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선호파
<특별시민> 감독 박인제 (네이버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 / <더 킹> 감독 한재림 (넷플릭스, 네이버 시리즈온) / <비밀은 없다> 감독 이경미 (네이버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티빙)대권을 노리는 정치 9단 변종구(최민식)가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특별시민>은 선거사무소의 치열한 밤과 낮을 현실감 있게 그린다. 광고계 출신의 홍보 담당을 연기한 배우 심은경을 비롯해 문소리, 라미란, 류혜영 등 선거판의 전략을 책임지는 여성 인물들도 돋보인다. 추진력 있는 초·중반부에 비해 힘 빠진 전개로 흐르는 <특별시민>이야말로 현실 정치판이 영화보다 언제나 더 극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상징적 예시이기도 하다. 전두환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근현대사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환기하는 한재림 감독의 <더 킹>에서는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제15대 대통령선거의 풍경이 유독 날카롭게 반추된다. 이경미 감독의 컬트적 취향이 곳곳에 녹아든 <비밀은 없다>는 정치인 부부와 레즈비언 여중생 커플이 벌이는 지독한 살풀이에 가까운 영화다. 불륜으로 제기된 정치인의 도덕성 논란과 함께 뒤틀려가는 한 가족의 초상이 남성 중심적 정치판에서 대상화되어온 여성들의 전복 서사로서 짜릿한 쾌감을 준다.
할리우드의 영웅들
언뜻 거스 밴 샌트의 소품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비 밀크(숀 펜)라는 기념비적 인물을 다룬 <밀크>의 실상은 원대하다. 생활동반자법을 비롯해 성소수자, 약자들을 위한 정치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진보적 성정치학의 선구자이자 미국 최초의 게이 정치인으로 기록된 하비 밀크의 실화를 권한다. 보험설계사에서 커밍아웃한 게이 정치인으로 일약 주목받기까지, 청중 앞에서 타고난 흡인력과 지적인 호소력을 보여주는 하비 밀크는 시민이 바라는 매력적인 정치가의 초상에 대한 훌륭한 대답도 되어준다. 조지 클루니의 <굿나잇 앤 굿럭>은 매카시즘 광풍에 맞선 방송국과 기자의 투쟁을 그렸다. 정치가 근거 없는 대중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방식, 매카시즘으로 표상되는 개인을 향한 무차별적 검열과 비난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조지 클루니는 시대에 제동을 걸며 경고하는 언론의 목소리가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일침을 날린다.
다큐멘터리가 찌르는 현실
올해 관심이 집중될 미국 대선을 앞두고 두편의 다큐멘터리 <초선>과 <킹메이커 로저스톤>을 눈여겨봐도 좋겠다. <초선>에서 미 연방하원에 도전하는 한인 후보 5명이 나오기까지 한인 연방하원은 120년 역사상 단 1명뿐이었다. <초선>은 1992년 LA 폭동 사건에서부터 이민 정책과 인종차별 문제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온 한인 운동가들, 정치가들의 궤적을 살핀다.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를 다룬 <헤로니모>에 이어 전후석 감독의 폭넓은 시선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넷플릭스 <킹메이커 로저스톤>은 미 트럼프 전 대통령 캠페인을 주도한 정치 고문 로저 스턴의 이면을 파헤친다. 당선과 낙선의 경계에는 반드시 네거티브 전략과 허위 정보가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는 초상, 뻔뻔한 어둠의 전략가인 로저 스턴이 쏟아내는 적나라한 말들은 불편한 동시에 익숙해서 기이함을 안긴다.
장르로 간다
보스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시종 역설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두기봉의 범죄 조직 영화 <흑사회> 시리즈는 선거철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삼합회의 차기 회장을 뽑는 과정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합이 이어지는데 뇌물, 협박, 회유, 폭력도 난무한다. <흑사회2>에선 굳건할 것 같았던 임달화의 최후까지 보여준다. 영문 제목이 ‘Election’이란 사실이 무색하지 않게 두기봉의 두 선거영화는 2년제로 설정된 삼합회 회장 임기에 관해 선출이냐 승계냐를 논하는 흥미로운 순간도 담고 있다. 비록 장르영화의 터치가 가미되었지만 온갖 불합리한 피바람으로 얼룩진 <흑사회> 시리즈의 정국을 바라보고 있자면 과연 무엇이 최상의 선거 방식인가, 하는 질문도 남는다.
시리즈가 보고 싶다면
2034년까지의 가까운 미래를 다양한 가족구성원들의 미시적 풍경으로 치환해낸 <이어즈&이어즈>는 영국
잊을 수 없는 명작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5) 감독 앨런 J. 퍼쿨라앨런 J. 퍼쿨라의 건조한 스릴러는 현대인의 형체 없는 강박을 정치판의 수면 위로 채색해낸다. 영화는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공작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다룬다. 권력의 압박 속에서 침묵하는 취재원들을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자의 행적이 종종 공포스러운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밀어붙이는 연출의 완력이 감탄스럽다. 작금의 한국 정치상이 아무리 코미디적 표면을 지녔다 해도 정치의 어두운 영향력은 결국 공포에 가깝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일렉션>(1999) 감독 알렉산더 페인하이틴 영화가 선거에 대해 이토록 큰 교훈을 남길 수 있다니. 알렉산더 페인의 초기 대표작인 <일렉션>은 여전히 명작의 기능에 충실하다. 천재적인 10대 야심가 트레이시(리즈 위더스푼)가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하는데, 명예욕에 눈먼 주인공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이를 방해하려는 학생회 담당 선생의 공작으로 인기 있는 풋볼선수 테츨러가 경쟁자로 나선다. 학교라는 소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진흙탕 속의 군상극인 <일렉션>은 출세욕과 권력에 눈먼 후보자들의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동시에 사랑스러운 웃음도 남긴다.
<내가 꿈꾸는 나라>(2022) 감독 파트리시오 구스만선거와 정치의 영화가 유세장과 투표소에만 있을 리 없다. 칠레의 정치적 비극을 다큐멘터리적 여정으로 거듭 탐구해온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의 <내가 꿈꾸는 나라>는 되풀이되는 칠레의 혁명과 정치 지형도를 비선형적 내러티브로 유려하게 휘감는다. 1970년 합법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이후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 군부정권에 저항한 바 있는 칠레 국민들이 2019년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를 펼친 것이 구스만으로 하여금 다시 카메라를 들게 했다. <칠레 전투>와 국가 3부작 등을 꾸려온 이 집요한 거장은 훨씬 복잡해진 시민의 권리 의식과 다양성이 대두한 현장을 침착하게 조망한다. 한국과 칠레 상황의 역사적 유사성, 투쟁하는 주체로서 시민의 역량에 관해서도 상기시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