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유미와 오랜 시간 함께한 관객들을 위해,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 김다희 감독
2024-04-04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바비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유미는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어온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나선다. 하지만 유미의 의지와 달리 조금씩 흔들리는 바비와의 관계나 앞날을 점칠 수 없는 막연함은 불안의 형태로 조금씩 몸집을 키워나간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가 긴 원작 타임라인에서 이 구간을 선택한 이유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제 길을 만들어가는 유미의 성장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유미를 이루는 세포들 관점에서 유미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오직 유미 편이기 때문에 편파적인 세포들의 태도는 다소 어이없고 엉뚱하고 든든하다.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한 이야기는 가장 귀여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위로를 전한다.

- 관객은 이미 <유미의 세포들>을 웹툰과 드라마로 접한 상태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버전의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를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주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

=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워낙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구현하려 했다. 세포와 유미 모두 튀어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사실 유미의 이야기는 스펙터클한 모험이 펼쳐지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방식은 아니다.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공감력 있게 그려내서 독자가 자신을 대입할 여지를 남긴다. 이 과정에서 독자와 시청자는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게 <유미의 세포들>이 IP로서 지닌 힘이다. 웹툰, 드라마, 뮤지컬, 극장판 애니메이션 등 어떤 포맷으로 나오더라도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오리지널 스토리가 탄탄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이번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3D 형태의 유미가 등장한다. 2D의 유미와 인간 유미(김고은)를 경험한 사람들이 3D 유미를 낯설게 느끼지 않기 위해 공들인 듯하다.

= 가장 걱정이 컸던 부분이다. 원작을 잘 따라가기 위해서는 독자들에게 익숙한 주인공을 보여줘야 한다. 원작에서는 구간마다 유미와 세포들의 비율이 계속 달라진다. 그래서 어떤 비율을 선택할지 오랫동안 논의해야 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유미의 외형은 어떤 모습이지? 4등신? 6등신?’ 이 질문을 내내 달고 살았다. 긴 회의 끝에 바비와 만나던 시절의 유미가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하다는 생각에 그 구간을 바탕으로 모델링을 뽑았다. 사람들에게 유미가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 대사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입 모양이 인상적이다. “왜?”라고 발음하면 ‘ㅐ’ 모양만 그려내지 않고 ‘ㅗ’에서 ‘ㅐ’로 넘어가는 복합모음까지 세세하게 그렸다.

= 픽사와 디즈니, 드림웍스 같은 글로벌 애니메이션사에서는 일찍이 립싱크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이것만으로도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구현하기 쉽지 않다. 선녹음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고 시장 전반에 경험이 많지 않다. 로커스 스튜디오의 경우 <레드 슈즈>를 통하여 립싱크를 미리 실험해봤기 때문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볼 때 입 모양과 대사가 일치하지 않으면 급격히 거리감을 느낀다. 관객들의 안정적인 몰입을 위해서라도 꼭 자연스러운 립싱크를 완성하고 싶었다. 부차적인 장점도 있다. 애니메이터들이 그림을 그릴 때 성우들이 미리 녹음한 파일을 들으면 목소리에 담긴 감정에 맞춰 표정을 더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우리가 “아 왜~” 하는 것과 “왜!!” 할 때 얼굴근육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처럼 대사의 분위기를 알아야 더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집에서 보는 것과 달리 화면이 훨씬 크기 때문에 세밀한 묘사가 중요하다.

- 실사 드라마에서도 귀여운 세포들이 본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호평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 세포들에게 어떤 차별점을 두었나.

= 정말 귀여운 것에는 장사 없다. (웃음) 나도 모르게 모든 게 무장해제된다. 원작에서도 동글동글 앙증맞은 세포들이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만화적인 연출로 귀여움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캐릭터성이 부각되었던 드라마와 다른 점이다. 예를 들어 세포들이 달릴 때 다리가 와다다다 돌아가는 모양으로 묘사하거나 웃을 때 혀가 툭 튀어나온다거나 무서워할 때 입이 짜글짜글해지는 요소들이 카툰적인 분위기를 높인다. 일반적으로 2D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3D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했다. 원작 IP가 지닌 귀여움을 강조해주는 효과들에 충실했다.

- 원작에 없던 장면도 마련돼 있다. 유미가 과거를 회상할 때 실제 웹툰 장면이 흘러가는 시퀀스는 대중과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유미의 세포들>을 추억하게 만든다.

= 원작자 이동건 작가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담은 장면이다. 이동건 작가는 극장판이 제작되는 동안 한번도 관여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창작자를 존중하고 이해해주었다. 또 유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사람들이 원작의 기억을 되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았다. 2D의 웹툰 장면과 3D의 영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대중적인 일본과 달리 국내 애니메이션은 유아동 시장을 제외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이 더딘 편이다. 원작 IP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나.

=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이 소설이라면 극장판은 시라고. 극장판은 소설처럼 넓게 펼쳐진 시리즈를 2시간 동안 함축해 보여준다. 시를 통해 소설에 대한 호기심을 얻기도 한다. 시즌이 너무 많이 밀려 진입을 망설였던 입문자에게 극장판은 유용한 마중물이 되기 때문이다. 원작 팬에게도 극장판은 그 의미가 무척 크다. 한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본편이 다루지 않는 혹은 본편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장면을 통해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화관 디바이스에 맞춰 화면, 사운드, 연출 등 모든 사양이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발전과 시장 확장에도 성장의 발판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청소년 관객 이상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기가 무척 어렵다. 나도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사하면서 극장판이라는 기회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드물고 귀한 작품이다. 더 다양한 작품이 극장용으로 제작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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