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 지음 / 황석희, 조은정, 임지윤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셀린 송 감독이 쓴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12살 때 토론토로 이민 간 나영과 서울에 남은 해성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12살 때 헤어지고, 12년 후에 온라인으로 재회했다 다시 소원해지고, 다시 12년이 흘러 두 사람은 뉴욕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나영은 그사이 아서와 결혼한 상태. 나영과 해성의 재회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전생’을 뜻하는 제목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인연’이다. 인연이라는 말은 꼭 해피엔딩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악연도 인연이며, 헤어짐 역시 연이 다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이 복잡한 마음의 행로를, <패스트 라이브즈>는 차분하게 따라간다.
영화를 본 관객에게 추천하는,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영화에서 배우의 행동을 통해 유추해야 했던 인물들의 속마음과 상황의 맥락이다. 바에 앉은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바라보며 오가는 대화를 담아낸 첫 장면은 어떤 맥락으로 소개되었을까. “수많은 로맨틱코미디 영화들에서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케미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온 서로를 유혹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 바로 사람들 관찰하기.” 한국의 문화에 대한 설명 역시 지문에서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한 해성이 집의 자동문을 여는 대목에는 괄호 안에 이런 문장이 있다. “한국의 집 대문은 대개 비밀번호로 열린다.” 한국을 떠난 나영의 영어 이름은 노라다. 해성이 만나고자 한 사람은 나영일까, 노라일까.
해성이 나영을 만나기 위해 뉴욕에 간 뒤, 지문은 특히 해성의 심리상태를 행동지문과 상황지문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이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셀린 송 감독은 나영의 심리에 대해 적을 필요 없이 훤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각본은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 같은 행동에는 영화에서처럼 말을 아끼지만, 지문만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장면은 글만으로도 마음을 울린다. 이 각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자신이 아주 크고도, 또 작게 느껴진다.” 영화를 본 관객도, 각본집을 읽은 독자도, 이 문장에 이르러 <패스트 라이브즈>가 왜 그렇게 특별했는지 알게 된다.
130쪽너는 너이기 때문에, 떠나가야 했어. 그리고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는, 너가 너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넌 누구냐면, 떠나는 사람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