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유인원의 세상, 퇴화한 인간은 그 그림자에서 살아가는 시대. 어린 유인원 노아(오언 티그)에게 그의 작은 마을 바깥 세계에 대한 질문은 금기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아 앞에 수수께끼의 인간 소녀 노바(프레이아 앨런)가 나타난다. 한때 인간이 세상을 지배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노아는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여행길에 오른다. 한편 유인원의 리더로 부상한 프록시무스(케빈 듀랜드)는 스스로를 ‘시저’로 칭하며 유인원 제국을 건설한다. 과거 과학을 발전시켜 세계를 제패했던 인간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그는 인간의 기술을 통해 유인원 문명을 빠르게 발전시키기를 꿈꾼다. 역사의 갈림길에 선 인류와 유인원, 노아와 소녀의 여정은 그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로스앤젤레스의 주거 지역, 간판 하나 없는 오피스 건물에 숨겨진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편집실에 웨스 볼 감독과 세계 각국에서 온 10명의 기자들과의 대화 자리가 마련됐다. 후반작업 편집실에서 미공개 영상을 보며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이런 기회는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에서도 드물다. 편집실 한쪽의 작은 상영관, 웨스 볼 감독과 소수의 제작진은 아직 미공개인 새 트레일러를 비롯해 사람이 연기하는 유인원 영상에 특수효과를 입히는 과정, 그리고 영화의 핵심 장면을 공유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했다. 웨스 볼 감독이 직접 꼽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관전 포인트와 제작 비하인드를 소개한다.
장면1. 아포칼립스, 그 이후의 세계
종말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인간 문명이 몰락하고 수백년이 흐른 뒤, 유칼립투스가 고층 빌딩의 잔해를 뒤덮은 초록빛의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지구의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인 유인원들에게 풀로 뒤덮인 건물은 나무와 다름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는 낭만이 숨어 있다”고 말한 웨스 볼 감독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아포칼립스는 끔찍한 파괴로 묘사되지만 난 초목이 우거진 태초로의 회귀를 상상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영화는 한번쯤 발 딛고 싶은 인류 그 이후의 세상, 직접 느껴보고 싶은 미래 세상을 아름답고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 초록빛의 세상에서 유인원들은 부족을 이뤄 생활하고, 무기를 만들어내며, 가축을 기른다. 지난 리부트 삼부작에서 막 진화를 시작했던 유인원 문명은 어느새 청동기시대에 진입했다. “인류가 처음 개를 길들이기 시작한 그때를 그려내고 싶었다”는 웨스 볼 감독은 그래서 유인원들의 반려동물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하이에나를 비롯해 온갖 동물들을 고려하던 어느 날, 번뜩 ‘독수리’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렇게 노아와 그 친구들이 숲이 된 과거의 빌딩들을 타고 넘어 자신만의 반려동물을 길들이기 위해 독수리 알을 훔치는 영화의 첫 장면이 탄생했다.
장면2. 인간을 동경하고 인간을 사냥하는, 빌런 프록시무스
그러나 자연 속 평화로운 풍경만이 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문명의 발전에는 정복과 지배, 전쟁이 함께한다. 진화 직후 하나의 집단으로 뭉쳐 있던 유인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무리로 갈라져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노아가 사는 온통 푸른 마을과 대비되는 황량한 해변, 거대 선박의 뼈대가 녹슬어가는 폐허는 또 다른 방식으로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유인원들의 터전이다. 그리고 프록시무스는 여러 무리를 하나로 통일, 유인원들의 첫 제국을 세우고 왕으로 군림한다.
프록시무스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다. 프록시무스는 과거의 인간을 동경한다. 산을 깎고, 바다를 뛰어넘어 대화를 주고받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던 존재. 마법과도 같은 전기를 발명해낸 이들, 인류. 그래서 프록시무스는 인간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들의 역사와 기술을 배워 유인원 문명의 발전을 위해 쓰고 싶어 한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다. 이제 도구와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유인원들의 몫이라는 믿음하에 프록시무스는 유인원 최초의 왕국을 건설하고 유인원 종의 진화를 주도한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 문명과 인류에 대한 해석, 그리고 그가 꿈꾸는 유인원의 미래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장면 3. 소년 노아의 성장: 지식의 힘 그리고 위험성
노아와 프록시무스, 같은 시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두 유인원의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지난 리부트 삼부작의 주인공 시저가 유인원 문명을 탄생시키고 인류로부터 해방시킨 위대한 지도자였던 반면, 이번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 노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유인원이다. “지식은 바이러스와 같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개인을 바꾸고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웨스 볼 감독) <혹성탈출> 시리즈는 유인원을 통해 인간 사회를 돌아본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진실을 마주하며 이뤄지는 개인의 성장, 지식이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 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앎의 본질을 집중적으로 해부한다.
장면 4. 수수께끼 인간 소녀의 정체는?
인간과 유인원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혹성탈출>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주제는 이번 편에서도 이야기의 중요한 한축을 담당한다. 인간이 바이러스로 몰락한 지난 리부트 시리즈 이후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은 짐승과 다름없이 퇴화했다. 유인원 노아와 친구들은 ‘인간’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그들이 한때 이룬 문명에 대해선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호의적인 오랑우탄 라카(피터 메이컨)는 유일하게 시저의 가르침을 제대로 기억하는 캐릭터지만, 그조차도 인류가 어떤 존재였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노아와 친구들은 왜 프록시무스가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을 사냥하는지가 의문이다. 그런 노아의 앞에 인간 소녀 노바가 나타나고, 노아는 인류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게 된다. 노바 역시 다른 인간들처럼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살아가지만 유인원 노아는 곧 그녀에게 다른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웨스 볼 감독은 노바 캐릭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노아와 노바의 우정, 노바의 정체 그리고 활약은 영화의 극비사항인 동시에 중요한 관전 포인트임을 강조했다.