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영상 콘텐츠 제작사 하이그라운드의 출발은 2014년 씨스토리에서 시작된다. 하이그라운드는 TV조선 드라마 <최고의 결혼>을 시작으로 임성한 작가의 <결혼작사 이혼작곡> 시즌2·3, <아씨두리안>을 공동 제작하는 데 나섰다. 스튜디오로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하이그라운드는 (2023년 기준) 21개의 드라마 작품을 완성하고, 종편 드라마 최고시청률 3위에 달하는 성과를 올렸다(<결혼작사 이혼작곡> 시즌2, 16.6%). 웹툰, 웹소설 등 장르 불문하고 잠재력 있는 IP를 발굴하고 확보하는 데 공력을 들인 하이그라운드는 익숙한 곳에 머물기보다 도전하기를 선택한다. 신인 작가들과 함께 자체 콘텐츠 기획·개발에 나서고 신작 영화 투자 및 공동 제작으로 활로를 넓혔다. 그 결과 2030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은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드라마화를 결정하고, 지난 겨울 누적 관객수 1천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서울의 봄>으로 성공적인 투자 경험을 쌓기도 했다. 김환철 하이그라운드 대표는 CJ CGV 전략기획담당이자 X스크린팀 팀장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청자와 관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안정적인 거대 규모의 제작사와 개성 넘치는 1인 제작사 사이에서 고유의 전략을 찾아나선 하이그라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하이그라운드는 설립 이래 올해 최다 라인업을 선보였다. 영화·시리즈 시장의 위축이 예년보다 두드러지는 지금, 다소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영화·드라마 시장의 위기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하이그라운드와 같은 중견급 제작사는 명확한 목표를 두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5년 뒤, 10년 뒤 목표를 제대로 거두기 위해서는 지금 그 토대를 마련해놔야 한다. 씨를 잘 뿌려야 열매도 맺을 수 있지 않나. 위기라고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근미래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라인업을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또 내수시장에서는 경제난이 거론되지만 글로벌시장에서는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 모멘텀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놓쳐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기획·개발한 작품들이 방송국 혹은 OTT 플랫폼의 편성을 받거나 극장에 오르기가 이전보다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콘텐츠의 수급 불균형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그를 뒷받침할 수 없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여전히 양질의 콘텐츠를 찾는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좋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마련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 국내에서 환영받는 콘텐츠는 글로벌 팬덤까지 이어질 수 있다.

- 2022년과 2023년, 통상적으로 콘텐츠 업계에서 불문율처럼 내려오던 흥행 공식이 모두 비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하이그라운드가 내세운 전략 키워드를 꼽아본다면.

콘텐츠라는 건 유기적인 생물체 같다. 5년 전만 해도 유튜브 채널이 주요하지 않았던 시기라 미디어 전략을 짤 때에도 맨 먼저 극장 위주로, 그다음은 채널 방송사 위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지금은 두 측면이 상대적으로 큰 효용성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 환경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빠르게 변모하는 미디어를 시시각각 상황에 맞춰 적용시키는 게 관건이다. 하이그라운드는 다양한 채널과 협업하며 제작 편성을 공들이고 있지만 동시에 멀티 콘텐츠 스튜디오로서 숏폼 등 다양한 플랫폼에 맞는 문법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이 멀티 콘텐츠는 드라마, 영화 등을 포함하여 드라마와 영화 중간 형태의 작품까지 통칭한다. 이를테면 6부작 시리즈 같은 것들. 또 틱톡 플랫폼 전용의 콘텐츠 제작까지 확장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시의성에 맞춰 주요 시청자의 취향을 파악하는 멀티 콘텐츠를 다양한 관점에서 시도해보고자 한다.

- 하이그라운드가 파악한 주요 시청자층은 누굴 가리키나.

하이그라운드는 지금까지 40, 50대 중장년층을 메인 타깃으로 둔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왔다. 부부, 가족, 인간관계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빠른 미디어 변화를 경험한 2030세대 또한 곧 4050세대에 진입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그려내는 중장년층의 풍토는 많이 다를 거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2030세대를 이해하고 수요를 확인할 수 있는 젊은 연령층 대상의 콘텐츠도 제작했다. <법대로 살아가라> <성스러운 아이돌> <신성한, 이혼> 등이 2030 연령층을 겨냥한 작품들이다. 명확한 타깃 연령대를 가르기보다 세대 전환을 넓게 아우르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 하이그라운드는 현재 영화로도 투자 및 부분투자를 진행 중이다. 부분투자를 진행한 <서울의 봄>도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영화시장이 계속 위축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관객들은 영화를 취미처럼 즐겼다. 비어 있는 시간이 생기면 자연스레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은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해 더 섬세하게 살피고 신중하게 선택한다.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을 보면 극장 공간을 잘 이해한 영화란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의 봄>은 군중심리가 주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집에서 혼자 봤다면 공적인 분노를 밀도 있게 높이지 못하고 미온적으로 들끓다 끝났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을 함께 공유하면서 관객들은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된다. 특히 벙커 내부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은 폐쇄된 공간(극장)에 자리한 관객들과 동일한 상황을 두어 긴박함을 더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다만 하이그라운드는 제작사이기 때문에 공동 제작과 부분 투자의 성격을 함께 섞어서 나아가고 있다.

- 투자 결정 과정에 공간성을 염두에 둔 것은 과거 CJ ENM에서 X스크린팀 팀장으로 일한 경험이 밑바탕된 판단일까.

내게 남은 자산처럼 영향이 있다. 2012년에 X스크린을 만들 때에도 아이맥스와 4DX는 있었다. 다만 X스크린을 고안하게 된 건 남은 극장의 남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면서부터였다. 스크린이 파노라마로 펼쳐진 채 양쪽에 화면이 늘어난다면 영화적 요소로 이 공간을 더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술적 개발과 함께 제작된 영화가 바로 김지운 감독의 <더 엑스>다. 이 작품을 바탕으로 영화관에서 관객이 누릴 수 있는 경험치를 끝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면서 어떻게 그 공간성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지 주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 CJ ENM에서 쌓은 요령들을 더 들어보고 싶다. 전략기획담당으로서 미디어산업의 전체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됐을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떠올리는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 다른 엔터테인먼트사를 거쳐오면서 영상 콘텐츠와 음악 등 다채로운 요소를 하나로 종합해본 경험이 좋은 콘텐츠 스튜디오 전략을 짜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여러 영역을 두루 넓혀나가는 제작사만큼이나 한 카테고리를 장인처럼 다루는 제작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중견급 이상의 제작사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보기도 하고. 다양한 규모의 제작사가 각기 다른 규모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이렇게 브리지 역할을 해주는 회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작품 하나에 용역으로서 참여하기보다 자신의 브랜드와 이름을 걸고 양질의 작품을 만드는 데 공들이게 될 것이다. 근 2~3년 동안 새로운 제작사가 출발을 알렸다.

- 실제로 하이그라운드는 공동 작업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일례로 <보통의 가족>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러한 공동 작업이 브리지 스튜디오에 어떤 이점을 준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장점은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여러 제작사가 제작 지분을 나누게 되면 한 제작사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도 분배돼 위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중견 제작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실용적이고 효용성 높은 작업 방식이다. 앞으로 더 안정적인 공동 제작 시스템이 구축되면 좋겠다.

- 공동 제작이란 결국 사공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당연히 어려운 점과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부담과 책임을 한 제작사가 짊어지게 만드는 것은 콘텐츠 시장의 생태에도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 궁극적으로 원활하고 활발한 콘텐츠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공동 제작 시스템이 잘 안착해야 한다. 업무 범위와 영역은 초반에 명확하게 의논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마음 잘 맞는 제작사가 함께하면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 하이그라운드는 당사와 잘 맞은 연출자를 어떻게 모색하는 편인가. 기준이 궁금하다.

한 모델을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인 선호를 짚어본다면 드라마 제작에 있어 작가와 호흡을 잘 맞춰나가는 연출자를 좋아한다. 연출자의 역량과 작가의 역량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연출자는 시나리오를 통해 완성된 세계관으로 시청자에게 어떤 경험을 안겨줄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와 연출가가 페어처럼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규태 감독과 노희경 작가, 주동민 감독과 김순옥 작가,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 등 두 자리의 합이 잘 어우러질 때 작품으로서도 좋은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 <결혼작사 이혼작곡> <아씨두리안> 등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전략이 겨냥된 작품이라 생각하나.

전략이라기보다 중장년층 팬덤의 효과를 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팬덤이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아이돌 그룹의 팬덤을 떠올린다. 사실 콘텐츠 시장에서 중장년층이 즐길 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들의 수요를 정확히 읽은 곳이 없었는데 그게 잘 적중한 게 <트롯> 시리즈였다고 생각한다. 중장년층 또한 굉장히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팬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던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결혼작사 이혼작곡>과 <아씨두리안>도 중장년층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던 소재와 주제를 잘 활용했다. 그러니까 중장년층을 팬덤의 주체자로서 존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에서도 사피영(박주미)과 신유신(이태곤) 이 둘만의 대화로 1시간을 꽉 채우는 회차가 있는데, 부부의 끝없는 대화를 이해하는 4050세대 시청자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도 이뤄질 수 있었다.

- 하이그라운드는 TV조선과 인연이 깊다. 브리지 스튜디오로서 채널을 파트너사로 둔 것이 유리한 지점이 될 것 같은데.

TV조선이 처음 설립되었을 때 하이그라운드도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었다. 그때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사로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잘 읽어낼 수 있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을 기점으로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었고, 여전히 중장년층 시청자를 위한 새로운 콘텐츠를 같이 모색하고 있다. TV조선 또한 시청층을 넓히기 위해 장르 다양성을 고민하고 있어 이러한 흐름을 함께 고민 중이다.

쇼트케이크. <D.P.>에서부터 한준희 감독의 저력을 눈여겨봐왔다. 새로운 레이블을 만들면서 이제는 크리에이터로서 활동 영역을 늘려가는 과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약한영웅 Class 1> 이후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된다. 쇼러너로서 발돋움하는 한준희 감독과 그의 스탭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