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의 얼굴과 손, 교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채 맨 뒷자리에 엎드려 있는 아이. 전학생 수지(김지연)는 그런 자은을 보자마자 ‘일진’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자은의 상처는 백연여고 2학년5반에서 치러지는 ‘피라미드 게임’에서 득표하지 못해 왕따가 된 후 하린(장다아)의 꾸준한 괴롭힘까지 더해져 생겨난 것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수진은 자은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자은 역시 수진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배우 류다인의 명자은에겐 <피라미드 게임>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이 쏟아졌다. “자은을 너무 사랑한” 신인배우 류다인은 <18 어게인>의 황영선과 <일타 스캔들>의 장단지를 넘어 명자은이라는 새로운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 원작 웹툰의 팬이었다고.
= 달꼬냑 작가님의 그림체를 원래 좋아했고 무엇보다 게임과 학교폭력을 연결지은 스토리 자체가 신박하게 느껴졌다. 결제해가며 볼 정도로 재밌게 봤는데, 어느 날 이 작품이 드라마화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혼자 상상해봤다. 내가 만약 여기에 출연한다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명자은이 마음에 들어왔다.
- 원작을 읽었으니 시나리오에서 각색된 점도 더 눈에 들어왔겠다.
= 초반 내용은 웹툰과 유사한데 갈수록 새로운 사건, 사고가 추가된다. 반 친구들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는 게 납득도 되고 흥미로웠다. 후반부 대본 언제 나오냐고, 어떻게 되는지 너무 궁금하다고 제일 많이 재촉한 사람이 아마 나일 거다. (웃음)
- 명자은의 어떤 점에 마음이 갔나.= 솔직히 처음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이라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볼수록 자은이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게임에서 한표도 받지 못해 F등급이자 왕따로 낙인 찍힌 인물이지 않나. 타의에 의해 그런 상황에 놓인 것 같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그저 자기 마음 편한 길을 택한 거다. 내가 이 상황을 거부하면 결국 다른 친구가 타깃이 되기 때문에 그 상황을 지켜보느니 그냥 자기가 다치고 말겠다고 결정해버린 거다. 그런 방식으로 수지가 전학 오기 전까진 유일하게 피라미드 게임에 저항해온 사람이다. 내 해석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이 자은이가 안쓰럽다고들 말할 때 ‘정말 그런가?’ 하고 스스로 반문했다. 내겐 너무 단단하고 올곧은 소나무 같은 사람이었거든. (웃음) 그래서 자은이가 마냥 착하고 불쌍하게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 공개된 4화까지는 이런 속사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은이가 표정 변화도 적고 말도 없어 배우로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맞다. 워낙 차분하고 말이 없어 내가 어떻게 연기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처음엔 이 캐릭터로 10화까지 가는 게 걱정이 됐는데 내가 해내기만 한다면 배우로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감정 표현이 크지 않기 때문에 대신 메마르고 버석한 눈빛에 사연을 담는 데에 집중했다.
- 자은은 수지랑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외형에도 변화가 생긴다. 배우가 의견을 낸 부분이 많았다던데.
= 초반에는 일부러 손톱 정리를 잘 하지 않고 직접 물어뜯기도 했다. 자은이의 감정 상태를 고려하면 그런 흐트러진 모습이 더 맞는 것 같았다.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고 톤다운하거나 다크서클을 강조하는 정도로만 하고, 얼굴이 더 푸석해 보이도록 했다. 자은이에게서 컬러를 다 빼버리고 싶었다. 항상 걸치는 후드 집업도 블랙 컬러인데 이게 그레이 컬러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자은이의 감정 변화가 반영된 것인데, 그 순간을 잘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 앞서 화보 촬영을 진행했을 때 조금도 긴장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14살 때부터 6년간 모델로 일했다고. 어릴 때 꿈은 모델이었나.
= 그건 아니다. 원래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10cm가 컸다. 그러면서 자세가 구부정해지니까 보다 못한 엄마가 자세 교정 좀 하라고 모델 학원에 보내셨다. 그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잘할 수 있었고, 매 순간이 즐거웠다.
- 모델로서 커리어를 잘 쌓아오다 갑작스레 배우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
= 적어도 내겐 갑작스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꿈이 배우였기 때문이다. 장래희망을 써서 내라고 하면 항상 ‘탤런트’를 적었다.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갈 무렵 광고도 찍고 런웨이에도 서고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가 계속 허전했다. ‘내가 서고 싶은 무대는, 내가 바라보고 싶은 카메라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모델과 배우를 병행해선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서 과감하게 모델 일을 포기했다. 그렇게 21살 때 <18 어게인>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데뷔했다. 막상 해보니 모델 일과 비슷한 점도 많더라. 카메라 앞에선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뒤에서는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피라미드 게임>의 촬영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제작발표회 날, 시사회에 참석해 작품을 보는데 정말 모든 걸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을 위해 연기하는 거구나 싶었다.
- <18 어게인> <일타 스캔들> <피라미드 게임>에 연달아 학생 신분으로 출연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많을 텐데.
= 보면서 공감하고 슬퍼할 수 있는, 휴머니즘 가득한 로맨스물에 출연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꼭 진한 누아르를 해보고 싶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복싱 등 다양한 운동을 하고 춤도 배우며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