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이 조합 칭찬해’,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정서경 작가 GV 현장 스케치
2024-03-08
글 : 박수용 (객원기자)

셀린 송 감독과 정서경 작가의 CJ ENM 비저너리 인사이트 토크 ‘<패스트 라이브즈> 응원할 결심’이 지난 2월29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됐다. CJ ENM 비저너리 인사이트 토크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오리지널리티로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들과 함께 향후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헤어질 결심> <작은 아씨들> 등의 각본을 집필하며 개성 넘치고 진취적인 인물들의 세계를 그리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러로 자리매김한 정서경 작가는 2023년 CJ ENM 비저너리로도 선정된 바 있다. CJ ENM과 할리우드 A24 스튜디오가 함께 발굴한 주목받는 신인감독 셀린 송과의 만남에 ‘이 조합 칭찬해’라는 찬사가 쏟아졌던 이유다.

막 시사가 끝난 상영관은 채 가시지 않은 드라마의 여운과 대담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CJ ENM의 신인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오펜(O’ PEN)의 신인 작가 120여명도 객석에 함께했다. GV 모더레이터를 맡은 것이 처음이라는 정서경 작가는 “새벽 4시에 서울의 한 술집에 있다는 느낌으로 감독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셀린 송 감독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바쁜 내한 일정을 소화 중이던 셀린 송 감독은 “12살까지 성장했던 한국에서 <패스트 라이브즈>를 부분적으로나마 제작하고 한국 관객에게 보여드리게 되어 영광이다”며 화답했다. “영화에서 인연이라는 컨셉이 굉장히 중요한데, 해외 관객은 인연이라는 단어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단어인 만큼 감상이 확실히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셀린 송, 정서경(왼쪽부터).

정서경 작가는 영화 초반의 “짧게 지나가서 더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차례차례 언급했다. “나영이 캐나다의 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데, 한번만 져도 울던 아이가 날마다 질 것 같은 곳에서는 울지 않고 서 있다. 자기가 이제껏 알지 못한 무언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후 12년이 흐르고 갑자기 군인이 되어 행군하는 해성이 나온다.” 셀린 송 감독은 “영화 속 시간이 우리 인생에서 느껴지는 시간과 비슷하게 만들려 했다”고 답했다. “24년이 한순간에 지나갈 수도 있고 2분이 영원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는 지점이 바로 나영이 노라가 되는 순간, 또 군대를 거치며 해성이 소년에서 남자가 되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12년이라는 숫자에 담긴 한국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그런 철학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7년은 좀 짧고 20년은 너무 긴 것 같았다”고 답해 웃음을 선사했다.

자전적 요소가 가득한 작품인 만큼 셀린 송 감독이 해설하는 작중 노라의 심리는 생생하고 때때로 예상 밖이었다. 노라가 해성과 연락을 중단한 후 “그녀의 성장이 기뻤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정서경 작가의 말에는 “노라가 둘 사이의 인연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며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을 관객에게 던져주었다. “나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면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무는 것만 같다. 해성과 대화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정서경 작가만이 포착할 수 있는 해성에 대한 기능적 분석도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입장에서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주인공에게 삶의 의미를 묻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해성이 노라에게 찾아오며 그녀가 한국에 있었다면 가능했을 삶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함께 제공하는 것 같았다.”

<헤어질 결심>에서 이 주임 역으로 분했던 유태오 배우와의 작업 경험도 두 크리에이터의 공통점이다. 정서경 작가는 “유태오 배우의 얼굴에 정말 소년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뉴욕에 도착한 후 외롭게 밥 먹는 표정, 노라를 만날 때 조심스러워하는 표정 속 모든 떨림이 정말 좋았다”며 해성을 완벽하게 체화한 그의 연기력을 조명했다. 셀린 송 감독 역시 “나는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같다고 표현한다. 정말 작은 감정도 그의 얼굴에서는 아주 크게 보인다”고 동의했다. “공원에서 노라와 재회하는 장면에는 해성에게 일부러 큰 윗옷과 꽉 끼는 바지를 입혔다. 24년 만에 만나는 만큼 멋있고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겠지만, 실제로는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어린아이같이 보이게 만들었다.”

시간의 과감한 생략과 비약에 관해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덧 영속할 듯 확장되는 찰나의 감각에 대한 논의에 도달했다. 정서경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은 영화 종반의 정적인 롱테이크 연출은 “기다림의 초조함과 10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공존하는 모순된 마음”을 그리려는 셀린 송 감독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정서경 작가는 “나는 여기서 관객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어 뭐라도 더 넣고 싶었을 것 같다”며 감탄했다. 섬세한 감정선 위 탐미적 완벽성을 더한 것은 셀린 송 감독이 “영화의 기적”이라 표현한 촬영 현장의 우연이었다. “이 장면에서 노라가 걸어가는 방향이 곧 시간의 축과 호응한다. 이때 노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즉 과거에서 현재로 걸어가는데, 때마침 바람이 왼쪽으로 불어 노라의 치마를 과거로 흩날리게 한다. 노라는 그 바람을 거슬러 현재와 미래로 걸어간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사랑과 기억에 관한 따뜻한 대화의 시간은 셀린 송 감독이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며 마무리되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포함한 한국적인 콘텐츠들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셀린 송 감독은 CJ ENM이 지원한 또 다른 성공 신화인 <기생충>이 열어젖힌 길을 강조했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는 시나리오를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에는 ‘자막이 있어서 걱정이다’라는 반응이었다면, <기생충> 후에는 ‘자막이 있어서 신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위기론이 여전히 논의되는 지금, 역사적인 성공이 다진 비옥한 토양 위로 새로운 재능이 마음껏 발휘되는 창작 생태계의 선순환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갑다. CJ ENM의 한 관계자는 “지속 가능한 K콘텐츠를 위한 근본적 원동력은 크리에이터다. 역량 있는 K크리에이터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신인 창작자들을 발굴해 양성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소감을 전하며, “앞으로도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우리 영화계의 뉴 챕터를 계속해 써내려갈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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