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나를 새롭게 발견한 시기에 들어서다, <피라미드 게임> 김지연
2024-03-05
글 : 이유채
사진 : 오계옥

배우 김지연의 시작을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의 고유림으로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그는 2016년 우주소녀의 보나로 데뷔한 바로 그다음해에 드라마 <최고의 한방>으로 배우 신고식을 치렀다. <오! 삼광빌라> <조선변호사> 등 넘치는 승부욕과 성실함으로 자기 자신과 싸워가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갔고 연약해 보여도 대단히 심지가 굳은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이윽고 배우 데뷔 8년차에 드디어 작품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까지 쟁취해냈다.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에서 김지연은 백연여고 2학년5반에 전학 온 고2 성수지 역을 맡았다. 반에서 수지는 투표로 왕따를 뽑는 ‘피라미드 게임’에서 최하위 F등급을 받아 폭력에 시달린다. 왕따 탈출뿐만 아니라 게임의 주동자를 찾아내 이 기괴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피라미드 게임>의 성수지는 단순한 복수의 화신도 영웅도 아니다. 성수지의 복잡다단한 면모는 앞으로 이 반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성수지라는 쉽지 않은 캐릭터에 피와 살을 돌게 한 배우 김지연에게 직접 물었다.

-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후 오랜만에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돌아왔다. 다시 교복을 입게 한 <피라미드 게임>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신선함이 컸고 몰입도가 있었다. 지난해 상반기 <조선변호사>란 사극을 찍던 때에 대본을 처음 받았는데, 새벽에 지방 촬영 끝나고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4부까지 내리 다 읽을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똑똑하고 주체적이라는 게 좋았다. 여자주인공이 위기에 빠졌다고 해서 왕자님이 데리러 오지 않고, 결국 혼자 끝까지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선뜻 하겠다는 얘기는 안 나왔다. ‘수지라는 캐릭터에 내가 과연 잘 어울릴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소연 감독님과 최수이 작가님이 “수지로 염두에 둔 배우가 지연씨 말고는 없었어요”라며 지지해주셨다. 그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 크레딧에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는 큰 역할에 동급생 역할인 동료 배우들이 대부분 신인인지라 부담도 컸을 것 같다.

= 이렇게까지 비중 있는 역할도, 현장에서 ‘언니’인 적도 처음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자신에게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촬영 초반에는 폐만 끼치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감독님이 “지연씨가 여러모로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얘길 듣고 나서야 이번 현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잘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동료 배우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모두를 끌어나갈 방법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 피라미드 게임이란 설정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진입장벽이긴 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제일 먼저 의논했던 부분도 설정에 관한 것이었다. 시청자가 피라미드 게임을 납득하도록 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설정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피라미드 게임>은 도대체 이 게임을 다들 왜 하는지 궁금해하는 수지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그가 느끼는 혼란한 감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수지가 속으로 하는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내레이션이 이 시리즈의 형식이다. 내레이션이 낯선 이야기에 진입한 시청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다가 분량도 상당해 힘들었겠다.

= 그렇다. 초반에 진짜 어려웠다. 예컨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의 내레이션을 할 때 실제 맞는 것처럼 숨을 헐떡이면서 해야 할지 아니면 어디까지나 마음의 소리이니 평온한 톤으로 가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별수 있나. 잘 모르겠더라도 계속 해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익숙해질수록 감이 생겼다. 밝을 필요가 없는 역할이니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고 본래의 낮은 톤을 살렸다. 이야기의 무게를 생각해서 의식적으로 힘 있게 말하려고 했다.

- 생활기록부상에 따르면 수지는 ‘상호의존성이 매우 낮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소녀다. 김지연 배우는 수지를 어떻게 해석했나.

= 착할 때도 나쁠 때도 있고, 정의로운 동시에 이기적이기도 한 친구. 다시 말해 수지는 단편적이지 않고 사람의 다양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봤다. 그래서 어느 한면만 부각하는 일이 없도록 톤 조절에 신경 썼고 감정도 되도록 덜어내고자 했다. 외로움에서 비롯한 자립심이 강한 인물이라고도 생각했다.

- 수지가 어디까지 올라가서 자기 계획을 실행할지를 지켜보는 게 이 시리즈의 묘미가 될 것 같다.

= 그렇다. 아직 작품 공개 전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두뇌 싸움이 벌어질 거다. 수지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전체가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으면서 각종 관계가 생겨나는데 그걸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비록 나는 그 관계성을 다 파악하느라 머리가 아팠지만 말이다. (웃음)

- 지난 2월25일이 연예계 데뷔 8주년이었더라. 가수로, 배우로 활동하며 보냈던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어떤가. 앞으로의 자신에 대한 어떠한 기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 진짜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앞만 보면서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야 그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긴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일할 때와 안 할 때를 구별 짓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배우로서는 이제껏 해보지 않은 재난영화 같은 장르물이나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말과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앞을 계획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미래의 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즐겁게 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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