15일,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3관왕(TV미니시리즈 및 영화 부문 작품상·남우주연상(스티븐 연)·여우주연상(앨리 웡))을 차지한 지 일주일 만에 제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에서 총 5번(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감독상(이성진)·각본상(이성진)) 호명된 이 드라마가 이제껏 들어올린 트로피만 36개에 달한다. 메인 무대에 앞서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에서 캐스팅상·의상상·편집상을 받은 것까지 포함하면 에미상에서만 8관왕에 등극한 셈이다. 이 밖에도 크리틱스초이스어워즈, 고담어워즈 등이 <성난 사람들>에 왕관을 씌웠으며, 2월 말 개최되는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의 선전도 기대해볼 만하다.
긴 성취의 목록부터 적어내린 게 못내 민망한 까닭은 <성난 사람들>에 새겨진 존재들의 면면 때문이다. 대니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작정으로 숯불 그릴을 사는 남자다. 자수성가한 에이미는 대니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그럴싸한 가정까지 꾸렸지만 공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한다. 권총으로 자위하는 노력도 순간일 뿐이다. 극 초반, 우연히 LA의 길 한복판에서 맞붙은 이들은 작품 제목이 될 수도 있었다는 표현 ‘눈에는 눈’ (Eye for an Eye)을 재현한다. 동아시아계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은 신경증적 면모를 몇화에 걸쳐 내뿜으면서. 그렇게 분노로 각자의 불안을 감춰온 남녀의 돌연한 만남은 특유의 블랙유머를 등에 업고 내밀한 심리 탐구로 전진한다. 40분이 채 안되는 열개 에피소드에 걸쳐 들려오는 건 병들었음에도 아픈 줄 몰랐던 인물들의 신음. 그 소리는 인종적 공감대와 젠더에 따른 이해를 구축하면서도 현대인의 심경을 겨냥해 수많은 시청자와 공명했다.
이를 가능케 한 크리에이터 이성진은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 <투 브로크 걸스> <실리콘 밸리> 그리고 애니메이션 시리즈 <투카 앤 버티>에 작가로 참여하며 내공을 쌓아왔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지금은 굳이 미국인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지난해 8월16일 국제방송영상마켓에 연사로 참여한 이성진 감독의 한마디다. 그는 에미상 감독상을 안으며 통장이 마이너스였던 지난날을 회고한 데 이어 작품상 수상 소감을 통해 주인공들의 자살 충동이 과거 자신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인간은 어둠을 의식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 이성진 감독이 <성난 사람들>을 기획하며 되새겼다는 칼 융의 격언은 어쩌면 대니와 에이미가 대변하는 감독 자신의 내적 여정에 대한 ‘죽이는 요약’과 같다.
그가 LG OLED TV로 다시 보기를 권한 장면도 명암과 관련이 있다. 9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조던(마리아 벨로)의 패닉룸은 안개에 휩싸인 채 붉어진다. 핏빛 적막을 잇는 야간 시퀀스를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필요한 건 “진정한 블랙.” 이성진 감독은 자연 경관을 배경 삼은 10화 또한 LG OLED로 감상해볼 것을 추천했다. “LG OLED TV는 컬러 손실이 없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하다. 연출자가 의도한 이미지를 정확하게 볼 수 있어 좋다.” OLED 기술이 제공하는 리얼 컬러와 퍼펙트 블랙, 그리고 무한 명암비 구현이 빛을 발하는 신들이 <성난 사람들>의 피날레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성진 감독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성난 사람들>을 세 시즌까지 구상해뒀다고 밝혔지만 제작사 A24와 넷플릭스는 다음을 기약하진 않았다. 대신 이성진 감독은 제이크 슈레이어가 연출을 맡은 마블 신작 영화 <선더볼츠>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그가 그늘 속에서 거둔 성찰은 이제 LA 도로를 거쳐 우주 공간으로 퍼지고 있다. 즉 <성난 사람들> 시즌2는 아직 이성진의 머릿속에만 머물고 있다. 어설프게나마 포옹을 나눈 대니와 에이미는 새 에피소드로 잠에서 깰 수 있을까? 그 아침을 상상하는 것은 당분간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